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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Dec 15. 2019

탄생의 시간

딸의 시간 2


손이 유독 차가웠던 여의사는 아이도 크고, 분만예정일이 지났으니 유도분만을 하자 했다. 다음날 오후 아기 옷과 젖병을 싸들고 입원을 하니, 분만대기실은 산통을 시작한 산모부터, 부산하게 분만실로 이동하는 산모, 나처럼 유도분만 주사를 맞아 진통을 하는 산모까지 대여섯 명의 산모들이 들고 났다. 다음날 이른 새벽부터 유도분만 주사를 맞으니 뉘엿뉘엿 해질 즈음 산통이 왔다.


건강이라면 자신 있던 나도 생전 그런 아픔은 처음인지라 누워있지도, 앉아있지도, 엎드리지도 못하고 침대 난간을 잡고는 진통을 삼켰다. '몇 시간만 되면 이 고통도 지나가리라' 생각할 즈음 레지던트가 상황을 체크하고는 "어! 애가 내려올 생각을 안 하네요. 참!" 하고는 양수를 터뜨리고 "이제 내려올 거라"며 가버렸다. 밤이 되니 2주는 머리를 감지 않은 듯 피곤에 찌든 레지던트가 윗배를 아래로 쓸며 고개를 갸웃했다. 애는 윗배에 동동 떠 있었다. 여러 명의 레지던트가 분주히 오가더니 "산모님! 양수는 이미 터져서 수술밖에 방법이 없겠어요. 보호자는 어디 있나요?" 하기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했더니, 남편은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곤 내게 와 불안한 눈빛으로 안절부절했다.


저녁 8시경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갔다. 전신마취를 하던 시절이라 남산만 한 배로 잠들어 추위에 깨어보니 배가 꺼져 있었다. 걱정에 찬 남편 얼굴이 스쳤다. 남편은 내손을 꼭 잡고 "자~, 더, 아이는 건강해!" 했다. 자궁수축이 좋지 않아 피를 많이 흘렸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심한 통증과 열감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니 이틀이 지났다. “딸은 신생아실에 있어!, 건강해, 일어나면 가보자” 했다.


그 시절 내가 수술했던 대전의 성모병원에선 신생아를 모두 한 곳에 모아 관리했었다. 애를 막 낳은 산모 거나 수술하여 아이를 낳거나, 초유를 먹이거나, 분유를 먹이거나 아이를 만나려면 산모가 신생아실로 이동하여 손목에 달려있는 이름표를 확인하고 아이에게 수유를 하던 시절이었다. 요즘에야 신생아를 엄마 병실에 있게도 하고, 혹 신생아 실에 있어도 초유를 먹도록 신생아를 데려다 주곤 하지만 그때는 관리 편의성이 의료서비스에 앞서 있었다. 병원시스템뿐이랴! 배웠다는 산모들은 "좋다더라"에 마구 휩쓸렸는데, 모유보단 우유가 아이 성장에 유리하다 하여 부유한 집, 고학력 여성일수록 분유를 앞다투어 먹였고, 아이를 안아주고 함께 데리고 자면 독립성이 작고 의존성이 커진다 하여 신생아 방을 만들고 아이만 덩그러니 아기침대에 재우는 게 잘 사는 집에선 유행이었다. 아마 분유를 먹이고 아기방에서 아기침대에 재우면 백인처럼 키가 크고 선진국의 아이처럼 뽀얀 아이로 자랄 것 같은 환상이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그리 딸을 대접하려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상황은 날 현대적 산모로 만들었다. 초유는 고사하고 3일이 지나도록 엄마는 딸의 독립심을 키우기 위해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으니 말이다.  


남편이 출근하여 3일 후 혼자 딸을 보러 나섰으나 길은 멀었다. 신생아실은 입원실에서 두 번의 모퉁이를 도는 거리였는데, 10킬로는 되듯 멀었다. 수액 걸이대를 잡고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다  땀이 흐르고 정신이 몽롱하여 포기하고 말았다. 4일 만에 간신히 남편의 부축을 받고 유리창 너머로 딸을 봤다. 남편이 내 이름을 적어 유리창 너머 간호사에게 보여주니, 간호사가 60여 명의 신생아들 중 자고 있는 아이 하나를 데려와 고추 세웠다. 유리창 너머 고치처럼 작은 그 아이가 내 딸이란다. 드라마에서 자식이 바뀌네 할만하던 시절이었다.


딸은 잠시 눈을 뜨곤 나를 쏘아봤다. 사실 쏘아보긴 뭘 쏘아보겠는가? 잘 보이지도 않는데, 내가 느낀 감정이 '이제야 어미가 나타났구나' 하며 원망 비슷한 것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단 게다. 난 그저 “안녕, 조만간 함께 나가자! 조금 참아야겠다. 미안하다 딸!”했다. 안지도 못하고, 수유도 못하고, 미안함은 퉁퉁 불어있는 가슴 같았다. 딸은 속으로 '일 년 동안 죽어라 얌전히 자라며 엄마 논문 작성에 일조하였건만 내 이리 대우를 받네' 하며 서운했겠지 싶다.


시대가 바뀌어 남편이 함께 탯줄을 자르고, 고통을 경감하는 다양한 분만 방식이 선택되고, 신생아가 태어나면 바로 엄마 품에 안겨주고, 초유는 필히 먹이고 분유보다 모유를 귀히 여기고, 아기와 엄마를 함께 보살피는 때가 됐다. 비인간적 육아의 시대에서 모성 가득한 육아의 시대에 온듯하다. 아이가 태어나 부모와 함께 살며 성장하는 그 긴 시간을 생각하면 최소한 낳는 것만은 바뀐듯하다. 이제야 낳는 것 하나 바뀌었으니 아이 기르기의 수많은 난관이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매사 자연스러울까 싶다.


딸이 다니는 회사의 팀장이 분만휴가를 간다 한다. 딸과 함께 한 '탄생의 시간'은 딸의 무의식과 나의 추억으로 1996년을 담았지만 지금을 살고 있는 많은 딸들은 더 따스하고, 한없이 자연스럽고, 모두가 편안한 '탄생의 시간'을 갖기를 소박하게 바래본다!


쉬운 탄생도, 힘들기만 한 탄생도, 누구보다 귀한 탄생도, 누구보다 슬픈 탄생도, 고통 없이 기쁘기만 한 탄생도 이 세상엔 없으며, 그저 '자기 생의 소중한 탄생'만이 있음을 '탄생의 시간'속에서 알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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