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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Dec 22. 2019

“엄마! 엄~마~”울며 내 등을 쓰다듬던 딸

딸의 시간 3

 


8개월 동안 모유수유를 하고 난 후, 대전에서 서울로 CAD를 배우러 다녔다(패턴 CAD 전문학원). 딸을 낳고 일 년이 지나지 않아 내 몸도 힘들었지만 딸의 고생은 말도 못 했다. 딸은 이른 아침 앞동에 맡겨지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왔는데, 그리 순하던 딸도 심한 변비와 투정이 생겼다. 한 달이 지나고 사정을 들은 친정엄마는 공부가 끝나는 6개월 동안 딸을 봐주겠다며 아이를 데려갔다. 딸을 맡기고 하는 공부인지라 아침부터(대전발 6시 15분-서울 도착 8시 10분), 늦은 밤까지(서울발 8시 05분-대전 도착 10시 20분-집에서 새벽 2시까지 배운 내용을 정리하기) 최선을 다했다. 딸이 내어준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학원을 수료하자마자 서울에서 면접을 보았는데, 문제는 딸을 봐줄 사람이 없었다는 게다. 친정집도 어렵다 하고, 시댁도 어렵다 하고, 남편은 일 년 후 인턴생활을 시작해야 하니 열심히 공부하고 배운 것이 그저 허탈했다. 당시는 패턴 CAD가 막 보급되었던 시절이라 서울에 일 자리도 많고 대우도 좋던 때였다.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가 많을 때였으니 '애가 있다'한들 취업은 어렵지 않았지만, 대전은 상황이 달라 나의 실망은 컸다.


실망의 날들이 내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처럼 계속 쌓이던 어느 날 지도교수가 연락을 했다. 석사만으로도 시간강사를 하던 시절이니 호기롭게 강의를 거절하고 산업체에 나가겠다던 내가 일을 잘 찾았나 궁금해서였다. 그때 내 목소리는 모기같이 작았고, 통화 후 내 존재가 그리 소소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날 신혼초에 남편과 함께 담았던 매실주를 혼자 비웠다. 적지 않은 분량인데 물처럼 마셨던 기억이 나고 반 이상을 비우고 나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복도식 아파트로 귀가하던 남편은 창문 넘어 들리는 통곡소리에 당황하여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와 나와 딸이 함께 울고 있던 모습에 '심장이 철렁했다'한다. 딸은 작은 키로 서서 엎드려 울고 있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엄마! 엄~마"하며 울고 있었다 한다. 딸은 아빠가 들어오니 반가움과 안도감에 커다란 눈물방울을 연신 흘리며 나와 남편을 번갈아 보며 목놓아 크게 울었다 한다. 그날 저녁을 먹었는지, 어찌 잠들었는지, 무슨 말이 오갔는지 기억이 없다. 그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자괴감과 무력감이 날 삼켜버렸다고 느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눈에 힘을 주고 "직장을 찾아보자고, 대전에 업체가 많지 않지만 어딘가는 일할 곳이 을 것"이라 말하며 결의를 다졌다. 남편은 출근을 하며 이제 자기 혼자 간신히 걷고 "엄마, 아빠, 맘~마, 우~유"를 하던 딸아이에게 "엄마를 잘 지키라는 둥, 네가 효녀라는 둥, 지금 믿을 사람은 너뿐이라는 둥", 딸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며 딸아이를 믿음직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1997년이었으니 대전엔 CAD를 사용하는 의류업체가 거의 없었고, 무작정 찾아간 업체마다 거절당하기를 반복했지만, 다행스럽게도 CAD실과 연계해 작업지시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며 "혹 최저임금을 주어도 하겠냐"는 사장의 질문에 "주시면 해보겠다"고 대답하곤 취업했다. 면접 후 딸과 함께 기다리던 남편은 "살고 있는 동네에 이런 공장형 유니폼 회사가 있을 줄 어찌 알았겠냐"면서 "다 네 덕이다, 딸이 효녀네"라며 나와 딸을 보고 함박 웃었다. 그 회사는 7개월 후 IMF가 오자 자연스럽게 날 권고사직시켰고, IMF로 졸지에 호황국면을 맞이한 대전의 스포츠 의류 주문생산업체(미주와 유럽에 모터사이클복을 제작하여 납품하는 OEM 수출회사)는 CAD실을 꾸려놓고 날 캐드 전문인력으로 채용했다.  


가끔 남편은 "매실주를 마시고 무릎을 꿇고 엉엉 울고 있던 나와 내 등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던 딸의 모습은 사진처럼 눈에 찍혀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가슴속에 남아있다"고 한다.



내 등에 따스하고 사랑이 가득한 손을 얹어주었던 딸이 남자 친구를 데리고 인사를 왔다. "결혼을 하고 싶으니 허락해 주세요,"란다. 20대 중반에 결혼을 한다 하니 주변에서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하는데,  남편은 “사랑하면 결혼하는 거지 무슨 허락”이라며, 딸의 “겁 없는 사랑이 부럽네”하고, 나는 “사람은 살아봐야 배우자가 자기가 알던 사람이 아니란 걸 알게 되지만, 그건 피차일반이니 늘 상대로부터 배우고, 사랑과 인생을 알아가라" 했다.  


딸의 사랑이야기가 어찌 펼쳐질지 궁금하다. 단풍잎 같은 손으로 내 등을 쓰다듬던 너의 뒤에는 너의 손길을 잊지 않은 엄마가 있음을, 그러니 여자, 딸, 며느리가 아닌 당당한 인간으로 겁 없이 도전하며 살기를... 나의 딸과 수많은 엄마의 슬픔을 나눈 한국의 딸들이 내 시대의 고통을 밟고, 딛고, 차올라 너희들의 거침없는 시간을, 세상을 펼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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