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부모 두려움을 먹고 자라는 존재

남편의 세계 5: DNA는 못 속여 극복할 뿐

by 정루시아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정보를 DNA 정보체계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한다. 변할 수 없는 정보들과 변해야 하는 정보들을 함께 버무려 변화하는 환경에 살아갈 자식에게 전달해주니, 생명체는 미지의 세계에 서있는 탐험가 같다. 그러니 우린 막 문을 연 현재에 서서 미래를 가늠하려 애쓰는 깜찍한 존재들이 아닌가? 환경이 변화하니 장점이었던 정보들이 단점으로 전환되기도, 단점이었던 특질이 장점으로 뒤바뀌기도 하니,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생명체는 결점을 품고, 결점을 극복하다, 결점을 전달하는, 결점투성이의 존재인 듯하다.


내가 부모로부터 장점인 듯 단점인 고집과 방랑벽을 물려받았다면 남편은 장점인 듯 단점인 근검절약과 두려움을 물려받았다. 두려움은 유전되는 것인지 학습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유독 물과 빙판을 무서워한다.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은 막 공중보건의가 되어 새벽 수영을 배우고 있었다. 남편은 자유형과 배형을 배웠고, 평영 발차기를 배운다 했다. 지나가는 말처럼 숨쉬기도 개구리 킥도 어렵다 하여 '유연성이 떨어지나?' 생각했다. 결혼 후 수영장을 갔다. 그 당시 대덕연구단지 수영장은 수심이 범상치 않았다. 25m 레인의 반은 1.2m 정도의 가슴높이였지만 나머지 반은 수심이 3m여서 제법 부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남편과 걱정 없이 수영장에 들어섰다.


남편은 깊어야 2m가 되지 않는 곳에서 수영을 배웠으니 처음 보는 물의 깊이에 잠시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종로 YWCA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웠던 터라 수심 3m는 익숙한 깊이였다. 수영장에 들어가 잠시 몸을 풀고 수심 깊은 편에 도착하니 남편은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허겁지겁 따라왔다. 남편 숨은 턱까지 찼다. 두려움이, 3m 깊이 물이 주는 두려움이 목까지 찬 듯했다. 대충 수영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나왔다. 남편과 음료수를 마시며 "물이 무서워요?" 하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응, 무서워. 깊은 곳을 보니 무섭더라고." 했다. 남편 수영은 늘지 않았다. "물은 자신과 안 맞는다." 했다. 동남아 호텔 풀장이나 바다에 들어가면 늘 "물은 나랑 안 맞아."라고 툴툴댔다. 물속에만 들어가면 남편 손과 발은 허둥대었고, 어깨와 가슴은 경직됐고, 눈은 겁이 가득했다. 농구, 테니스, 탁구, 산행 등 땅에서는 남부럽지 않게 운동하는 사람이 물과 빙판에서는 영 딴사람이 되었다.


딸이 스케이트를 배우며 빙상장을 드나들 때 남편은 책을 읽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며 빙상장 한 곳에 앉아있었다. 내가 딸과 함께 배우라 하니 남편은 웃으며 "아들 배울 때 해볼게." 했고, 아들은 "아빠가 하면 나도 탈거예요." 했다. 둘이 짠 것인지는 몰라도 딸이 배우는 2년 동안 스케이트장을 배회하며 간식을 사 먹고, 딸의 스케이트 신발끈을 묶어주며, 추운 빙상장에서 애꿎은 오리털 점퍼만 타박했다. 내가 박사과정 중이라 얘들을 이동시키고, 딸이 훈련하는 장장 3시간을 기다리던 남편은, 얘들을 데려온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떨거나 오후 8시 성인반 스케이팅을 지켜보기만 했다. 딸과 내가 "성인반에 들어가 배우면 어떻겠냐."라고 했지만 아들과 남편은 공동의 모의라도 한 듯 고개를 내둘렀다.


아들이 7살에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아들은 누나가 토할 것 같다며 얼굴이 익은 사과처럼 붉도록 달리고, 뛰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스케이팅하는 것을 봐온 터라 의지를 다지듯 눈에 힘을 줬다. 아들이 제법 직선을 타며 속도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남편은 추운 빙상장에서 불안해했다. 아들이 얼음을 지치며 재미나게 훈련을 마친 어느 날, 아빠를 보며 "아빠! 내가 타면 아빠도 탄다며, 별거 없네. 아빠도 배워야죠. 약속대로" 했다. 아들은 몇 년간 누나의 스케이트 훈련을 보며 맘의 준비를 했고, 스케이팅을 시작하자 아빠를 물고 늘어졌다. 남편은 "그래야지. 탄다고 했으니 배워야지." 했다.


남편은 그로부터 일 년 넘게 스케이트를 배웠지만 직선을 못 탔다. 두어 달 만에 직선을 마스트한 아들이 아빠에게 직선 요령을 말했으나 남편은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아들은 "아빠, 힘을 풀고 앞으로 쭈욱 나가면 돼요. 엄청 쉬워요. 그건 너무 쉬운 건데!" 했고, 딸은 "아빠~ 넘어져도 안 다쳐, 겁먹지 말고 그냥 몸을 실어요~"했다. 오른발 무게 중심은 잘 잡았지만 왼발은 자꾸 무너졌다. 2mm의 날 위에 체중을 온전히 실어 앞으로 나가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성인도 몇 개월이면 익숙해지는데 남편은 진도가 너무 늦었다. 답답한 코치는 지상에서 자세를 잡고 빙판에서 자세잡기를 반복했지만 덩치 큰 남편은 퉁탕거리며 넘어지고 기우뚱 데고 폼이 깨지기 일수였다.


남편은 14개월 지나서야 직선을 탔다. 그때서야 남편 얼굴은 환해졌다. 그 사이 아들은 자유자재로 직선과 코너를, 친구들과 속도내기 활주를 하며, 얼음판을 즐겼고 박사과정이 끝난 나도 스케이트 강습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남편은 깜찍하고 유연한 아들 코너와 안정적인 딸 코너를 보며 부러워했고 가끔 타는 내가 자신보다 진도가 빠름에 열 받아했다. 남편은 코너를 배우며 난관에 봉착했으니, 다리를 바꿔 미는 동작에 두려움이 가득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전전긍긍했다. 왼발에 온전히 체중을 싣고 무릎을 쭈욱 펴는 연습 동작에서는 자주 넘어졌고, 오른발을 왼발 옆으로 깊게 엇갈려 디디는 자세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스케이팅이 안되면 늘 중얼거리듯 "난 물과 얼음에선 안돼."를 외쳤다. 땅에서는 날아다니는데 물에서는 안된다며 물 타령을 했다. 지나가는 말로 내가 "엄마가 물과 빙판에 들어가면 죽는데? 어찌 그리 무서워해?" 하니 남편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가 그러긴 했지, 그냥 물이던 얼은 물이던 절대 가지 말라고. 죽는다고 하긴 했지!" 했다. 난 으레 어른들이 '물가에 어린아이 내놓지 말라는' 속담처럼 어른이라면, 부모라면 하는 흔한 걱정 수준으로 받아들였었다. 그때! 터키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지중해 바다를 가기 전까지 말이다.


2011년 시부모님과 터키 패키지여행 중 지중해(카쉬) 바다 수영 코스가 있었다. 남편과 시아버지는 항구 커피숍에 남겠다 하여 나는 11살 아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투어 선박에 올랐다. 해저 유적을 본 후 가이드는 여행객들에게 수영복을 입고 바다수영을 하라 권했다.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겠냐 했다. 평화로운 지중해 바다에 닻을 내린 배는 그림같이 홀로 둥실 떠 있었다. 아들과 나는 신이 나서 바다에 풍덩 입수했다. 어머니는 "너무 깊은데~ 무슨 수영이냐."며 남들 하는 수영이나 보면 안 되는지 내게, 아들에게 번갈아 물었다. 나는 "어머니 바다 좀 보세요. 얼마나 맑고 투명한지, 걱정 마세요. 빠질래도 빠질 수가 없어요." 했다. 아들과 내가 부력봉을 하나씩 들고 물속에서 들어갔다. 아들은 이미 6년 차 수영(3년 집중 강습과 주 1회 학교 수영을 하던 상태) 강습을 받고 있던 상태였고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잘 노는 아이였다.


물은 잔잔하고, 태양은 빛났고, 하늘은 파랗다 못해 시퍼렇고, 바닷속 물고기는 하늘거리며, 옥색 빛이 파르르 도는 바다색은 너무 예뻐 몇 미터 바닥 아래도 성큼 눈앞으로 다가와 두려움은 고사하고 청명함을 주는 바다였다. 그날, 지중해 바다는 먼 동양에서 온 여행객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베풀었고, 우린 장거리 이동으로 지친 심신을 지중해에 풀어놓을 절호의 기회를 가진 찰나였다.


배에서 5m가량 떨어져 물놀이를 하던 때였다. 어머니는 망부석처럼 아들을 주시하다 아들 이름을 부르며 "그만 나와라! 더 가면 빠져 죽는다!"를 외쳤다. 내가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있으니 걱정 마세요." 하며 소리쳤다. 아들은 배에 내려진 사다리에 잠시 머무르다 나를 찾아 수영했고 어머니의 목소리는 다급함과 함께 공포에 젖어 "빠져 죽어! 조심해야지!"를 외쳤다. 어머니는 정말 두려움이 가득 차서는 한 시간이 넘도록 아들을 감시하며 배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죽는다."를 외쳤다. 나는 정말 어찌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이십여 명이 넘는 가족, 연인, 친구들이 즐겁게 지중해 바다를 즐기는 중 어머님은 쉬지 않고 아들을 향해 "더 가면 빠져 죽어, 이라와!"를 외쳤다. 두어 번 경고하고 아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될 터인데 물놀이하는 시간 내내 어머니는 아들에게 "빠져 죽는다."를 외쳤다.


물이 깊어야 5미터 안팎이었고, 수영을 제법 하는 성인이 대여섯은 되었고, 보이는 시야는 너무도 투명하여 5미터 아래 작은 돌도 보이는 마당에, 더군다나 배의 7~8미터 근방에 모여 물놀이를 하는 것이니 사실 위험요소는 찾아보려야 볼 수 없는 상황인데, 어머니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지치지도 않고 손자에게 경고를 날렸다. 아들은 한 시간이 되자 나를 쳐다보곤 배로 올라갔다. 나는 아들이 올라가자 배에서 멀리 나와 물에 누웠다. 하늘을 바라봤다. 아들이 올라갔으니 어머님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은 사라졌고, 물놀이를 하던 사람들도 모두 지쳐 배에 올라가니 지중해의 바다는 정말 고요했다. 그 작은 해변에 떠 있는 것이라곤 배와 나 밖에 없었으니... 그제야 풍광 좋은 지중해를 맘껏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이, 뜨거운 햇볕이, 몽글거리던 솜사탕 같은 구름이, 작은 섬의 짙푸른 초록이 모두 좋았다. 그 아름다운 공간에서 어머님의 목소리는 잠시 허공을 떠다니다 남편의 얼굴을 소환했으니 남편이 왜 그리 물이 안 맞는다고, 두려움이 목까지 찼는지 단박에 이해됐다. 어머니의 두려움이, 어머니의 물에 대한 두려움이, 그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손자를 사랑하는 마음속에서, 있는 그대로 노출되어, 나는 별것 아니라 느꼈던 남편의 오래되고 단단히 뭉쳐있는 주입된 두려움의 실체를 보게 됐다.


혼자 십여분 바다에 떠 있다 천천히 배에 올랐다. 아들은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는 배에 오르는 나를 기다리다 내 눈을 쳐다봤다. 민망함과 난감함이 한겨울 초콜릿 알맹이처럼 뭉쳐있는 아들 눈망울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가이드는 당황한 얼굴로 내게 위스키 잔을 건넸다. 가이드는 "주욱 들이키세요. 몸과 맘이 싹 풀릴 겁니다." 했다. 단숨에 위스키를 들이켜고는 아들 옆에 앉아 아들 머리를 말리던 어머니를 보며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싶었다.


내가 어머니 옆에 앉으며 "어머니, 걱정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했다. 어머니는 "아니 위험하잖니. 조심해야지." 하며 나를 원망 섞인 표정으로 보셨다. 나는 살포시 웃으며 "어머니~ 여기 있는 사람 다 빠져 죽어도 손자는 동동 떠있을 실력인데.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세요. 이제 보셔서 아시겠죠? 장장 6년을 수영한 아이예요. 그리고 이런 바다는 죽을래도 죽기 힘들어요. 지켜보는 사람이 몇이고, 안전도구가 다 있는데. 여하튼 소리치시느라 고생하셨어." 했다. 어머니는 "야 나는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다. 시퍼런 바다에 발도 닿지 않는 곳에 들어가서 안 나오니 내가 죽겠더라." 했다. 나는 "물을 좀 드세요. 그래도 어머니, 지중해에 왔는데 수영은 좀 해야죠. 걱정하시는 것은 알지만 놀러 왔잖아요. 죽지 않고 살아왔으니 됐죠?" 하니 어머니는 "그래. 놀긴 놀아야지. 그래도 내가 겁이 나서 혼났다." 하며 가는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말리려 뱃머리로 나가니 아들이 조르르 따라왔고, 어머니는 "뱃머리는 위험해 가지 마!" 하는 소리가 뒤통수로 들렸다. 아들은 내 옆에 앉아선 "엄마! 힘들었어요." 했다. 나는 아들에게 "그래 알아, 미안하구나! 그런데 어쩌겠니. 할머니는 물을 무서워하는데, 우리가 이해해야지." 했다. 아들은 머리를 내 품에 대고 한동안 귀와 맘을 쉬었다.


조그만 아들이 할머니의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한 시간 가량 듣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였고, 함께 온 여행객들이 우리 가족을 바라보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으니 어린 아들은 아름다운 공간에서 보지 못했던 할머니의 본모습을 보며 할머니의 두려움을 보게 되었다. 그것뿐이랴! 아빠가 왜 물을 무서워하는지, 왜 수영을 할 때면 그리 허둥대었는지 그제야 깨닫는 듯했다. 아들은 그날 잊을 수 없는 특이한 추억을 갖게 되어 요즘도 물놀이를 가서 그 당시 이야기를 하면 아들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아빠를 보곤 "저,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한다.


남편의 두려움이 어디서 연유했는지 터키 여행을 하며 알게 됐다. 배를 내리며 아들은 남편을 바라보고 아빠가 왜 수영을 힘들어했는지, 빙상장에선 왜 그리 주눅 들어했는지 이해하겠다는, 아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위로의 눈빛을 보내며 아빠에게 안겼다. 아들은 아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호텔에서 남편에게 어머님의 절규를 말했더니, "바다 수영 소리를 듣는 그 순간 자신은 그 배를 타지 않아야 함을 알았다." 하면서, "당신이 고생했겠네." 했다. 어머니는 남편을 키우며 물 근처, 빙판 근처는 못 가게 했고, 그 공간을 죽음과 연결하여 한없는 두려움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음을 그날 알게 되었다.


남편이 "엄마는 온갖 것이 걱정이야. 걱정이 많아."라고 지나가듯 한 말을 내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무슨 대단한 걱정이 있겠는가? 부모가 하는 걱정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 했는데, 터키 지중해에서, 너무도 평온하고 아름다운 바다에서 경험해보니 어머님의 걱정은 차원이 달랐다.


어머니의 두려움이 어디서부터 연유되었는지, 그 두려움 또한 유전된 것인지, 그건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남편의 두려움은 아직도 존재하며 죽을 때까지 그 두려움이 자신의 내부에 숨어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부모의 두려움이 자식의 두려움으로 이전되었음을 목도하며 DNA에 의한 정보전달이던, 학습에 의한 전달이던, 극복해야 할 결함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치지 않고 극복하는 것이 삶임을 깨닫는다.


일지감치 딸과 아들은 어려서부터 다양한 운동을 시켰다. 수영 강습, 스케이트 강습, 스키 강습, 축구 강습, 탁구 강습, 테니스 강습 등 다양한 동작으로 몸 쓰는 방법을 익히도록 했다. 물이던, 산이던, 빙판이던, 눈판이던 처한 환경에서 즐기게 했다. 그 아이들이 더 자라 자신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즐기던, 금하던 그건 그들의 몫이겠지만 나는 주어진 환경에 그대로 노출돼 자연을 즐기길 바랬다. 지구의 70%가 물인 행성에서 물을 두려워하면 무엇하겠는가? 4계절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겨울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면 그 또한 얼마나 심심하겠는가?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 산행 등 아이들을 데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시간만 나면 데리고 다녔다.


빙상장에서 쫄쫄이 트리코를 입고 아이들과 스케이트를 타다 보면 아이들에게선 두려움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직선과 코너를 하며 체중을 싣고 앞으로 질주한다. 10년 넘게 가족운동으로 스케이트를 타지만 남편은 언제나 몸에 긴장이 가득하다. 컨디션이 좋으면 그나마 문제없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일 년에 채 열 번도 타지 않는 나보다 날이 빙판에 박혀, 발이 꼬여 넘어지기 일수다. 남편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남편의 두려움을 읽는다. 빙판 자체가 두렵고, 속도가 두렵고, 두려움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의 내면이 두렵다. 약 13년을 탔다. 스케이트에 투자한 시간으로 보면 내 열 배 이상의 시간을 빙상장에서 보냈음에도 두려움이 차고 넘친다. 두려움이 각인된 남편은 빙상장에서 두려움을 버리는 데 온 시간을 보낸다. 나보다 훨씬 빨라진 속도로 쌩하며 지나가는 남편은 차고 넘치던 두려움을 내려놓는 연습을 시간 날 때마다 하고 있다. 유전이든, 전이든, 부모로부터 받은 결점이든 그것을 극복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남편을 본다.


빙상장뿐이랴! 이제 남편은 아이들과 스노클링을 하며, 두려움이 턱까지 차던 물속 자신을 조금씩 버리고 있다.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바닷속을 즐겁게 관찰하는 것을 보며 두려움의 극복을 본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두려움을 자식 덕에, 자식이 함께 시간을 허락해 주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결점을 극복해 나가는 남편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우리는 어떻게 자랐건 간에 자신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연습하고 함께 나가야 하는 연약한 존재가 아닌지...


나와 남편이 우리 자식에겐 어떤 두려움을 주었는지 그건 모른다. 어차피 그건 아이들이 극복할 몫이고 그 아이들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을 기르며 극복할 또 다른 세계가 아닌가 싶다. 남편은 요즘도 일이 없는 날에 스케이트를 타러 빙상장을 간다. 2mm도 안 되는 스케이트 날에 체중을 싣고 최선을 다해 연습한다. 남편은 "나는 속도도 무섭고, 빙판도 무서워. 그런데 두렵긴 해도 2mm도 안 되는 날에 체중을 싣고 속도를 낼 때는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이상한 마력이 있단 말이야. 머릿속을 싹 지워버리는 상쾌함이 있어. 온 정신을 집중해 몇 바퀴 돌고 나면 너무 시원해. 정말 기분이 좋다니까?" 한다. 내가 "이제 그냥 땅에서 테니스를 쳐요." 해도 스케이트만 한 운동도 없다며 시간만 나면 가방을 둘러메고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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