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브런치에 글 올려볼까요? 브런치가 뭔데?

딸의 시간 11

by 정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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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딸은 졸업작품 전시(전공이 두 개인 딸의 첫 번째 졸업전시)에 취미를 주제로 한 깜찍한 앱과 제법 두꺼운 ‘취미 100선’ 책을 전시했다. 축하의 말과 함께 “딸~, 책을 만들어 출판도 할 수 있겠구나! 나중에 엄마 글도 출판해주렴.”했더니, “그럼요. 좋은 글만 있으면 할 수 있지요. 잘 만들어보죠. 마케팅이 문제지만.”했다. 꽤 긴 시간 준비로 지쳤을 법도 한데, 두꺼운 다운 코트를 입고 전시장을 지키던 딸은 화장기 없는 얼굴로 씩씩하게 대답했었다.


2019년 여름 방학 시작과 함께 두 언니 부부와 크로아티아 자유여행 갔다. 남동생과 정원을 살피러 군산에 와 있던 딸은 이층 서재에서 그림을 그리고, 독립출판을 하던 책을 편집하며, 테이블 한켠에 출력되어 있던 내 "글을 읽었다." 했다. 여행 떠나기 전 지나가는 말로 "엄마가 요즘 '글'을 쓰고 있는데 심심하면 읽어보렴."했던 참이었다.


자그레브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들어간다 하니 딸은 "일이 있어 먼저 올라갈게요. 조심히 오세요." 하며 일을 핑계로 남자 친구를 보고 싶어 부리나케 올라갔다.


집에 도착 후 딸과 통화를 하던 중 “엄마, 글 읽었는데 좋던데요, 브런치에 올려볼까요?” “브런치? 브런치가 뭔데?”하며 딸에게 물으니, 통통 튀는 목소리로 “작가 등록 후 글을 올리는 공간이에요.” 했다. 내가 “아빠가 많이 등장하니 먼저 아빠한테 물어보고~”옆에 앉아 있던 남편을 보며 대답하니, 신문을 읽고 있던 남편은, “브런치든지 뭐든지? 그냥 올리라고 해. 난 괜찮아. 어디서나 적당한 악역이 있어야지.” 했다.

며칠 후 "브런치팀에 작가 등록을 위한 글을 올렸어요.”란 카톡 메시지를 딸로부터 받았다. 나는 원주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리는 2박 3일 여름방학 '교수법 특강'과 연달아 있는 '모델리스트(패턴) 콘테스트' 심사일정으로 정신없는 날을 보내고 있었기에 카톡 메시지를 잊고 있었다. 며칠 만에 통보가 왔는지 잘 모른다. 교수법 특강을 받고 저녁에 호텔방 침대에 노트북을 켜니,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딸에게 전화를 걸어 “네 덕에 브런치 작가가 됐다는구나! 기쁘네.”했더니, “그래요? 엄마 메일로 연락처를 해놔서 전 알 수가 없었죠. 축하해요 엄마!”하며 딸은 구슬 같은 목소리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주말 저녁, 모처럼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딸은 무심한듯 말했다. “엄마, 블로그처럼 가볍게 쓰는 사람도 많고, 그저 그런 글도 많으니 일단 많이 쓰세요. 부담 갖지 않아도 돼요.” 남편은 “내가 열심히 마케팅 해보지 뭐.” 했다. 딸은 아빠 말을 받아, “제가 그림 그리고 편집해서 한편씩 올릴게요.” 하기에, 나는 엉겁결에 “뭐 그렇게 까지, 편집이랄 것이 있니?”했고, 남편은 그래도 작지만 독립출판사를 3학년 때부터 운영한 딸의 노하우를 믿고 그렇게 하라며 활짝 웃었다. 나는 “아니~ 취직 준비를 해야지, 너는! 내가 알아서 할게.”하고 말을 자르니, 딸은 방긋 웃으며,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어렵지 않아요. 그냥 가볍게 스크리닝 한다 생각하세요.”했다. 그렇게 딸과 브런치 작업을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난 살아오면서 공자 제자인 안회(BC 514~483)를 좋아하는데, 그 사람의 특징이 ‘변함없이 노력하는 자’라는데 있다. 성정이 다른 두 아이를 키우며 늘 했던 말은 "성실하게 노력하여 행복하게 살되 분수에 넘치는 욕심과 남과의 비교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분야에서 뛰어나지 않아도 성실하고 꾸준하면 그 분야의 인력풀이 줄어 자연 눈에 띄는 인재가 되기도 하고, 노력과 시간이 쌓이면 어느 순간 엄청난 도약을 하니 좀 더디고 느려도 너의 길만 가면 너의 본성을 이룰 것이라 했었다."


딸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안회의 성실함을 반복적으로 했던 나로서는 이제 브런치란 마당에서 쉽게 발을 빼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건 다름 아닌 딸이 그림을 그리고 편집을 한다는 말로 공동 작업을 시작했으며, 내가 아는 한 딸은 쉽게 포기하거나 발을 빼는 성정이 아니며, 난 늘 제 일의 미덕으로 성실, 꾸준함과 양적 축적 속에 질적 전환을 부르짖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6개월이 넘게 딸은 내 글을 올리고, 글의 내용에 걸맞은 그림을 그리고, 구독자를 체크하고, 조회수가 치솟으면 “엄마 글이 좋아서”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나를 격려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글에서는 “가슴이 뭉클했었다”라며 진심 어린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딸의 일관성과 성실함이 이 브런치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하리라는, 그래서 브런치를 쉽게 끝내지 못할 상황에 처했음을, 그리하여 딸과 아들에게 말한 시간을 관통하여 쌓임과 양질 전환의 법칙을 몸소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 처해버렸음을 반년이 지나며 느끼고 있다.


딸은 오늘도 명랑하게 카톡을 보냈다. “브런치 북을 조만간 내야겠어요, 오늘도 일이 아주 많네요”하며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냈다. ‘아~ 내가 좀 더 정신 차리고 잘 써야겠다’라는 중압감이 밀려온다. 딸은 글의 구성이 매끄럽지 못하면 “일관성이 좀~, 엄마 말은 알겠는데 문장을 좀~”하며 매우 겸손하게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하면 그 목소리의 나긋함으로 자연스레 “알았다. 다시 보고, 좀 바꿔볼~게~, 밤에 체크하렴.”하고 대답한다. 딸은 카톡이던 전화 후엔 늘 살랑이며 춤추는 이모티콘을 보내 자동으로 글을 쓰게 날 이끌고 있다.


딸은 일단 브런치로 워밍업을 하란다. 연습 없이 무얼 이루겠냐며, 다 힘들고 번거롭지만 하다 보면 길도 보이고, 더디지만 그러다 보면 책이 나온다나? 참 내가 키웠는데. 독하게 걸려들었다.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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