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겨야 해요? 그냥 즐겁게 타면 안 돼요?
딸의 시간 10
돌아가신 아버지는 두세 번 오빠가 국민학교 고학년일 때 우리를 데리고 논바닥 스케이트장을 가선 쌩쌩 스케이트를 탔다. 얼음 위를 날듯 달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뒤 엄마는 6살 위인 오빠에게만 스케이트를 사줬다. 썰매를 매고 매번 오빠를 따라 스케이트장에 갔다. 피겨스케이트를 신은 여자애들은 스케이트장 중앙에서 폼나게 빙글 뱅글 돌고, 남자애들이 스케이트를 신고 쌩쌩 얼음 타는 모습은 어찌나 근사 하던지…
발이 빨리 자라기만 바랬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오빠 발엔 작아져 신발장에 쳐 박혀있던 오빠의 낡은 스케이트를 꺼냈다. 신발 앞에 양말을 욱여넣고 스케이트장엘 갔다. 신발이 크니 자세 잡기도, 얼음 타기도 힘들었지만 그냥 탔다. 너무 좋았다. 6학년이 될 때까지 그 낡은 스케이트를 겨울마다 꺼내 들었다. "스케이트 신발 사주면 안 돼요?" 했던 말을 엄마는 끝내 못 들은 척했다. 몇 년 후 엄마는 3살 어린 남동생에게 스케이트화를 사줬다. 남동생은 새 스케이트화를 집에서 한 번 신고는 얼음판에 나가지 않았다. 내 기억에는 말이다. 그 반짝반짝하던 새 스케이트 신발이 어찌나 눈에 밟히던지…
딸이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온 가족이 대전 꿈돌이 야외 스케이트장엘 갔다. 나와 딸은 음악을 들으며 스케이트를 탔다. 여름이면 '수영하다 물에 빠져 죽을까, 겨울이면 얼음을 지치다 호수에 빠져 죽을까' 걱정하던 시어머니 말에 남편은 물과 얼음이라면 두려움이 목에 차있어 고개를 내둘렀다. 남편은 어린 아들과 어묵을 먹으며 우리를 구경했다. 박사과정이라 정신없기도 했지만 겨울만 되면 떠오르던 스케이트의 기억이 딸을 가르치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4주 겨울특강 프로그램을 보고는 "딸 배워볼래?" 했더니 딸은 흔쾌히 "네. 재미있어요." 했다.
일 년 뒤 다시 야외 스케이트 강습을 신청하니 강습 선생님은 조간 조간 스케이트에 몸을 실어 잘 타는 딸을 보곤 스케이트를 정식으로 시켜보라 권했다. 대전에 실내 스케이트장이 있던 것도 몰랐던 우리 부부는 딸을 데리고 대전 남선 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딸은 배우는 것에 일가견이 있었다. 차분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선생님이 잡아준 자세를 바로바로 이해하고 곧잘 몸에 익혔다. 얼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정확한 자세, 힘의 배분과 앞으로 달려 나갈 때 체중을 실어주는 간결한 동작 등은 체력이 길러지자 속도로 전환됐다. 5학년 1학기 때 주 2회 가던 운동 횟수를 2학기 때 주 5회로 늘리니, 딸은 다른 코치에서 일 년 전부터 배우던 아이들보다 속도가 붙었다.
5학년 말 시합을 앞두고 연습 시합을 하던 때 딸은 어렵지 않게 다른 아이들을 따돌리고 첫 번째로 들어왔다. 딸이 먼저 들어와 내가 환한 표정으로 딸을 보니 딸은 뒤돌아 오던 아이의 얼굴을 보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늦게 들어온 아이의 담당 코치가 소리를 지르고 스케이트 날집을 사방으로 휘저으며 제자를 잡아먹을 듯 화를 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딸보다 일찍 레슨을 시작했고, 4학년 때부터 주 5일 강습을 받았던 터라 딸보다 속도가 늘 앞섰지만 딸이 훈련양을 늘리자 딸의 속도가 훨씬 좋아진 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빙상장은 코치별로 개인지도를 하는지라, 잘 가르치는 코치에게 새 떼처럼 학생이 몰리니, 온 지 1년이 안된 이제 자리를 잡으려는 딸의 코치 입장에선 딸이 잘한 것이 반길만한 일이지만 상대편 코치로선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차 안에서 "딸, 잘하던데? 멋졌어!" 했더니, 딸은 “꼭 이겨야 해요? 그냥 즐겁게 타면 안 돼요?” 했다. 딸의 말에 소리를 지르며 날집을 휘두르던 상대 코치가 잠시 떠올라 "경기니까 최선을 다하는 게 맞지, 왜?" 했더니 딸은 "경기할 때요. 다 들려요. 코치님들이 말하는 게요. 그런데.."딸은 말을 다 하지 않고 흐렸다. 내가 “경쟁이란 그냥 정직한 거거든, 속도가 잘 나는 사람이 앞서가는 거니까.” 하고 딸을 보니 딸은 어두운 표정으로 “속도가 잘 나서 좋은데요, 그 아이가 혼나고 우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했다. 내가 “원래 시합은 최선을 다하는 거야. 그래야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알고 문제를 해결하지. 혼나는 상황에 집중하지 말고”하니 딸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건 알지만 전 즐겁게 타고 싶어요. 이걸로 이기는 게 그리 좋지 않아요”했다. 나는 딸의 마음씀을 알아 ”엄마가 널 선수시키려는 게 아냐. 몸을 쓰는 운동으로 한계까지 가보는 것도, 그래서 몸으로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고, 그리고 허벅지 근육은 어려서 만들지 않으면 커서 만들기도 어렵고, 한 번 만들면 죽을 때까지 널 잘 받쳐줄 테니 시키는 거야. 그러니 너 하고 싶은 데로 하렴. 져도 돼. 천천히 가도 돼. 정 그러고 싶으면.”했다. 딸은 “네. 알았어요.”하곤 밝게 웃으며 동생과 장난을 쳤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번의 연습에서 딸은 그 아이 뒤를 따라 탔다. 딸의 코치가 소리를 지르고 답답해해도 딸은 모르는 척 그 아이를 앞지르지 않았다. 연습 후 난 코치를 찾아갔다. “딸이 다른 아이가 혼나는 게 싫데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다 사는 방법이 다르잖아요. 코치님이 이해해 주세요. 행복한 스케이팅을 해야 딸도 나중에 자식을 낳아 데리고 오죠. 그럼 혹 알아요? 안현수(쇼트트랙 메달리스트, 현재는 빅토르 안 선수) 같은 선수 낳을지.” 코치는 크게 웃으며 “네 어머님. 알겠습니다. 속도가 한참은 남는데도, 늦춰 타기도 어려운데.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데 코치는 어린 딸이 엄마 되어 안현수 같은 아이를 데리고 링크장에 올 것이란 말에 웃음이 터져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딸은 6학년이 끝날 때까지 땀이 범벅이 되고, 토할 것 같은 장장 세 시간의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남동생이 가느다란 다리로 스케이트화를 신는 것을 보며, 고생을 시작하는 동생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요즘도 가끔 우리 가족 네 명이 링크장에 들어가 쫄쫄이 트리코를 입고 활주를 할 때는 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꼭 이겨야 해요? 그냥 즐겁게 타면 안 돼요?” 이제 결혼을 앞둔 딸에게, 눈에 보이는 경쟁을 싫어하고, 거의 동시에 들어오듯 결승선을 달리다 승자에게만 주어지는 행복을 거부하는 딸에게, 딸의 목소리를 되돌려 주고 싶다.
“꼭 이기듯 살지 말고, 그냥 즐겁게 살아라. 그렇지만 즐겁게 스케이팅하기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훈련과 땀의 시간이 있었는지, 그건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으니 그게 다행이구나. 보이지 않는 진정한 인생의 레이스가 시작되니 그 힘든 훈련을 견딘 허벅지로 살얼음판 같은 결혼 레이스를 잘 해보길. 속도 조절은 어려서 훈련했으니 잘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구나. 그렇지만 혹 누가 알겠니? 최민정(평창올림픽 메달리스트) 같은 딸을 낳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