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세계 6: 욕망을 직시하는 세계
드라마가 끝난 지 꽤 됐다. 부부의 세계. 파격적 내용과 신들린 연기로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했다. 동료 교수들도 동료 직원들도 모두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침이 튀도록 실컷 욕을 해대곤 한결같이 어린 아들(극 중 아들 이준영)을 걱정했다. 자식 없는 부부의 세계와 자식 있는 부부의 세계는 다르고, 자식 없는 부부와 자식 있는 부부의 이혼은 그래서 과정도, 내용도, 깊이도 다를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태호는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를 외쳐 온 국민의 미움을 쌌다. 그 말이 척 뇌리에 박혔다.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랑이 죄인가? 아니다. 사랑에 뭔 자격심사라도 있는가? 아니다. 사랑을 막자하여 막아지는 감정이던가? 아니다. "제어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대신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사랑만은 아니다(연애의 기억 p13)"라는 줄리안 반스의 주장처럼 말이다. 무슨 수로 막는가? 멀쩡한 아내, 남편을 두고 웬 사랑타령이냐고? 말이 무의미하다. 사랑에 빠진 것도, 사랑을 욕망한 것도 죄가 아니니,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어떤 처지이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함부로 죄라 할 수 없다.
사랑의 법적 맹세를 깼다 하여 죄가 될 리 있는가? 그걸 죄라 말하면 수많은 이혼녀와 이혼남은 죄인이고 죄의 피해자일 뿐이다. 수많은 이혼녀와 이혼남은 흔들리며 살고, 사랑하다 사랑을 잃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 주변 사람들일 뿐이다. 이혼은 인간관계의 상태를 설명할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사랑의 생성과 소멸을 어찌 죄라 하겠는가? 남편에게 어찌 생각하는지 물으니 "그렇지, 죄는 아니지. 처신이 문제지." 했다. 이태오의 죄라면 사랑에 빠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내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행위와 그를 통해 경제적 안온함을 취하려 했다는 점이다. 지나가는 말처럼 남편에게 "사랑에 빠지면 얼른 말해. 나중에 사랑이 죄는 아니라면서? 당신이 그랬잖아! 하지 말고." 하니, 남편은 크게 웃으며 "그럼~ 사랑이 죄는 아니니 당당하게 말할게. 걱정하지 마!" 했다. 참 말은 이상적이다. 그런 일이 생기면 난 방방 뛰며 피켓이라도 만들어 의료원 앞에 한 달을 서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닥치지 않은 일이니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말하는지도 모른다.
신혼초 우린 서로의 맹세를 당연시했다. 그러곤 남편과 웃으며 서로 사랑을 잃으면 바로 말해주기,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도 바로 말해주기, 재산은 법대로 처리하기, 자녀는 책임지기로 한 사람이 잘 키우기, 상대방은 육아비용 잘 주기로 정리했었다. 결혼 15년 즈음 아이들이 제법 커 아이들에게 "혹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 너희들은 누구랑 살래?" 하고 물으니 딸은 "당연히 엄마랑 살아야지, 아빠는 새엄마랑 깨가 쏟아져서 우리가 어찌 지내는지도 모를 거야. 엄마는 새아빠랑 살아도 우릴 먼저 볼 거라 생각하거든." 했다. 아들은 옆에 있다 "누나랑 같은 생각이에요. 아빠는 우리가 콩쥐가 돼도 모를 거예요." 했고 남편은 "야 그래도 둘 중에 하나는 아빠랑 산다고 해야지 너무하네." 했다.
남편은 깜찍한 아이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너희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아빠 그런 사람 아냐~." 했고, 나는 웃으며 "아이고 현명해라. 지금도 아빤 엄마뿐인데 새엄마랑 살면 안 봐도 그림이다. 알았다. 걱정마라. 새아빠가 너희들 구박하면 바로 아웃한다." 했었다. 남편은 아들에게 "너는 내가 기저귀 갈고 젖병 물려 키웠는데 그러기냐?" 했고, 딸은 "그건 그거고, 아빤 새엄마랑 살면 우리가 눈에 보이겠어요? 새엄마 말만 듣고, 새엄마만 볼텐데. 그렇지만 엄만 우릴 몇 초만 봐도 우리 맘을 알 것 같고. 그러니 엄마랑 살아야죠. 성인 될 때까지." 했다. 아들은 아빠를 쳐다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누나 말이 맞아. 아빠는 엄마밖에 없으면서. 엄마랑 살 거예요." 했다.
결혼 23년 차가 넘으니 두 아이는 "엄마 아빠가 행복하게 사는 게 최우선이란다. 둘이 살기 힘들면 알아서 각자 행복을 찾아도 된단다. 자기들은 걱정말고" 했다. 졸혼이네, 황혼이혼이네, 별거네, 의리로 산다는 말의 홍수 속에서 두 아이들은 아빠, 엄마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단다. 아들이 몇 년 전 "엄마 남편을 바꿔요." 했던 말이나 그 말을 전해 듣던 딸도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하였으니 다 자라 부모의 행복을 생각하는 자식이라니 그저 감사한 일이다. 딸과 아들은 부모가 어찌 살던 자신들과 부모 관계는 어떤 수단으로도 그 관계성이 회손 되지 않는다 여기니 참 좋다. 성장한 아이들이 부모를 그리 존중하고 개인의 행복을 기원해주다니. 그건 세상이 다 변해도 변해지지 않는 관계, 부모 자식 관계이기에 가능한 말이다. 그에 비해 부부 관계란 얼마나 가벼운 관계인가 말이다. 여하간 고맙다. 아이들이 우리 부부의 행복만 바란다니 이 보더 더 큰 효(孝)는 없는 듯하다.
살아오며 종종 가상 이혼 시나리오를 말했었다. 결혼 초 사랑이 식으면 절차에 따라 이혼해야지 하면서도 남편은 늘 "그럴 리가~.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맘이 변하겠어?" 했다. 결혼 10년 차 즈음 남편은 조그만 땅과 집을 사 결혼선물이라 내 명의로 계약 했었다. 그러더니 결혼 15년이 되어선 재산이 다 내 명의로 되어 있으니"죽어도 이혼할 수 없다." 했다. "이혼하면 자신은 불알 두쪽 찬 쪽박신세라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했다. 결혼 20년이 되니 남편은 "이혼하면 재산분할은 50:50으로 할 것인지." 슬그머니 물었다. "귀책사유가 자신에게 있어도 그리하겠냐?" 물었다. 그러더니 결혼 22년 차에 집을 짓고 등기를 내려하니 집은 자신 명의로 해야 하겠다나? "가진 게 너무 없어서 허전하니 집이라도 하나 갖고 있어야겠다."며 땅주인인 내게 허락을 구했다.
올해 부부의 세계를 보곤 재산분할은 정말 반반 할지 물어 크게 웃었다. 사실 신혼초엔 모두 법에 따라 해야지 하곤, 결혼 10년 차엔 "젊은 년과 사랑에 빠져봐! 얘고 재산이고 없는 줄 알아." 하며 경고했었다. 결혼 15년 차에는 "사랑 좋아하네. 그러기만 해 봐! 인터넷이며, 병원 앞이며, 대자보에 피켓 들고 창피를 톡톡히 줄 거야." 했다. 얘기만으로도 화가 났었다. 결혼 20년 즈음되니 그게 뭐 대수인가 싶었다. 사실, 얘들이 잘 자랐고, 살만큼 살았는데 남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행복하게 자~알 사세요. 그 대신 재산분할은 생각 마세요. 그년이랑 열심히 벌어서 잘 사세요." 했다. 그런데 25년이 되니 '이것저것 따지는 것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게 재산 분할하곤 잘 사세요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도 다 자라 양육비 정리도 없고, 재산정리만 하면 그만이니 부부는 맘이 식으면 정말 의미 없는 사이인 것 같다. 나는 남편에게 "이혼하면 법대로 해야지, 재산도 50:50으로 딱 나누고. 친정아버지가 내게 주신 작은 땅을 제외하곤. 아이들도 다 자랐는데 뭘 더 갖겠다 싸워. 귀찮네." 했다.
남편이 "옛날엔 병원 앞에서 남편이 바람났다 피켓 들고 있겠다면서, 재산도 하나도 못주고, 얘들도 못 보게 한다면서. 사랑이 식은 것 아냐?" 하기에 "아 왜 옛날 말을 하셔요. 생각해봐. 피켓은 웬 피켓. 피켓들 정성이면 사랑이 남은 거지. 왜 그걸 들고 있어 쓸데없이. 그 시간에 좋은 남자 구하러 나가는 게 낫지~ 되지도 않는 소릴 하시네. 살아보니 그럴 일이 아니야. 떠나간 맘은 간 거고 새맘을 찾던가 내 맘을 추스르던가 해야지." 했다.
남편은 재산 50:50 분할과 NO피켓 소리에 활짝 웃었다. 내가 "어라~ 그렇게 좋아? 반 준다니까? 참네. 그냥 행복하게 사는 시간도 모자랄 지경에 과거를 붙잡고는 못살지. 물론 잠시는 분노와 증오로 감당키 어렵겠지만." 하니 남편은 "그럴 일 없어. 일단 반을 준다니 허전하진 않네. 자 이리 와봐. 함 안아보자. 내 마누라!" 했다. 그렇게 좋은가 보다. 재산 반을 준다니 말이다. 참 사람 속 모르겠다.
"부부의 세계" 마지막 편을 보고 있는데 남편이 당직실에서 전화를 했었다. 뭐 하고 있냐? 물어 드라마를 본다 했더니 "재미있어?" 하고 묻다 환자가 왔다면 전화를 뚝 끊었다. 아침을 먹으며 남편이 드라마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물어 간단히 설명하니 남편은 "그래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네." 했다. 내가 "늘 의심하고, 계획하고, 실천해야지." 하니 남편은 나를 쳐다보며 "내가 당신을 의심해야 돼? 허긴 그래야지, 내가 너무 당신을 내버려 뒀지." 하며 다짐하듯 날 의혹의 눈초리로 째려봤다. 내가 "참 어이없네. 의심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라는 말을 상대를 의심하겠다 생각하니, 스스로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라는 말을 상대방을 의심하겠다 듣다니." 했다. 남편은 "아 그런 거였어? 나를 의심하라고?" 하며 웃음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봤다. 내가 "그럼. 자신 사랑을 의심해보고 사랑하면, 그 사랑을 더 구체적으로 발전시킬 계획을 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말인데 너무하네." 했다.
남편은 웃으며 "그렇지? 나야 당신을 사랑하지. 지금 막 의심해봤는데 사랑하네. 사랑해." 했다. 그날 나와 남편은 "부부의 세계" 드라마보다 몇 년 전 방영됐던 "최고의 이혼"이란 드라마가 생각의 여지를 더 많이 주는 드라마라는데 의견 일치를 봤다. "최고의 이혼"이 화제성은 떨어졌지만 성격차이를 겪는 부부의 잔잔한 스토리를 배경으로 부부 삶에서 개인 행복의 중요성을, 진정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혼은 행복을 위한 최고의 선택임을, 존중받고 존중하는 선택으로서의 이혼을 보여주어, 그 긍정적 발상이 타당하다 동의했다.
부부라도 부부의 삶이 한 개인의 행복에 우선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부부의 세계는 어렵다. 부부의 세계란 사랑으로 포장된 수많은 욕망이 뒤엉킨 연꽃밭 같은 세계가 아닌가한다. 연꽃밭처럼 연꽃의 진한 향기도 있지만 진흙에서 올라오는 온갖 냄새도 있으니 말이다.
욕망이 여과지 없이 노출되는 부부의 세계에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상대의 욕망을 그대로 직시하고 그만큼 내 욕망 또한 그대로 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생각만큼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어떤 욕망이던 욕망이 강한 자는 욕망이 약한 자를 소비하게 되니 말이다.
더군다나 사랑과 욕망은 같은 듯 다를 듯 경계가 모호하고 사랑과 존중의 경계 또한 모호하다. 남편이 사랑이라 말하지만 내게 욕망으로 비치면 그건 사랑일까? 욕망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부부 관계일까? 칼로 물 베기다. 베긴 하되 벨 수 없고 자국이 나되 자국이 없다. 몸도 알고 뇌도 알고 있으나 형체는 없고 감정만 남으니 모호함 뿐이다. 그게 쌓여 우린 알고 있다. 사랑인지, 욕망인지, 입밖에 내어 말하지 않으나 당사자는, 마음은 알고 있다. 연꽃은 늘 피지 않는다. 연꽃밭은 늘 잎만 무성하지도 않다. 때에 맞춰 잎이 펴고 꽃이 펴고 꽃이 지고 열매를 맺으며 생존할 뿐이다.
부부의 세계가 끝난 며칠 후 출근하는 남편에게 "숨겨둔 욕망이 있으면 그냥 말해. 내 힘 되는 데까지 들어주지." 하니 남편은 방긋 웃는다. 사랑으로 시작하여 욕망을 직시하고 욕망을 소비하며 사랑을 획득하는 공간이니 부부의 세계는 참 어렵지만 매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