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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Jan 11. 2020

엄마! 어머니라 불러도 돼요?

딸의 시간 6

 


이태리 밀라노로 두 아이를 떼어놓고 혼자 유학을 다녀온 2003년 가을, 대장금 드라마(大長今: 2003년 9월 15일부터 2004년 3월 23일까지 방영)가 시작됐다. 딸은 일 년이나 떨어져 있던 엄마가 오니 천상 해맑은 아이로 돌아왔다. 할머니와 돌봄 아주머니와 함께 1년을 사는 동안 딸은 소위 싫은 소리를 노상 들었어야 됐다. 남동생이 5살이나 어렸거니와 남아선호 생각이 강한 할머니는 당신도 모르게 손녀에겐 쓴소리를 했다 한다.


유학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딸이 얼마나 나를 반겼는지는 말해서 무엇하랴! 한 달이 막 지났을 즈음, 대장금은 전 국민을 TV 앞에 불러 앉히고 회를 거듭하며 인기를 끌었다. 장금이를 보기 위해 딸은 미리 숙제를 하고, 장금이가 시작되기 전 소파에 반듯이 앉아 장금이의 성장을 지켜봤다.


딸은 대장금이 끝나면, 거실에서 오나라를 부르며, “엄마, 장금이는 정말 대단하다. 아니 모르는 게 없고, 그렇죠?”하며 무릎 고 바짝 눈앞까지 다가와서는 구슬 떨어지는 목소리로 묻곤 했었다. 그때 난 “그만큼 장금이가 열심히 노력하는 게지.”하며, “너도 나중에 하고 싶은 것 있음 열심히 해봐. 장금이처럼” 하고 말했었다. 딸은 장금이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고, 시련을 견디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가나라 가나라 아주 가나~"를 입에 달고 살았다.


대장금 인기가 하늘을 찌르며 종영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저녁, 딸은 내게 물었다. “엄마? 어머니라고 불러도 돼요?”, “어머니? 왜?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어?”하고 물으니, 딸은 똘똘한 눈망울과 미소를 머금고, “네,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어요.”했다. 난 속으로 ‘허참 대장금에  빠지더니 갑자기 어머니라니, 한 달 부르다 말겠지' 싶어, “그러려무나?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래, 어머니라고!”하고 대답했었다.


그 뒤로 2년 동안 딸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람이 있던, 없던, 손님이 오건, 우리 가족만 있건, 날 "어머니"라 불렀다. 친정엄마는 딸을 보고 “쟤가 왜 그러냐?”묻고, 친정아버지는 “옛날엔 모두 저리 공손히 불렀다”며 본인의 어머니를 부르던 시절을 소환하는 듯했고, 시부모님은 “쟤는 참 유난하다”며 말을 접었다.


집에 놀러 온 실험실 후배들도 딸이 "어머니"라 부르며, “물 드실래요?” 하고 자신들을 직접 대접하려는 모양새를 보곤 눈앞에서 배를 잡고 웃지는 못했지만 “선배! 참 듣기 힘든 말인데. 좋네요!” 하며 딸의 말과 태도를 칭찬했었다.


내 기억에 딸은 5학년 여름방학에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어머니를 접고 엄마로 호칭을 바꿨다. 내가 딸에게 “왜 그냥  밀고 나가지 않니?” 했더니, “이제는 됐어요”며 엄마가 더 친근한 것 같다고 눈을 씽긋했다.


딸이 장금이를 본 후 어머니라고 불러준 그 시기가, 그리고 약 2년간의 그 혹독한 시기가 실은 내겐 박사과정의 가장 힘든 시기였음을 생각하면, 딸이 공손히 나를 어머니라 부르던 그 소리는 애 둘을 키우며 나이 들어 공부하는 나에게 장금이처럼 씩씩하게 난관을 모두 제거하며 힘든 과정을 잘 극복하라는 격려의 소리였음을 딸은 아마 모를 것이다.


딸이 "어머니, 오늘도 늦게 오셔요? 어머니, 오늘 학교 운동회인데 바쁘셔서 오시기 어렵죠? 어머니, 부모와 함께 에버랜드 가는 프로그램인데, 저는 혼자 가나요?" 하며 공손한 자세와 다정한 목소리로 묻던 딸에게 난, "딸, 오늘은 실험이 있어 아주 늦게 집에 올듯하구나. 이번 운동회는 천안 할머니가 가실 거야, 에버랜드는 조치원 할머니랑 가면 어떻겠니?" 하며 늘 미안한 마음으로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나이 40대 초반에 자식에게 어머니라 불린 엄마가 얼마나 있을까? 딸은 2년 넘게 날 '어머니'라 부르고 한없는 존칭을 하며 장금이를 소환하여 장금이처럼 치열하게 살아가라고 자신도 모르게 날 지지해주고 믿어주었다. 그런 딸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될까 싶다.


딸! 이제는 엄마가 '한상궁'이라도 될 터이니 네가 '장금이'처럼 살아라. 너무 힘들어서 사실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원한다면 한 번 해보라 하고 싶구나. 힘들지만 대한민국이 변화한다 하니 혹 아니? 좀 쉬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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