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들어가며
2022년, 고맙게도 일 년 동안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2월부터 시작된 연수 기간 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한동안은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을 보냈다.
날이 풀리면 어디로 여행을 갈까? 어느 곳이 좋을지 대충 찾아보던 중,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던 남편이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2층 서재에서 나란히 컴퓨터 책상을 놓고, 자료를 찾거나 교재를 쓰거나 기사를 읽던 날들이 익숙했던 우리.
그때 남편의 작고 익숙한 코웃음이 순간 귓가를 스쳤다.
아마 그 콧바람 때문이었을까?
‘가볼까?’
그랬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끈기와 체력이라는 자신감 하나로 시작한 일이었다.
준비 없는 순례길은 말 그대로 악몽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나조차 몰랐던 사실이지만, 내 발은 완전한 평발이었다.
장시간 걷는다는 건 평발에게는 그야말로 잔혹한 시간이었다.
순례길을 오롯이 걸어낸 내 발은, 정작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정형외과로 직행했다.
의사는 온통 부어 있는 내 발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호빗족’의 발이 내 발처럼 퉁퉁하고 단단했을지도 모르겠다.
2층 안방에서 아래층 거실로 내려오는 것조차 버거웠다.
800km를 걸어낸 내 발은 10m조차 걷기를 거부했다.
남편은 2층으로 음식을 날랐고, 나는 말 그대로 집 안에서 고치처럼 지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들어서자 다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아주 무심하게 말했다.
“이탈리아 산골에 가서 한 달 정도 지내볼까 해요.
가서 가벼운 소설을 써보려고요.
배운 적은 없지만, 순례길과 관련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어떨까 싶어서요.
연수 기간이니까, 다녀올게요.”
그렇게 나는 이탈리아 남부의 조용한 산골 숙소로 들어갔다.
조용해도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었다.
종일 소설을 쓰고, 가끔은 가방을 메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내려가 먹거리를 사왔다.
아침이면 장작을 피우고, 해가 지면 다시 장작을 때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소설 속 주미, 수연, 덕희, 성미, 숙이를 만나는 시간은 아프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이탈리아 산골에서 태어난 그녀들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그녀들을 이제 세상에 내놓는다.
그녀들도,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이 소설과 함께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풍요로워지고, 당당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