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미친년

욕망의 시간

by 정루시아

그는 여자의 몸을 아는 사람이었다. 키스 하나, 손길 하나에도 정성을 다했고, 성미가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그녀의 마음과 몸을 차근차근 열어주었다. 그 순간에도, 사랑을 나누며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에도, 성미는 그가 그리웠다. 이미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움은 성적 결합과는 다른 차원의 결핍이었다.


이후로 최 교수는 일주일에 한 번, 혹은 이주일에 한 번씩 성미의 아파트를 찾았다. 둘은 긴 밤을 함께했고, 그는 여전히 성미에게 자상하고 부드러웠다. 그의 손길은 성미의 몸 구석구석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녀가 최고조의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고, 항상 따뜻하게 시작해 끝까지 그녀를 품었다.


성미는 어느새 그가 자신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그의 입술이, 그의 숨소리가, 그의 온기가, 마치 자신의 몸 깊숙한 곳에 새겨진 것처럼 선명했다. 그와 함께한 날에는 깊고 단단한 잠을 잤고, 그가 없는 날에는 아랫배가 허전해 밤새 뒤척였다.


이상한 변화였다. 예전엔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허전했는데, 지금은 아랫배가 비어 있는 듯한 공허감이 밀려왔다. 점점 감정이 예민해지고, 화가 났다. 무언가 채워져야 할 것 같은 갈망이 깊어졌다. 눈을 뜨면 그가 그립고, 잠들면 꿈에서 그를 만났다. 꿈속에서도 성미는 그를 찾아 헤맸고, 떠나는 그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분명, 성미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자유롭게 살겠다고 다짐했었고, 실제로 혼자서 잘 살아왔다. 하지만 그가 자신 안에 스며들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변해갔다.


최 교수는 여전히 한결같았다. 다정했고, 편안했고, 따뜻했다. 그러나 유부남인 그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남이 1년을 넘겼을 무렵, 그는 성미의 아파트에서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나는 몇 년간 아내가 나를 증오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 키우며 서로 많이 부딪혔고,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지난주에 아내가 그러더군요. 내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날 사랑한다고요."


성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창가로 걸어갔다. 그녀의 아랫배는 공허함을 넘어서, 조각난 듯 아팠다. 눈물이 차올랐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가족이 중요하죠. 이젠, 이렇게 만나는 게 정말 죄 같네요. 제가… 제가 처음부터 곁을 허락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이렇게 돼서."

“…미안해요.”


최 교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말없이 아파트를 나섰다.

그날 이후, 성미는 일에 몰두했다. 야간 석·박사 통합 과정에 들어갔고, 운동을 늘렸다. 조깅, 사이클, 동호회를 오가며 스스로를 혹사시켰다. 가끔 최 교수에게서 안부를 묻는 메시지가 오면, 성미는 담담히 “잘 지낸다”고 답했다.


하지만 연락이 뜸해지면, 성미는 조용히 최 교수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곤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상상했다. 얼굴도 모르는 최 교수의 아내와, 그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말이다. 그럴 땐 아랫배가 허전함을 넘어 분노로 차올랐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마흔을 넘겨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되고, 그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옭아매게 될 줄은 몰랐다.


결국 성미는 박사 논문을 마친 후, 서울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의 지방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림자처럼 최 교수를 그리워하며 사는 삶은, 스스로 봐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지방 병원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던 어느 토요일, 유명하다는 커피숍에 혼자 앉아 있던 성미는 문득 마주한 풍경에 숨이 멎을 뻔했다. 제법 나이 든 남자와 젊은 여자가 다정하게 커피를 나누고 있었다.


그 순간, 오래전 바람난 아버지가 떠올랐다. 젊은 여자와 눈이 맞아 두 집 살림을 했던 아버지. 성미의 어머니는 평생 상실과 슬픔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다. 성미는 그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증오했었다. 그런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솔직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최 교수와의 만남이 끝난 지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성미는 종종 생각에 잠기곤 했다. 과연 그가 정말 이혼을 하고 자신과 결혼할 생각이 있었던 걸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믿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심이 커졌다.

그 무렵, 병원 진료과장은 인근 대학에서 일하는 이혼한 교수 한 명을 소개해 주었다. 몇 번 만나봤지만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 후엔 아내와 사별한 중년 변호사와도 선을 보았고, 독신으로 여행만 다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빈 통장뿐이라는 교수와도 철없는 대화를 나눴다. 그들 모두 직업도, 이력도 흠잡을 데 없었지만 성미에게는 아무런 끌림이 없었다.


성미는 가끔 선을 보긴 했지만, 결국 최 교수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방으로 내려와서도 문득문득 그가 떠올랐고, 어느 날은 길을 걷다가도 그리움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그러고는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혼잣말을 내뱉었다.


“미친년, 내가 미친년이지. 결혼을 안 한다고? 못하는 거지. 독신주의자라고? 에이, 개나 줘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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