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푸엔테 라 레이나 Puente la Reina ~ 에스테야 Estella ( 21km )
2. 알베르게: CAPUCHINO ROCAMADOR
5일째 걷는 중이다. 사람들과 마주치며 스스럼없이 "부엔 카미노"라 인사를 한다. 힘차게 인사를 하기도 명랑하게 인사를 하기도 가뿐 숨을 내쉬며 인사를 하기도 한다. 오늘 걸으며 우리말로 "안녕! 잘 걷자" 란 말이 이리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나 싶어 깜작 놀랐다.
발바닥에 불이 난 듯 화끈거려 저절로 인상이 구겨지고 있을 때 씩씩한 걸음으로 옆을 지나가는 순례객이 "부엔 카미노"하며 지나가면 순간 발의 고통이 잊힌다. 정말 감쪽같이 발에 쏠려 있던 생각이 소리를 따라 반응하며 나도 부엔 카미노를 외치며 발의 고통을 잊는다. 신기하다. 너무 아파 옴짝달싹 못할 것 같은 내 발이 저절로 움직이며"고통을 잊고 잘 걸어봅시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첫날 피레네 산을 넘을 때 안개와 비바람에 길을 몰라 갈림길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거구의 한 여성이 스틱으로 방향을 알려줬다. 그녀와 함께 걸으며 어디서 왔는지 물으니 프랑스에서 왔다며 너는 한국에서 왔지? 했다. 내가 어찌 알았어? 하며 물으니 너의 동료들을 계속 만나고 왔거든 했다. 나는 연희라고 하는데 너는 이름이 뭐니? 하고 물으니 나는 "요새"야 했다. 요셉이 아닌 요새라고 말이다. 한참 길을 가다 눈이 내린 국경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그녀가 내게 다가와 도움을 요청했다. 장갑 없이 스틱을 사용해 손은 이미 굳어있었고 벌건 상태였다.
스낵 봉투를 열어 간단한 간식을 먹으려 하는데 도대체 손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스낵봉투, 배낭, 우비를 열어주니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워낙 성큼성큼 잘 걷던 그녀가 먼저 길을 나섰고 30여 분 후 대피소에서 만났을 때 다시 길을 나서며 내게 부엔 카미노를 외쳤다. 눈이 쌓여있고 비바람이 부니 조심해서 내려오란 부엔 카미노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았다. 다음날 아침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내게 다가와 "연희! 어제 정말 고마웠어. 내 손이 너무 얼어서 무얼 할 수가 없었는데 너의 도움이 컸어"하며 나를 쳐다봤다. 178cm는 족히 넘을 것 같은 거구의 그녀는 한없이 보드랍고 넉넉한 미소로 날 내려다봤다. 나는 ""요새, 뭘 당연한 것을!"하며 웃었다. 그녀는 그날로 다시 피레네를 넘어 프랑스로 들어간다며 부엔 카미노를 외쳤다. 그녀의 부엔 카미노는 "연희야 참 고마웠어. 그리고 무사히 순례길을 가렴. 너의 순례길에 응원을 보낼게" 하는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둘째 날 과연 이 길을 잘 걸을 수 있을까 하며 의혹을 갖고 길을 가던 중 혼자 씩씩하게 걷는 동양 여자를 만나 서로 눈인사하며 부엔 카미노를 외쳤다. 몇 발자국 함께 길을 걷다 혹여 한국인인가 싶어 말을 거니 중국 학생이었다. 홍콩 근교에 사는 학생인데 지금은 독일에서 교환학생 중이고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다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이름이 "이"라고 하던 중국 학생은 홍상수 영화를 사랑한다 했다. 평범한 일상과 보통 사람을 찍는 내용이 좋다며 입이 마르게 홍상수 영화를 칭찬하며 내 의견을 물었다. 개인적으로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던 나는 내딛기 힘든 발걸음에도 힘이 절로 나고 젊은 학생과 한국의 영상문화를 얘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발의 고통도 잊고 영화 얘기, 코로나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녀와 나의 부엔 카미노에는 나이와 국적은 다르지만 함께 걸으며 문화의 울타리에 경계가 없음을 확인하는 한마디였다.
이틀 전 팜플로나를 들어서며 새끼발가락들의 아우성을 들으며 걷고 있을 때였다. 족히 10kg은 될 것 같은 배낭을 멘 중년 남성이 내게 부엔 카미노라 인사를 했다. 내가 한숨을 쉬며 부엔 카미노라 하니 싱긋 웃으며 한국에서 온 순례자지? 하며 혼자 걷고 있는 내게 힘내라 했다. 내가 너는 어디서 왔니? 하니그는 독일에서 온 스테판이라며 너도 팜플로나를 가는 거지? 거기 알베르게에서 묵지? 하며 목적지를 물었는데 나는 앞쪽 동료를 따라가고 있어. 어느 알베르게인지는 모른다 했더니스테판이 크게 웃었다. 스테판은 활짝 웃으며 잘 걷길 바라 하며 성큼성큼 앞서 나갔다.
스테판과 1km를 넘게 걸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때 새끼발가락이 아프다 외치던 소리는 생각나지 않고 독일에서 온 스테판과 함께 걸으며 2kg이나 나갈까 하는 배낭을 메고 걷는 나는 참 유유자적한 순례자구나 했다. 스테판의 부엔 카미노는 이제 목적지가 멀지 않았어 힘내. 4km만 가면 되는 거야의 의미였다.
어제는 용서의 언덕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하며 사진을 찍다 이태리에서 온 마리암을 만났다. 20대 후반의 마리암은 수줍게 웃는 순례자였다. 내가 이태리 사람이죠?하고 이태리어로 묻자 그녀는 반가운 미소와 함께 너는 어떻게 이태리어를 하니? 하고 물었다. 이태리에서 일 년을 공부했는데 이젠 제대로 기억나는 단어가 없어하며 웃으니 그녀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럼 어디서 공부했어? 하고 물었다. 밀라노에서 패션 공부를 했어하니마리암은 활짝 웃었다. 마리암은 "나는 한국에 한 번도 가본적이 없는데 꼭 가보고 싶어" 했고 나는 "마리암! 너는 분명 한국에 와서 재미있게 지낼 거야"했다. 마리암과 부엔 카미노라 인사하며 내가 말한 부엔 카미노는 마리암에게 오늘 잘 걷고 어느 좋은 날 한국에서 재미나게 문화를 즐기며 걷길 바래의 의미가 들어가 있음을 느꼈다. 마리암이 활짝 웃으며 부엔 카미노 하였을 때 그녀의 젊음이 느껴져 좋고밀라노에서의 내 젊음이 생각나 좋았다.
날마다 길을 걸으며 얼마나 많은 부엔 카미노를 하는지 모른다. 인사를 하며서로에게 잘 걷고 있어, 잘 견디고 있어, 우리 모두 힘들지만 잘 견디고 있는 거야 하는 위로를 보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수많은 의미가 있는 부엔 카미노! 나도 모르게 기도문처럼 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진정한 부엔 카미노의 의미를 깨닫는 길이지 않은가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