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그거 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딸의 시간 13

by 정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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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미국연수가 끝나기 전, 미시건에서 LA까지 20일 캠핑을 했다. 무슨 고생일까 싶지만 넓디넓은 미국 땅을 모두 밟지는 못할망정 차바퀴라도 굴려 지나가야 할 듯했다. 미국 도착 일주일 만에 현금을 주고 산 현대 맥스크루즈 차량에 짐을 가득 넣고 남편 스스로 최상의 캠핑 코스라 여기는 모험을 시작했다.


등가 교환 정신으로 무장된 아들낙천성으로 무장된 딸과 영어 발음은 개나 주어도 된다는 것을 미국에 와서 배운 남편과 그냥 닥치면 다 된다는 생각으로 사는 나의, 캐나다 캠핑으로 단련된 우리가족의 마지막 캠핑 여행이 시작됐다.


로스톤과 요세미티 국립공원 탐방을 핵심으로 한 여행인지라 옐로스톤에 도착한 우린 정말 행복 했다. 여행을 시작한 후 7일 만에 엘로스톤 캠핑존에 들어가니 보는 곳마다 곰의 출현에 대비해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메시지가 보였다. 옐로스톤은 동물들의 공간에 인간이 잠시 들려 가는 곳인 듯 날것 그대로여서 좋았다.


낮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새끼를 거느린 곰도 보고, 버팔로도 보았기에 그 넓은 옐로스톤은 그들만의 세상에 인간이 잠시 얼굴을 디밀고 아름다운 간헐천을 구경하고 사라지는 공간 같았다.


한여름인지라 뭐 그리 춥겠나 싶었지만 저녁이 되니 예상보다 추웠다. 남편은 옐로스톤의 여름밤은 춥다 하여 핫팩을 한 상자 준비했었다. 곰의 출현에 대한 걱정과 오후의 찬 공기에 우리는 저녁을 일찍 먹고 잠을 청했다. 7월 중순이었다. 텐트안 잠자리는 30cm 공기매트를 놓고 그 위에 두꺼운 양모 모포를 깐 후 개별 침낭(사용가능온도가 영하 20도인 침낭)을 사용했다. 공기가 쌀랑하다 하니 아들이 핫팩 상자를 들고 와선 몇 개를 쓸지 내게 물었다. 난 "다음은 모르겠고, 오늘은 고단도 하고 날도 춥게 느껴지니 많이 깔아줘라." 했다. 아들이 침낭 밑에 핫팩을 놓아주었다. 어깨, 가슴, 등, 엉덩이, 다리, 발 주위로 핫팩을 주~욱 놓고는 누나 자리와 자기 자리에도 넉넉히 핫팩을 배치했다. "아빠는요?" 하고 묻는 아들에게 남편은 "뭔 핫팩을 그리 많이 사용하냐! 요세미티도 써야지, 난, 두 개면 충분하다."고 가슴과 등에 두 개만 깔고 잤다. 난 따스하다 못해 뜨끈한 핫팩의 열기를 즐기며 잠을 자다 12시경 화장실에 가고 싶어 일어났다. 남편을 보니 평소 얼굴은 내밀고 자던 사람이 얼굴까지 침낭을 잠궈놓고 있었다. 곰이 언제 출현할지 모른다 하여 모기만 한 소리로 딸을 깨웠다. 딸이 부시시 일어났다.


텐트 밖에 나서니 얼음이 갈라지듯콧속을 파고드는 냉기로 정신이 번쩍났다. 콧속을 뚫고 들어온 공기의 차가움과 청명함은 가슴까지 후~욱 뚫어버렸다. 딸과 팔짱을 끼고 하늘을 보다 입이 쩍 벌어졌다. “엄마, 저 별들 좀 봐요!” 우리 눈은 차가운 공기 속에 엄청난 빛으로 빛나는 별들로 동공이 활짝 열렸다. "어머~, 아!" 탄성이 났다. 아름다운 별들이, 너무도 맑은 공기 속에 ‘쨍하고 달려오는 별빛’들이 있어. 밤하늘은 빛나는 별들로 가득차 너무도 아름다웠다. “엄마, 엄마가 화장실 가자고 안 했으면 못 볼 뻔했네요. 정말 예뻐요. 너무도 아름다워요.” 딸은 잠을 날리곤 별빛에 취해 야생의 공간에서 감탄을 연발했다. 텐트에 들어가 “여보, 별이 정말 예뻐, 나갈래?”남편은 미동이 없었다. “딸, 안 춥니? 아빤, 피곤한가 봐. 잘 자라.” 딸은 “안 추워요. 주무세요.” 했다. 우린 아침까지 단잠을 잤다.


핫팩의 따스함을 느끼며 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 그리 상쾌하고 좋을 수 없었다. 딸과 아들도 잘 잤다며 일어났는데 남편은 고치처럼 침낭 속에 있었다. “여보 그만 일어나야지?”하니 침낭에서 추위에 쪄든 얼음 알갱이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 추워, 너무 추워!” 나와 딸과 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시에 남편의 침낭을 쳐다봤다. 얼굴까지 가렸던 침낭을 풀고 나오는 남편은 코가 얼고 온몸이 굳어, 보는 우리가 얼 지경이었다. 내가 아들을 보고 핫팩 풀어 얼른 아빠 옷에 넣으라 하니 아들이 민첩하게 핫팩을 풀어 응급으로 남편 몸을 데웠다. “아니 추우면 말을 하지. 핫팩이 아직도 수십장 있는데, 말만 하지, 침낭 밑에 주~욱 깔아줬을 텐데.” 남편은 추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시어머니가 어려서부터 귀하게 싸매 키워, 남편이 추위에 약한 건 이미 안 일이었지만, 그날 아침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들이 부산스럽게 핫팩을 풀고, 아빠의 옷 이곳저곳에 핫팩을 넣어줄 때, 딸이 아빠를 보며 한마디 했다. “아빠! 그거 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텐트에 모인 가족이 단번에 남편의 그곳을 바라보곤 허리를 반으로 접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들은 남편 손에 핫팩을 쥐어주며 아빠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는 “그러게요” 했고, 나는 “그러게 그 소중한 게 얼면 어쩌려고, 일어나서 핫팩을 더 깔지”했다. 딸이 너무도 자연스레 아빠를 걱정하며 던진 말에 텐트 안은 단숨에 따스하다 못해 웃음 열기로 뜨거워졌다.


그날 아침, 식사는 아이들과 내가 준비하고 남편은 전날 쓰지 않은 핫팩의 따스함을 마음껏 누렸다. 밥을 먹던 남편이 딸의 걱정에 응답하듯 한마디 했다. “너희들 낳는데 잘 썼으니 이젠 얼어도 상관없다. 걱정해줘서 고맙다.” 딸과 아들은 웃음을 삼키며 따스한 국물을 많이 드시라 했다. 남편은 덜덜 떨며 수저를 들고, 입이 굳어 발음이 새며 딸에게 한마디 했다. 딸은 아빠를 보며 “아빠! 아직 살날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얼면 안되죠. 잘 보존하셔야죠!” 했다. 고추장을 넣어 매콤하게 볶은 소시지를 한 입 먹으며 딸이 새초롬하게 말해, 나와 아들은 남편 눈을 피해 킥킥댔다.


“아빠! 그거 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딸의 진심 어린 걱정이, 밤새도록 추위에 떨던 아빠를 보며 날린 그 한마디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아빠에게나 나에게나 자신의 생각을 담백하고 털털하게 말하던 딸이 결혼의 공간 속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위트와 유머를 갖고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악담을 뺀 모든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하던, 4인 가족이 좁은 줄 모르고 지내던 텐트 안에서처럼, 자신을 당당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지... 아빠의 얼어붙은 육체도 한 마디의 사랑스러운 말로 온 가족을 따스하게 품어주었던 딸이, 2인용 텐트 속으로 들어간다니, 그 텐트 속도 언제나 따스하고 사랑스럽고 유머로 가득 차길 기원한다.


딸! 너의 유머를 항상 유지하렴.

돌리고 꾸며 말하지 않는 너의 성정대로 행복으로만 직진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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