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방문교수 자격으로 CMU 대학(Central Michigan University)에 가족과 일 년을 머물렀다. 딸은 대학 1학기를 끝낸 상태였고, 아들은 중 1병에 걸린 상태였으며, 남편은 8년이 넘게 애 둘을 대전(그래도 대전이 대도시라며 본인이 데리고 있겠다고 우겨서)에서 돌보느라 기진맥진한 시점이었다. 딸과 아들의 휴학 처리 후, 남편은 십여 년 다닌 대학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백수가 되어 이민 가방 8개를 가득 채웠다.
미시건의 작은 도시(Mount Pleasant)에 도착하여 기본 정착을 위한 일(운전면허 발급, 사회보장번호 신청, 은행계좌 개설, 학교 신분증과 주차권 만들기, 차량 구매, 아들 공립 중학교 입학 서류 제출, 딸 어학과정 등록)을 하니 딱 2주가 흘렀다. 미국 생활은 단조롭고 편안했다. 함께 시장을 보고, 산책을 가고, 운동을 하고. 긴장이 풀리니 아들의 무기력 병이 다시 도졌다. 이른 아침 (7시 40분)에 등교한 아들은 하교 후 피곤한 눈으로 방바닥에 들러붙었다. 나나 남편이나 2~3년을 그리 봐온 터라 그러려니 했지만, 궁금했다. 온종일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알아듣는지. 물어도 말이 없고, 아들도 애써 알려주지 않으니 무엇을 모르고 아는지 신만이 알 일이었다. 생에 첫 남자아이를 키우니 어찌하겠는가?
온 가족이 아침마다 번잡하게 씻고, 저녁마다 함께 밥을 먹고, 주말마다 가볍게 운동하는 시간이 좋았다. 나, 남편, 딸이 함께 저녁 준비를 할 때면 아들은 디지털 피아노를 치거나 거실 한 곳에 마련된 노트북을 켜고 게임에 폭 빠져 자판을 두드렸다.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이었다. 가끔 아들에게 청소와 설거지를 “네가 좀 해볼래?”하면 아들은 놀란 토끼눈을 하곤 “내 가요? 왜요?” 하고 어이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자기 방으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남편은 “내가 할게.” 하고, 딸은 “병이야. 엄마! 중1병.” 하곤 혀를 찼다.
2015년 6월, 여름 방학 시작과 함께 SUV 차에 가득 짐을 싣고 11일간 캐나다 캠핑을 떠났다. 가끔 집 근처에서 1박 2일, 2박 3일 캠핑을 하였지만 10일 넘는 캠핑은 처음이라 온 가족이 긴장했다. 캠핑 전, 딸은 저녁시간을 위한 볼거리를 받아가자 했다. 딸은 나와 남편에게 “동생의 무기력병을 치료하는 데는 그만하게 없어요.”라며 밝게 웃었다. “뭔데?”하고 내가 물으니, 딸은 “엄마도 영화로는 봤잖아요. 강철의 연금술사요! 전 시리즈를 보면 만만한 내용이 아니거든요. 감동도 있지만 배울게 많아요. 장담하는 데요, 그 시리즈를 다 보면 무기력병, 중1병, 입에 붙은 ‘내 가요?’ 그리 못하죠!”라며 자신감 가득 대답했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죽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금지되어 있는 연금술을 시행한 에드워드와 알폰스 형제의 이야기'로 전개 내내 '등가 교환'의 법칙이 등장했다. 딸은 애니메이션이란 애니메이션은 죄다 꾀고 있기에 무기력증에 빠진 동생에게 64부작 '강철의 연금술사'가 어떤 마술을 부릴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름답게 잘 가꾸어진 호수를 낀 캠핑장에서부터 도시 내의 정갈한 캠핑장까지 캐나다를 엿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한 도시에 이틀 정도 머무르며 낮에는 도시탐방과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저녁시간은 가벼운 식사와 설거지를, 공용 샤워실과 공용 세탁실의 이용은 단순한 생활 그 자체였다. 특히 텐트를 치고 이른 저녁식사 후 온 가족이 나란히 앉아 '강철의 연금술사'를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었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세상에 공짜가 없음을, 인생사에 노력을 들이지 않고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없음을 ‘등가 교환’이란 말로 되뇌어 주었다.
캠핑이어서 그랬겠지만 사람 손 하나가 엄청난 힘을 발휘함을, 일의 진척이 세상없이 빨라짐을 아들 손을 통해 알았다. 텐트를 칠 때 아들은 과학적 두뇌와 영민한 손놀림으로 아빠와 환상 궁합을 보였으니, 6인승 텐트가 솟아나는데 드는 시간이 10분을 넘지 않았다. “엄마! 얼른 텐트 치고 밥을 먹어야 연금술사를 보죠. 쟤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정말 잘하잖아요. 저거 봐요. 등가 교환을 이제 채득하고 있네요. 그죠?” 딸의 말에 내가 크게 웃으니, 남편이 “왜 그래?” 하고 묻기에 “텐트가 한순간에 세워져서. 아들이 연금술을 부리나 했지.”하니, 남편은 텐트를 치느라 온 정신을 쏟는 아들을 흘깃 보곤 “이제 날마다 볼 텐데 뭐, 텐트 연금술, 부자 연금술사라 불러~” 라 말하며 얼굴에 행복을 채웠다.
텐트만이 아니었다. 2일 걸러해야 하는 빨래는 캠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일인데, 캠핑 2일 차가 되니 아들이 연금술사를 보고 나선 자신이 빨래를 하겠다 나섰다. 캠핑장마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모두 다르니 애초부터 기계 다루는 것을 좋아하던 남편이 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들이 남편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빨래를 모아가지고 나가는 모습은 마술 그 자체였다. 힘을 써야 하는 장작 사 오기, 소소하게 손이 가는 장작불 붙이기, 가스레인지 세팅과 분해하기 등 방바닥에 붙어있거나 게임할 때만 정열을 쏟던 아들이 캠핑 속 우리의 일상으로 성큼 들어왔다. 등가 교환의 법칙이 작용하는 그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부모의 시각으로 자식을 보는 것과 아이들 서로가 서로를 보는 눈이 다름을,
딸이 ‘무기력병’, ‘내가 왜요?’ 병에 빠진 동생을 보며,
그 치료 방법으로 제안한 '강철의 연금술사'는
그 어떤 말보다 탁월했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었다.
2020년 1월 중순 상견례를 했다. 음식은 깔끔하게 차려졌으며, 딸은 다소곳이 앉아 있고, 남편과 나는 처음 뵙는 분들께 예을 갖추려 허리를 폈다. 편안한 분들 이어서 좋았다. 한 끼의 식사자리서 얼마나 많은 것을 알 수 있을까 싶지만,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모두 같음을, 어려운 자리지만 행복한 시간임을, 자식을 통해 다른 차원의 인간관계가 형성됨을 배웠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서 등가 교환 법칙이 떠올랐다.
딸아! 너는 인생이 등가 교환이라 생각하며 살아왔겠지만 현실과 동화가 다르듯 결혼의 부등가 교환을 아직 모르겠구나. 결혼이란 새로운 관계 맺음은 수많은 부등가 교환이 선물 꾸러미처럼 너에게 부여됨을, 그리하여 등가 교환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네가 당황할 수 있음을... 그러나 그 부등가 교환을 등가로 바꾸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해서, 늘 중간에 다 때려치우고 싶단 생각이 저절로 들겠지만, 양질 전환처럼 부등가가 등가로 오는 순간을 놓치지 마렴. 부등가 교환이 난무하는 결혼생활에서 너만의 등가 교환을 찾기를 바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