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조금 넓은 곳에 그려도 되나요?
딸의 시간 7
2006년 1월 박사논문을 책장에 소복이 쌓아두고 초등학교 5학년인 딸에게 “이제 엄마가 집에 있을 예정이니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으면 언제든 부르렴. 간식 챙겨줄게.”했다. 1월 중순에 태어난 딸을 위해 몇 년 만에 딸의 친구들을 불러 생일파티를 열었다. 생일상이라고 해야 떡볶이와 피자, 치킨, 김밥이지만 내가 만드는 김밥을 유독 좋아하는 애들을 위해 아침부터 부산하게 김밥을 만들었다. 모처럼 딸의 친구들이 오니 6살 아들도 덩달아 신이 나 누나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집은 축제 같았다.
신나게 노는 두 아이를 보며 나로 인해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친구는커녕, 주말마다 실험실에서 온 가족이 시간을 보낸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 했다. 내가 전자통신연구원의 포닥으로 나가기 전인 3~4개월 동안 딸은 친구들을 물고기 떼처럼 몰고 왔다. 늘 이 집 저 집 놀러 가서 얻어만 먹던 딸의 입장에선 몇 년 만에 친한 친구들에게 간식을 베풀 기회였을 게다.
어느 날 인가 딸은 내게 와서 약간 쭈뼛거리며 물었다. “어머니, 그림을 조금 넓은 곳에 그려도 되나요?” 내가 “넓은 곳? 그래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하렴.”하고 말하니, 딸은 “정말 넓은 곳인데요.”하기에 “네 맘대로 하렴. 스케치북이 작구나, 엄마가 큰 스케치북 사줄게.”했다. 그날은 딸이 친구들과 저녁시간까지 땀을 흘리며 놀다, “어머니, 오늘은 피곤해서 일찍 잘게요.”하곤 방으로 들어갔었다.
다음날 딸의 방을 정리하러 들어가니 침대가 놓인 서쪽 벽 중앙에 연필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만화책에서 볼만한 소년, 소녀들이 다양한 포즈와 표정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그림엔 말 풍선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책상 서랍 속엔 딸이 작성한 두 권의 만화 노트가 있었고, 옷장 안에는 큰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소녀 주인공 만화가(다섯 권) 숨어있었다. 남편의 당직과 나의 늦은 퇴근으로 애들을 챙겨 주시던 시어머니가 딸을 보며, "공부도 안 하고 허구한 날 쓸데없는 그림만 그린다"며 혀를 차던 소리가 화살처럼 지나갔다.
그날 저녁, 딸에게 “스케치북 사다 주려 했는데 더 넓은 곳이 좋겠구나.”했다. 딸은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 저도 모르게 자랑삼아 벽에 만화를 그려놓고 나선 혼이 날까 걱정된듯했다. 나는 딸의 맑은 눈을 보며 밝게 말했다. “볼펜으로 그려도 되고, 색칠을 해도 돼. 네 방이잖니! 너의 공간이고, 한 번 잘 채워보렴” 했다. 딸은 “그래도 돼요? 정말이죠? 이제 잠잘 때도 보면서 자고 말이죠! 고마워요, 어머니!”하며 얼굴이 환해졌다.
딸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며 벽면에 그림을 가득 그렸다. 딸의 키가 자라는 것에 맞춰 그림은 자라났고 딸의 친구들은 딸의 방에서 김밥과 떡볶이를 먹으며 그림을 구경했다. 벽면 한 가득 빼곡히 그림을 그리던 딸이,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든다며 노트 가득 만화를 그리던 딸이, 세일러문 의 요술지팡이를 그리던 딸이,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후 내게 브런치 작업을 제안했다. 그림은 자기가 그려보겠다 하면서...
딸의 눈에 비친 가족은, 아빠는 양, 엄마는 여우, 본인은 곰, 남동생은 고슴도치였다.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도 회사 일에 정신없지만 딸은 자기만의 색깔로 그림을 그리며 우리 가족을 안아주고 있다.
딸의 바쁨을 아는 내가 “바쁘면 이번 그림은 대충 그려, 대충 해도 돼. 누가 뭐 그리 본다고~”했더니, 딸은 제법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바쁠수록, 힘들수록 대충 하면 안 돼요. 바쁘고 힘들면 조금 늦추면 되지만 대충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늘 최선을 다해야죠.” 딸에게서 크게 한방 먹었다. 남편이 옆에서 통화내용을 듣고는 “당신은 딸을 잘 몰라! 이제 당신 고생할 일만 남았군!” 한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벽면을 가득 채운 딸을, 한 번 시작하면 좀처럼 포기를 모르는 딸을, 너무 쉽게 봤다. 그 열정을…
그러나 딸! 너무 힘들 때는, 피곤할 때는, 바쁠 때는 종이를 접어 뚫고 가듯 잠시 일상과 공간을 비워둬도 된단다. 우린 3차원에 살지만 이 우주는 인간의 삶을 3차원으로 묶어두지 않거든. 내가 박사과정으로 너무 힘들 때 종이를 접듯 그 시간을 접어봐서 아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