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노트를 발견했다. 딸을 키우며 써 놓은 시인데, 딸이 세 살 때 심한 독감으로 잠투정을 하며 울다 잔 다음날 인 듯하다. 남편이 레지던트 과정 중이라 혼자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던, 그래서 그저 다가오는 아침이 춥기만 하였던, 그런 시기인 듯하다. 정각이 되면 늘 뻐꾸기가 집을 나와 시간을 알려주었던, 딸이 유독 그 뻐꾸기시계를 좋아했던 기억이 스친다.
세월 빠르다. 정신없이 살던 그 시기를 잊은 듯 살다 시를 발견하곤, 그것도 '기상 전쟁'이란 제목의 시를 발견하곤 한동안 잠시 앉아 그때를 생각했다. 독감에 걸려 열에 들뜬 딸아이를 품에 안고 놀이방에 가던 불편했던 마음, 업무를 하다가도 ‘딸이 잘 지내고 있을까?’ 불안하고 미안했던 마음 등이 마치‘얼음 찬물을 얼굴에 확 뿌려’ 1998년으로 날 보내버린 것 같았다.
딸은 이 시를 읽고 별말 없이 미소를 뗬었다. 나와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유년기로 말이다. 딸의 미소와 담담한 태도에 한동안은 ‘그럼 그렇지, 자식이 어찌 부모 심정을 알까?’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나는 세 살 때를 기억하나?' 답은 ‘무엇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였다. 세 살이 아닌 초등학교(그땐 국민학교) 3학년 즈음 심한 독감에 걸려 크게 아팠던 때를 떠올리니,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걱정 어린 엄마의 눈빛, 따스한 엄마의 손길, 쓴 가루약과 물약을 입에 넣어주던 엄마만이 기억날 뿐이었다. 기억이 없는, 기억이 나는, 그 모든 유년기를 합쳐 내가 아팠을 때, 엄마를 한 번이라도 원망한 적이 있었나? 하고 나에게 물어보니, 그런 감정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가 아닌 '없다'였다.
직장생활을 하는 많은 엄마들이 자식의 잔병과 감기와 독감으로 너무 아파하지 말기를.. 부모이기에 자식 걱정은 당연하지만 그 작은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의 눈으로 부모를 보고 있음을, 한치도 의심치 말기를.… 혹여 의심이 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의 한 살, 두 살, 세 살 때 부모를 원망했던 감정을 감히 찾아내 보기를…
내가 이 글을 쓰며 정작 마음 아픈 것은, 딸은 기억나지 않는 그 무의식의 세계에서 나만을 바라보고, 내 품에 안겨 따스함을 나눠주고, 내 맘에 미소를 부어주며, 나를 맘껏 사랑해 주었는데, 나는 정작 그 소중한 시간을 너무 힘들고, 아프고, 지치고, 슬프게만 느끼고, 지금까지도 그렇게만 바라봤다는 어리숙함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