남편의 세계 3: 모두 거짓말을 한다
눈썹이 짙고 눈을 반짝이던 남편은 신혼 때부터 친절했다. 신혼초 석사 2년 차인 나로 인해 공중보건의였던 남편은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으며 내 일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늦은 밤 남편은 하품을 하면서도 따끈한 차를 끓여 주고 논문 데이터 정리를 도와주며 지나가는 말로 "언제 잘 거야?" 하곤 물었다.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끝나던 내 작업에 졸린 눈을 한 남편은 사랑을 할 때면 참 씩씩했다.
결혼초 실험을 하느라, 논문을 쓰느라, 학회 발표를 하느라 나는 정신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린 많은 얘기를 했다. 밥상을 차리며, 밥을 먹으며, 산책을 하며, 목욕을 하며, 잠자리를 준비하며, 하루를 지낸 소소한 얘기, 오래된 추억 얘기, 상상을 펼치는 미래 얘기를 실타래 풀듯 했다. 어찌 자랐는지, 어떤 말을 듣고 자랐는지, 사춘기를 어찌 보냈는지, 어떤 성적 변화를 격었는지, 꿈이 무엇이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종알댔었다. 난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내가 물으니 남편은 대답하다 자연스레 내게 되물어 마치 바둑을 두듯 한수 한수 번갈아 서로의 세계를 내놓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세계를 구경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은 행복이다.
계획은 아니었으나 살다 보니 남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를 얻게 되었다. 분기별 데이터로 단순한 질문과 대답을 통해 축적됐다. 우린 젊었고, 건강했고, 거침이 없었으니 더 많은 데이터를 얻을 만도 하였지만 분기별로만 데이터를 추출했다. 데이터 생성 과정은 단순했다. 사랑을 나눈 후 남편에게 질문을 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부부생활에서 성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이 100%를 기준으로 몇 퍼센트를 차지할까?"하고 말이다. 궁금해서 한 질문이었지만 이 질문을 십수 년 할 것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시작은 그냥 단순한 물음이었다.
처음 그리 질문했을 때 젊은 남편은 졸음이 몰려오는 상태에서 100% 중 몇 퍼센트라 대답할까 잠시 고민했다. 머리를 움직이며 "한 20% 정도 아닐까?" 했다. 나는 남편의 대답에 "그렇구나. 나도 그 정도가 아닐까 했는데, 사람들이 하도 속궁합이 중요하다 해서 당신은 어찌 생각하는지 궁금했거든." 했다.
2019년 겨울 "모두 거짓말을 한다"(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2018)는 책을 읽으며 남편 데이터가 떠올랐다. 책의 저자는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진실이거나 혹은 사실이 가리키는 진실에 가까운 상황을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을 피력했고,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인터넷의 검색어를 통해서도 대중이 선호하는 대선후보에 대한 데이터, 실업과 포르노 산업의 연관성, 정치와 경제의 상관, 대중의 기본 욕구를 파악할 수 있다며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말하는 것과 속마음은 다를 수 있으며, 속마음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현대 IT기술축적에 의해, 빅데이터를 통해 가능함을 지적했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남편의 데이터가 떠오른 것은 남편이 거짓말을 했다 생각한 게 아니라 반대로 남편은 거짓말을 하기 어려운 공간과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게 보여주지 않았나 하는 사실 때문이었다. 참 역설적이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는 책을 읽으며 '정말 거짓말을 할 수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이성과 논리로 둘러싸인 세계에선 보기 어려운 진실이 있음을, 이성과 논리가 무장해제된 개인적 공간에선 사람들이 쉽게 진실을 말하고, 본다는 사실을 말이다.
책을 읽으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남편으로부터 획득한 15년(+10년)의 데이터는 부부생활에서 성생활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데이터 하나하나의 의미보다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성, 경향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신혼 초기 구간(1~3년) 남편은 부부생활에서 성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을 20%에서 25%를 넘나들며 완급 조절을 하듯 대답했었다. 남편이 레지던트 생활로 부부 생활이랄 것이 없이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와 내 얼굴을 보고 가던 결혼 5년 차를 넘어가던 시점에서는 50%를 훌쩍 넘었었다. 일상생활 없이 가끔 집에 와 쪽잠을 자고 가는 형국이니 훌쩍 넘어버린 50%가 안쓰러웠다. 생활은 없고 이벤트식 만남만 있었으니 말이다. 수련의 생활 중 내가 질문을 하면 묻자마자 남편은 뚝 던지듯 대답하곤 잠이 들었다. 얼마나 피곤하면 그럴까? 단 2초도 뇌세포를 사용할 여력이 없는 시기였다. 참 안타까웠으나 데이터는 신뢰할만했다.
결혼 10년 차에 질문을 하니 남편은 이제 그런 귀찮은 질문은 하지 말았으면 하듯 "그런 건 왜 묻는데, 그냥 좋으면 됐지." 했다. 내가 "아니, 힘들게 사랑도 하는데 이 쉬운 대답이 뭣이 어려워?" 하며 남편 귀를 잡아당기니, 남편은 싱글거리며 십여 초 생각을 했다. 나는 남편의 머리에 바짝 얼굴을 대고 남편의 뇌세포들이 굴러다니다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해했다. 그때는 남편 머릿속 세포들이 서로 속삭이며 짧은 논쟁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내가 볼을 꼬집으며 얼른 말하라 닦달하니 남편은 "글쎄 한 80%?" 했다. 내가 "성생활이 그 정도인가? 부부생활에서?" 했더니 남편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그럼 정말 중요하지? 사랑이잖아!" 했다. 내가 남편을 빤히 올려다보며 "그럼 나머지 20%는?" 하니 남편은 "그거야 얘들도 키우고, 밥도 먹고, 함께 여행도 가고 그런 거지." 하며 "80%면 너무 과한가?" 다시 내게 묻고는 "자자. 피곤하다." 했다.
분기별로 사랑을 한 후 속삭이는 질문을 하였으니 일 년에 4회, 10년이면 40회, 15년이면 60회의 데이터가 모였다. 질문은 분기별 규칙성을 가졌고, 사랑을 한 직후라는 동일 상황조건에, "부부생활에서 성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이 100% 중 몇 % 일까?"라는 동일 내용이니, 이런 데이터 모음 연구를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종적 연구(longitudinal study)라 한다. 물론 이 경우는 남편 한 사람의 견해를 묻는 것임으로 객관화와 일반화가 어려운 단독 케이스 스터디에 해당하며, 장기간에 걸쳐 남편의 생각 변화 추이라는 측면에서, 오로지 나만을 위한 데이터라는 목적성이 뚜렷하고, 나아가 나만이 유의미한 해석을 할 수 있으니, 나의(우리의), 나에 의한(우리에 의한), 나를 위한(우리를 위한) 한정적 종적 연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몇 가지 의미 있게 생각할 점은 일반적으로 보편(普遍) 속에 특수(特殊)가 숨어있고, 특수가 보편을 넘나 든다는 점이다. 남편이 성적 집착이 높지 않다는 점과 보통의 가정에서, 한국적 정서가 숨 쉬는 문화에서 자란 남성이란 측면에서 남편은 한국의 보통 남자일 확률이 높다 가정할 수 있다. 한해 한해 질문에 조금씩 퍼센트가 올라가니 한 15년 해보면 답이 나오겠구나 싶었다. 사실 나는 남편의 대답을 모으며 그 데이터의 최종 수치가 얼마나 올라갈지 궁금했다. 10년까지는 '두고 볼 일이다.' 생각했다.
결혼 14년 차 어느 아름다운 여름밤 혼신의 힘을 쏟으며 사랑을 했던 남편에게 귓속이 간지럽게 물으니, 남편은 뇌세포를 휴가 보낸 양 너무도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98%, 98% 정도 돼지!" 했다. 귀를 의심했다. 결혼 15년 차를 일 년도 남기지 않은 때 거의 100%에 근접하는 수치에 다다르다니 말이다. 나는 정말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았고, 남편은 두어 마디 말하곤 바로 곯아떨어져 잠들었다.
딱 15년 데이터(데이터수 최소 60회)를 모집하곤 회심의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아 남편의 데이터는 진실을 말하고 있구나. 부부생활에서 성생활은, 남편에게 성생활은, 결혼생활의 전부에 가깝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편은 무의식에 가까운 상태에서 결혼생활 중 성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속 시원하게 말해 줬으니 말이다.
정말 귀중한 데이터를 모았다. 어디서 이런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겠는가! 결혼 16년 기념일에 기념비적인 데이터를 공개했다. 남편은 순진한 눈을 하곤 "내가 정말 그랬어? 설마 98%! 그럴 리가. 그냥 한 85% 정도 아닐까?" 해서 둘이 박장대소(拍掌大笑) 했다.
지금도 데이터를 모으고 있지만 이미 데이터 신뢰는 무너졌다. 남편은 집중력을 발휘하여 사랑을 하곤 나의 질문에 뇌세포를 사용하느라 혼란스러워했다. "음, 중요하긴 한데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하긴 그러니 한 75% 정도?" 했다. 참 귀엽다. 오염된 데이터지만 절대 50%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니 이 또한 의미 있다. 데이터의 의미를 서로 공유했음에도 75%라니, 내 남편은 사랑쟁이가 분명하다.
이제 남편은 15년간 나의 사랑스러운 질문, 귀를 간지럽히는 질문,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에, 연습 효과를 반영하여 신뢰성에 의문이 가는 데이터를 내게 주고 있다. 그러나 그게 뭐 대수인가? 피조사자(被調査者)가 연습 효과를 갖은들 내가 이 시계열 연구(時系列 硏究)를 논문으로 투고할 것도 아니니 말이다.
부부생활에서 성생활이 차지하는 중요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나의 시계열 조사(時系列 調査)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누가 알겠는가? 이제 50대 중반 피차 폐경과 호르몬 변화로 갱년기를 향해가는 우리 부부가 갱년기를 받아들이며 과거와는 다른 성생활 비중에 대한 다각적 데이터가 모아질는지 누가 알겠는가? 나의 귀여운 피조사자는 아마 질문의 곤혹스러움을 떠나 질문 전의 사랑을 기대하며 그런 데이터를 위한 대답이라면 골백번도 더 하겠다 자청할 것이라 확신한다.
부부에게 있어 성생활은 행복을 나누는 행위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이다. 부부에게 보장된 행위의 기쁨을 무엇으로 가리고 절제하겠는가마는 상대가 어떤 성(性:sex) 변화를 겪어가는지 알려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 결혼 16년이 넘어서면서는 성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이 100%에 근접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실망했었다. 성생활이란 규정 속에 숨어있는 성적 행위는 농밀한 행위에 비해 시간으로 치면 얼마나 짧고 단순한가 말이다. 그런데 그런 행위가 부부생활의 전부를 말한다 생각하니 참으로 씁쓸했다. 그때는 그리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신혼초는, 그러니까 남편 말대로 성생활이 20%~25%를 차지하던 그 당시는 아이들을 낳아, 젊은 우리였지만 새싹들을 키우기 바쁘던 시절이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한다. 결혼 5년을 넘어선 수련의 과정이던 남편이 아내의 따스함이, 편안함이, 사랑이 너무도 그립던 시절이었기에 50%를 넘지 않았을까 한다. 결혼 10년에서 14년에 이르러 데이터가 80%에서 100%에 근접해 가던 시점에는, 남편은 아이들이 무탈하고, 둘 다 직장을 잡고,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생각하니 그 나머지의 여백만이 가장 큰 비중으로 여겨지지 않았나 싶다.
긴 시간 동안 축적된 데이터들을 살펴보니 알겠다. 우린 가끔, 아주 짧은 따스한 눈빛과 말 한마디로도 영혼을 위로받는, 손을 잠시 따스하게 잡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할 수 있는 순간이 있듯, 남편은 나와의 그 짧은 사랑으로 그 무엇으로부터도 얻지 못하는 충만과 사랑을 얻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부에게 있어 성생활은 기쁨이기도, 위로이기도, 삶의 나눔이기도 한데, 나는 어쩌면 행위 자체와 데이터 자체를 크게 바라본 건지도 모른다. 98%란 말에 벌떡 일어나 앉았던 나는 데이터에 집중했으니 말이다.
부부생활에서 성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은 부부마다, 살고 있는 환경마다, 부부의 성향마다 다르지만 문제는 두 사람이 부부생활의, 성생활의 어느 지점에 놓여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려져 있는, 비밀에 쌓여있는, 그러나 둘에게만 열려있는 성의 문을 부부들은 늘 함께 열고 함께 탐구하여 자신들만의 아름다운 성생활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수많은 아내들에게 데이터 속 남편의 성을 탐구해보길 권한다. 기승전결이 너무도 쉬운 남편들이 그런 데이터를 모을 의지가 있기는 힘들 터이니 우선 먼저 아내가 모으기를... 모두 거짓말을 한다. 몇 번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몇 년은 거짓말을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다. 그러나 십 년이 넘으면, 십 년이 넘어 쌓인 빅 데이터는 거짓을 벗기고 사실과 진실의 자락을 보여준다. 모두 거짓말을 하니,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순간을 빌어 서로의 세계를 이해할 데이터를 모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