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 사랑

기득권의 사랑

by 정루시아

인솔자가 아침에 “돌길 조심하세요. 초반에 삐끗하면 남은 여정이 다 망가질 수 있어요”하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있잖아, 주미야.
나는 내가 참 똑똑한 줄 알았어.
S대 석·박사에 졸업하고 바로 교수까지 됐으니까.
그래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지.
석사 시절 남편을 만났을 때도,
‘내가 똑똑하니까~~ 진짜 똑똑한 사람이 날 알아보는 거구나’ 싶었지.
그런데… 민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즈음부터 사람이 달라지더라고.
애는 그렇게 키우면 안된다고, 상위 1%가 될 수 없다고 말야.”


주미는 조심스럽게 수연의 속도에 맞춰 걸으며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지. 나도 바빴거든. 승진에, 강의에, 학회에, 랩실 운영까지.
저녁에 퇴근하면 민이가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내 품에 안겨 자곤 했어. 그게 참 좋았어.

민이가 까르르 웃으면 봄날에 햇살이 쏟아지는 것 같았어.”


수연은 민이를 말할 때면 입가에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대단한 반찬 아니어도, 민이랑 밥을 먹으면 참기름을 뿌린 것처럼 맛있었거든.

작은 입으로 콩조림이랑 멸치를 오물오물 씹으면서 고개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은… 봄바람 같았어.”


수연이 민이를 묘사할 때, 주미도 딸과 아들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민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남편이 데려갔으니까, 7년을 같이 살았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 놀이터에서 흙장난도 하고, 강의 없는 날엔 민이랑 자전거도 타고, 마트에도 가고….

그때는 진짜, 행복했어.”


"그래. 맞아~.

애들 어렸을 땐 잘 먹어도 행복하고, 건강만 해도 감사하고 그랬지."

주미도 수연의 말에 따스하게 맞짱구쳤다.


“남편이 민이를 데리고 서울로 갔을 땐, 자기 자식이니까 잘 키우겠거니 했어.

그런데 애가 중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표정이 굳더니, 점점 웃음을 잃더라고.”


“고1 겨울방학 때, 늦은 밤 내가 학원에 데리러 갔는데, 민이가 그러더라. ‘엄마, 엄마가 옆에 있어서 견뎌요. 잘하려고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질 않아요.’ 그러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거야.”

수연은 민이의 말을 옮기며 굵은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


“그 순간, 정말… 마음이 찢어졌어.”


주미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민이가 한국 대학을 포기하고 미국 유학을 간 후부터, 그 인간이 나를 싸구려 취급하더라.

촌스럽다, 수준 떨어진다…. 민이가 S대를 못 갔던 게 다 내 탓이라고.”


수연은 잠시 말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주미는 말없이 그녀 곁을 걸었다.

인생에도 길이 있듯, 말에도 길이 있는 듯했다.

수연은 아픈 발을 디디며, 더 슬프고도 고통스런 말의 길을 열고 있었다.


“정말 얼마나 내 탓을 하던지.

서울 교수들은 일이면 일, 자식 학업이면 학업, 얼마나 처절하게 하고 사는 줄 아느냐,

지방대 출신들은 한계가 있다느니….

처음엔 그냥 넘겼어.

똑똑한 자기 아들이 S대를 못 갔으니 얼마나 가슴에 맺혔겠어.

그런데 말이 점점 독해지더라.

옷이 촌스럽다느니, 문화 수준이 어디 가겠냐느니.
처음엔 화가 나서 그런가보다 했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었어.
주말부부였으니까, 일단 기다려 보자 했어. 화가 나서 그런 거라고....”


수연은 분노와 억울함에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발의 통증에도 불구하고, 그 돌길을 거침없이 밟고 지나갔다.

자신이 겪은 수모에 비하면, 이 정도의 돌 길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걸었다.


“그런데, 난 몰랐어.
그 인간이 왜 그렇게 억지를 쓰는지.”


주미는 묵묵히 그녀 옆을 걸었다.
어른 머리만 한 돌, 아이 머리만 한 돌이 길 위에 가득했다.

어디서 퍼다 놓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 산자락에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돌길 위에서, 수연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수연은 분노와 억울함에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발의 통증에도 불구하고, 그 돌길을 거침없이 밟고 지나갔다. 자신이 겪은 수모에 비하면, 이 정도의 돌 길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걸었다.


“민이가 유학 간 이후로는 방학마다 내가 민이한테 갔어.

민이한테 너무 미안했거든. 나는 학생들 가르친다고 바쁘다며, 민이를 그 인간에게 맡겨버렸으니까 말야.

힘들어도 내가 싸웠어야 했는데,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몰라.

그런데 말이야. 꼴에 그 인간이 말하길…‘1%의 사랑’이라나 뭐라나…. 진짜 지랄을 하더라고.”


그 말과 동시에 수연은 입을 다물었다.

수연은 저도 모르게 ‘불륜’을 남편 말대로 ‘1%의 사랑’이라 표현했다.


이전 10화용서의 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