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사람도 살리는 사람

'품격 있는 사람'

by 정루시아

시골에 있는 수연 엄마는 그저 ‘이혼했다’는 말만 했고, 주미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엄마들끼리 같은 성당을 다녔기에 집안 소식은 대강 들었지만, 이토록 깊고 구체적인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수연은 순례길을 걸으며 '자신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는지' 되물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수연은 남편의 학벌을 선망했던 어린 시절 자신의 욕망을 알고 있었다. 정상이 아닌 남편의 집착을 알면서도 어린 민이를 그와 함께 살게 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수연은 목소리를 내고 주장할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와 시간을 스스로 외면했다.

외면은 곧 동조였고, 결국 아들 민이와 자신을 '루저'로 규정짓도록 방치했다는 죄책감이 마음속에 자리했다.

서울과 지방을 편 가르던 남편에게 단호히 맞서지 못했던 자신이 문제의 근원임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더군다나 이혼을 먼저 제안한 것도 자신 아니었던가?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1%의 남편'에게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불륜은 남편이 저질렀지만, 그조차 자신의 책임인 듯 말이다.


용서의 언덕을 지난 이틀 후, 새벽.

산솔(Sansol)에서 로그로뇨(Logroño)로 향하던 길에서 수연은 울고 싶은 얼굴로 말했다.


“주미야.

난 내가 한동안 창피하고 촌스럽고 바보 같아서 너무 힘들었어.

그런데 이혼 후 방학 때 미국에 있는 민이에게 갔는데, 민이가 그러는 거야.


‘엄마! 엄마는 정말 따스하고 품격 있는 사람이에요.

어렸을 때 엄마가 늘 말했잖아요.

사람에게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그런데 그건 엄마 말이잖아요.

아빠는 늘 반대로 말했으니까요.

고등학교 때 아빠는 정말 심했어요.

모의고사나 학교 성적표를 보고는 불같이 화를 냈어요.

고3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엄마가 제 어깨를 잡고 했던 말, 기억나요?


‘아들, 겨루는 지식은 랭킹으로 매겨지지만

인간의 품격은 몇 년의 공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

인성과 품격은 지식과는 격이 달라.

넌 아름다운 인성과 품격을 가졌어.

너처럼 따스하고 봄날의 햇살 같은 사람을 엄마는 본 적이 없어.

너는 엄마보다 아빠보다 훨씬 기품 있는 존재야.

어떤 대학에 가든 엄마는 널 사랑해.

아빠가 저렇게 조바심을 내도 다 지나갈 일이야. 걱정하지 마.’


그 말을 듣고 정말 따스했어요.

그래서 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고3 올라갈 즈음, 내가 쓸모없다는 생각에,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말해줘서 견딜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엄마! 엄마는 죽고 싶은 사람도 살리는 사람이에요.

이혼이 뭐 대수예요.

아빠가 복을 차버린 거라고 생각해요.”


수연은 아들의 말을 전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주미도 민이가 그렇게 엄마를 위로했다는 이야기에 저절로 눈물이 났다.


주미가 나직하게 말했다.

"자식이란 존재가 참 귀하구나. 정말 잘 자랐구나~. 민이는 널 닮아 근사하게 잘 자랐어. 감사하다~."


수연이 볼을 손으로 닦다 웃으며 말을 받았다.

"부모가 자식을 키운다고 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보듬고 일으켜 주기도 한다는 걸 새삼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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