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어머니를 닮았다.

남편의 세계 4: 취미도 유전이 되나 봐요

by 정루시아


사랑으로 이루어진 가족이던, 의리나 경제적 이유로 이루어진 가족이던, 한 사람의 취미가 다른 사람의 인내를 요하면 갈등이 생긴다. 특히 평생을 약속한 부부 간에 취미가 달라 한 사람이 계속 인내를 시험받으면 대략 난감하다. 좋은 것은 나누면 그만이지만 싫은 것은 나눌 수 없으니 그게 문제다.


시댁에 가면 거실 TV 속 가수들이 번갈아 목청을 뽐내 집안은 늘 소리로 가득했다. 어머님은 노래를 좋아하신다. 노래를 좋아해서 트로트, 가곡, 발라드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노래를 듣고, 소리 내 부른다.


25년 전 막 결혼해 간 시댁 안방 화장대 옆엔 오래된 카세트 플레이어 기가 있었다. 화려한 자게 화장대 위에 놓인 작은 카세트 플레이어 옆엔 어머님이 곡명을 깨알처럼 적어 놓은 테이프들이 턱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퇴직 후 남편은 엄마를 위해 다기능 카세트 플레이어 기를 선물했고 그 마음은 거실로 성큼 나와 자리를 잡았다. 종합편성 채널(종편)이 나오기 전까지 카세트 플레이어 기는 거실 한편에 당당히 자리를 틀고 하루 종일 어머니께 노래를 들려주었다. 종편의 시작과 함께 TV 속 이름 모를 가수들은 시댁 거실에 대거 등장했다. 종편과 대형 TV(때마춰 남편은 시댁 거실에 적당한 대형 TV를 선물했고)는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어머님의 친구가 되었으니, 어머님은 노래를 듣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노래를 즐기는 취미를 완성했다.


어머님이 다리를 다쳐 한 달을 우리 집에 와 계셨을 때에도 가수들은 아침에서 저녁까지 흥을 돋았고, 우리 집 정원 꽃을 보러 어머님이 오시면, 가수들은 어머님을 환영하며 거실 앰프서 목청껏 노래를 뽐냈다.


어머님이 발목 부상으로 우리 집에 머무를 때 크게 불편한 것은 없었다. 문제는 소리였다. 귀가 예민한 내가 취향이 다른 음악을 계속 듣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볼륨이 켜진 TV 소리와 음악소리는 신경을 자극했다. 음악을 좋아하시지 않는 시아버지는 퇴직 후 등산 일정으로 일주일을 채웠다. 아프지 않으면 산에 가셨다. 저녁잠이 많은 시아버지가 저녁 8시에 잠을 청해 새벽 3, 4시에 깨어 간단한 간식을 챙겨 집을 나서는 것은 각자만의 취미를 온전히 즐기려는 나름의 해결책이 아니었나 한다. 대한민국 70%가 산이니 아버님은 늘 자유롭게 길을 나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아버님은 어머니가 병간호를 받으러 우리 집에 한 달 머무실 때 모처럼 조용한 집의 휴식을 취하지 않았을까 싶다.


2017년 가을 보직교수를 끝마칠 무렵 군산에 단독주택을 지으니 시부모님이 기차를 타고 내려오셨다. 두 분이 집을 둘러보고 작은 정원을 걷다 "꽃 심고 정원 가꾸는 게 보통일이 아닌데~ 그래도 좋구나! 잡초는 뽑아야겠지만 심심한 것보단 낫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얼마나 답답한지, 너희 집은 참 좋다."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하는 중 어머니가 남편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작년에 너희가 잘 돌봐줘 다친 다리가 잘 붙고 참 편했다. 나중에 더 늙고 아프면 너희 집에 있으면 좋겠다. 부러진 다리를 하고 병원에 있어보니 못살겠더라. 정신없는 노인들과 하루 종일 있으니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옆에 살아요. 가까이 살아요. 함께는 쉽지 않아요." 하며 차분히 말했다.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뜨곤 "아니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되는데 왜 그러니?" 했다. 남편은 "엄마, 그게 말처럼 쉬우면 좋죠. 옆에 살아요. 1분도 안 걸리는 거리, 저기 저 아파트, 저기서 살아요. 오고 가기 쉽게. 함께는 힘들어요." 했다. 두 분이 건강하시니 아직은 미래의 일이다. 외아들인 남편은 부모의 미래를 책임짐에 있어 가볍게 얼버무리려 하지 않았다.


미래의 일이니 적당히 얼버무려도 될 듯도 한데 엄마를 보고, 아버지를 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적당한 물리적 거리를 두지 않으면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아는 남편은 아무리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도 최소한의 물리적 거리를 선언했다. 무엇이 최선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이 힘든지는 잘 알고 있으니 그게 문제다.


그런데 남편이 어머니를 닮았다. 음악방송들을 찾아 듣고, 온갖 디지털 음원을 찾아 저장하고, 좋다는 앰프와 스피커를 구매해서는 볼륨을 한껏 높여 집 무너질까 무섭게 틀어놓고 거실 중앙에 앉아 책을 읽는다. 집을 짓자 할 때는 마땅찮아하다 막상 살기 시작하니 사방(거실, 앞마당, 뒷마당, 이층 서재, 아들방)에 앰프를 설치하곤 가는 곳마다 음악을 틀어놓고 살만 하단다. 단독주택의 독립성과 자유로움에 흠씬 빠져 음악이 차고 넘치도록 튼다. 아침마다 거실은 노랫소리로 꽉 찬다. 말을 하지 않으면 한두 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틀어둔다. 요즘도 유행하는 팬텀 싱어와 락, 해외 pop, K-pop까지 이걸 어찌해야 하는지 난감할 정도로 튼다. "여보 시끄러워! 소리 때문에 죽겠어. 너무 커~ 난 못살겠네." 했다. 나는 시시 때때로 남편에게 조용한 재즈를, 잔잔한 클래식을, 볼륨을 낮춰 틀어달라 요청한다. 남편은 늘 웃으며 음악을 바꾸고, 클래식을 틀고, 볼륨을 낮추며 자신의 취미를 고수한다.


방학 중 주로 교재 작업을 하는 나는 하루 종일 컴퓨터에 앉아, 글을 쓰랴, 글을 평하랴, 제도를 하랴, 일러작업을 하랴, 편집을 하랴, 잔뜩 긴장된 작업속에 소리에 민감한 나를 발견하게 됐다. 작업이 수렁에 빠진 듯 쉬이 진척되지 않는 때, 신경이 칼날처럼 예민하고 날카로워져 있을 때, 유독 소리가 나를 자극함을 남편은 모른다. 살다 보면 자신도 자신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나의 청각이 그러함을, 결혼하고 남편과 살며 알게 되었으니, 인간은 늘 모르는 것 투성이다. 남편이 틀어놓은 음악소리, 잘 들리지 않는 TV 소리들이 그랬다. 남편과 아이들이 틀어놓은 음악소리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는 사실을, 몸의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내 청각이 달라짐을 알게 됐다.


올 상반기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재택근무를 하며 음악소리로 집안을 가득 채운 남편을 보곤 "못살겠네! 이제 물리적 거리를 두어야겠어." 하며 눈을 흘기니, 남편은 나를 바라보더니 "그래? 날? 어디로?" 하곤 눈을 번뜩이며 웃었다.


그런말을 한 며칠 후 이층 서재에서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아침부터 온라인 강의 녹화를 하고 기진맥진하여 책상에 앉아 남편을 목청껏 불렀다. 배가 너무 고팠다. "여보 녹화 끝났데 너무 허기져요. 밥 먹읍시다! 뭐 먹을까?" 했다. 대답이 없었다. 컴퓨터로 업로드하는 작업 결과물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남편을 다시 불렀다. 분명 남편은 일층 거실에 있었던 듯한데 대답이 없었다. "여보? 밥 먹어요. 거실에 있어요? 안방에 있어요?" 모니터에 녹화된 강의 작업물의 업로드 진행과 다른 모니터로 웹메일과 학생들 쪽지를 확인하며 남편을 몇 차례 불러도 응답이 없었다. 집안이 울리도록 몇 차례 불러도 대답이 없어 이층 베란다서 정원을 향해 큰 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내 소리가 지붕을 뚫을 기세로 퍼졌다. "여보? 마당에 있어?"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단독주택이라 해도 넓지 않으니 어디서 불러도 소리가 들리는데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급한 볼일로 '어디 나갔나?' 했다. 업로드를 끝내고 꼬르륵 거리는 배를 잡고 계단을 내려오니 이층 서재에서는 보이지 않는 거실 코너 소파에 태평이 앉아 남편은 책을 읽고 있었다. 머리에 큰 외부 소음 차단용 헤드폰을 쓰고 말이다.


남편과 아들, 딸은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즐겨 듣고, 음악 듣는 제품에 열정을 함께 쏟는다. 남편은 공돌이 기질인 아들과 앰프를 만든다며 중딩 아들에게 납땜을 가르치고 회로를 설명하며 적당한 전선을 선별해 조립을 했다. 둘은 앰프를 만들며 진공관 앰프니, 고음에 장점인 앰프니, 중저음에 탁월한 앰프니 하며 지식과 취향을 공유했다. 아들 책상 서랍, 딸 책상 서랍, 침실의 협탁, 서재의 서랍에는 온갖 종류의 이어폰이 똬리를 틀듯 숨어있다. 나를 제외한 세명은 이어폰이든, 헤드폰이든, 아이팟이든 음악을 듣는 도구들이 출시되면 서로 경쟁적으로 품평을 하고 제품을 탐했다. 남편은 소소한 용품을 구매하여 딸과 아들에게 뿌렸고 최상의 것을 골라 자신이 사용했다. 다른 소리를 차단하는 이어폰, 저음 위주의 이어폰, 고음 위주의 이어폰, 이어폰은 도처 서랍마다 숨어 있고 가격대가 낮은 이어폰은 점점 고가의 이어폰에 자리를 내주며 서랍장에 널브러졌다. 이어폰뿐이랴 헤드폰도 한둘이 아니다. 아들은 게임용 헤드폰, 음악용 헤드폰, 소음 제거 헤드폰을 사고 남편은 헤드폰 거치대를 사서는 거실 선반에 하나둘 올려두기 시작했다.


소리 때문에 못살겠단 말에 작심하고 고성능 헤드폰을 질렀겠구나 싶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그렇게 사고 싶던 헤드폰을 귀에 찰싹 쓰고 책을 보니 내 소리가 들릴 리 없다. 남편이 그리 탐내던 헤드폰을 소리 때문에 물리적 거리를 두겠다던 말에 바로 구매했으니 남편의 민첩성은 정말 따를 자가 없다. 그리 소리를 질러도 못 알아들으니....


저녁 산책에 내가 "내가 그리 소리를 질렀는데도 안 들려?" 하니 남편은 방긋 웃으며 "성능이 좋아. 외부 소리를 잘 차단하거든"하곤 "걱정 마, 소리 때문에 당신이 힘들일은 없을 거야." 했다. 내가 "귀도 잘 쉬어야 좋은 소리를 알아듣고 좋지. 그렇게 들으면 귀 안 피곤 해?" 하니 남편은 "뭐가 피곤해. 음악을 들으면 잡생각도 없고 좋잖아. 특히 달리기 할 땐 음악 들으면 힘든 줄도 모르고 뛴다니까?" 한다. 남편은 어머니를 닮았다. 정말 닮았다. 음악을 들으며, 리듬을 타며, 심금을 울리는 가사를 새겨들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음악 속에 자신을 담근다. 내가 "헤드폰 쓰고 크게 음악 들으면 귀 망가져. 조심해야지"하니 남편은 "걱정 말아. 별일 있겠어?" 하면 웃는다. 내가 "귀를 잘 관리해야지. 아버님처럼 청력을 잃으면 어쩌려고" 하니 남편은 "그런가?" 했다. 남편이 엄마를 닮았다. 그런데 이제 시아버지를 닮겠다 나서니 내 앞날이 뻔하다. 음악을 크게 틀곤 잘 안 들린다 더 크게 틀 터이니, 그 소리들 속에 내 목소리는 어느 곳을 배회할는지.... 목청을 키울 일만 남았다. 이참에 창이라도 배워 폭포수도 뚫는 득음의 경지를 준비해야 하는지... "엄마도 닮았는데 아버지도 닮을까 봐 겁나?" 하던 남편의 짓궂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거실 한편에 놓인 헤드폰은, 음악소리에 예민한 나를 배려하여 우리 집에 들어온 헤드폰은, 잠시 내 소리를 차단했던 그 성능 좋은 헤드폰은, 나와 남편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들어왔음을.. 오늘도 거실 한편 헤드폰 거치대 위에 방긋 웃듯 앉아있는 헤드폰은 서로의 취미가 인내가 되지 않기 위한 배려의 상징임을 속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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