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긴 다리를 썼을 땐 다 이유가 있겠지!

딸의 시간 8

by 정루시아



초등학교 4학년(2005년) 이던 딸이 하루는 욕심을 잔뜩 부리는 5살 남동생을 어쩌지 못해 그렁그렁 눈물 맺힌 눈으로 내게 왔다. 동생을 가르키며 "쟤가 자꾸 욕심을 부려요. 내가 젤리를 공평하게 나눴는데도요. 짜증 나요!" 하기에, 딸과 아들을 앉히곤 당부 겸, 경고 겸, 서열정리를 했다.


“아들, 엄마는 누나가 욕심부리며 남의 것 탐내는 걸 본 적 없는데~. 누나는 과자던, 사탕이던, 과일이던 둘이 나눠먹으라면 네게 더 주면 줬지 자기가 더 갖지 않을 텐데” 아들 눈을 보며 내가 물었다. “누나가 네 것을 뺏은 적 있니?” 아들은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누나가 누나 것 아닌 것에 욕심부리는 것 봤어?” 아들은 고개를 살그머니 숙이며 마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아들~ 누나가 맘에 안든다고 너 때린 적 있어?” 아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두 손으로 아들의 작은 얼굴을 감싸고 아들 눈을 보며 말했다.


“아들, 욕심날 수 있지, 그럼 떼를 쓰지 말고 누나를 설득해. 누나가 싫다면 그건 누나 판단이고, 누나 것이니 그 판단은 누나의 정당한 권리야. 누나가 그걸 주던 안 주던 누나 걸 갖고 억지로 떼 쓰면 안 되지, 서로 좋고 싫은 게 다르니까 말로 타협해야지, 그냥 내가 좋으니까 갖겠다고 욕심부리지 말고, 누나가 더 크고 힘이 세어도 네 것을 빼앗지 안잖니. 욕심부리지 마~ 알았지?” 그리 말하니 조그마한 아들 녀석은 눈을 말똥말똥 뜨곤 입을 삐죽거렸다. 할머니가 자신만 유독 귀하게 여기며 지낸 그 기억나지 않는 시간들이 뭉쳐 아들은 쉽게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독차지하려 했다.


"딸, 동생이 알아들었을 거야. 그리고 너무 어이없게 떼를 쓰면 그 긴 다리로 길게 한 번 밀치렴. 다치지 않게." 아들은 자신보다 두 배 정도 긴 누나의 다리를 보곤 눈이 왕사탕 만해졌다. "아들, 걱정 마, 네가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누나가 저 다리를 평생 네게 한 번 쓸까 싶다. 참을성 하나는 엄마보다 더 하니 걱정 말고, 혹 누나가 저 다리를 썼을 땐 다 이유가 있을 테지. 네가 정말 말도 안 되는 떼를 쓴다는 거니까, 알았어?" 하니 걱정이 산만했던 아들도 기분이 풀려 생글생글 웃는 누나를 보곤 피식 웃었다. 그 뒤로 둘은 잘 지냈다.


딸이 중학교 2학년 즈음, 그 긴 다리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남동생에게 딱 한 번 사용됐다. 아들은 내게 달려와 울며 "누나가 자길 다리로 밀쳤다"며 서럽게 울었고, 딸은 입을 내밀고 기가 죽어 서 있었다. 내가 우는 아들을 보고 "누나가 왜 다리로 너를 밀었을까?" 했더니, 아들은 시치미를 떼고 눈물만 뚝뚝 흘리며 말이 없었다. 내가 웃으며 "딸! 네가 그냥 재미 삼아 다리를 썼을 것 같진 않고, 이유는 말해줘야 할 듯한데" 하니,


딸은 "웬만하면 다리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으나 자신의 인내심에 한계가 왔으며, 이 번 참에 다리를 한 번 사용하지 않으면 동생의 버릇을 고치기 어렵지 않을까 했고, 자기 다리의 길이가 남달리 길고, 3년 동안의 쇼트트랙으로 단련된 다리를 한 번은 사용하는 것이 시기적절할 것"이라 조곤 조곤 말했다. 울며 듣고 있던 아들도 누나의 말이 어찌나 합당하고 정당한지 고개를 끄덕이다 멋쩍게 울다 웃었다.


사건이야 별것 없었다. 통의 3분의 1 쯤 남은 호두 아이스크림을 먹다 싸움이 난 것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아들이 식탐을 부려 몇 수저 남지 않은 통을 들고 요리저리 피하다 긴 누나의 다리에 딱 걸린 게다. "아니 뭔 아이스크림을 갖고 싸워?" 하며 내가 딸을 바라보니 딸은 눈이 붉어지며 말했다. "엄마, 애가 틈만 나면 내 방에 들어와 물건을 들 쑤셔서 몇 번 그러지 말라했고, 내가 정성 들여 그린 그림에도 볼펜으로 낙서를 해서 그러지 말라고 몇 차례 경고했었고, 할머니가 오셔서 우리 봐줄 때도 엄마가 없으니까 과자며, 과일이며 늘 양보했는데, 오늘은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어요." 하며 평소엔 차분하게 말하던 딸도 화를 못 참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보지 않아도 딸이 왜 그랬는지 알겠다 싶었다. 딸은 동생이 유독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니 동생이 두 수저 먹는 동안 한 수저 뜨며 한껏 배려를 해주었을 게다. 그런데도 욕심 부리는 동생이 꼴 보기 싫은 데다, 중학교 2학년 사춘기의 불안한 심리상태에 놓였으며(중학교 2학년이 무서워 북한군이 못 쳐들어온다는 그 시기였으며), 모처럼 방학이라 엄마가 집에서 작업 중인 상황이니, 학기 중 내가 없는 시간 동안 늘 할머니를 등에 업고 기세 등등한 동생을 한 번은 손봐주고 싶었으리라.

내가 딸과 아들을 번갈아 보며 밝은 목소리로 "다리 사용할만 했네" 했을 땐 모두 크게 웃었다. 아들은 누나의 말속에 자신의 못된 짓이 낱낱이 밝혀지고 자신이 숨을 곳은 내 품속밖에 없다 생각했는지 눈물을 흘리다 살그머니 내 품에 안겨 내 얼굴과 누나 얼굴을 번갈아 보다 부끄러움의 웃음을 뗬다. 내가 "울다 웃으면 00 멍에 털이 난다는데" 했더니 아들은 작은 손으로 내 가슴을 살살치며 울다 웃기를 반복하고 딸은 혹시나 혼이 날까 기죽어하다 어깨를 쭉 펴곤 밝게 웃었다. 두 아이는 그 뒤로 소소한 언쟁을 가끔 하였으나 싸움이라 할만한 다툼은 없었고, 딸은 그 뒤로 자신의 긴 다리를 동생에게 사용하지 않았다.


딸이 유독 긴 다리로 스케이트 훈련을 할 때였다. 나는 유치원 다니던 아들을 안고 스케이트장 관람석에 앉아 추위로 오들오들 떨며 딸의 스케이팅을 보며 아들에게 말했었다. “누나 다리 길지?”, “네, 엄마, 누나 다리는 기린 같아요!” “그러네, 저 봐, 한 번 밀어도 쑥 나가고, 그지?” "네, 다른 누나, 형들보다 길어요. 정말!" 아들은 딸의 스케이팅을 보며 누나가 한 번 밀면 얼마나 속도가 빨라졌는지를, 누나의 단련된 허벅지로부터 나오는 힘이 얼마나 센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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