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역사
둘은 가끔 다른 일행과 함께 걷기도 했다. 성미를 유심히 바라보던 두 명의 남자 일행과는 종종 카페에서 커피를 함께 마시거나 길을 같이 걷기도 했다. 처음엔 머쓱했지만 서로 소개를 하고 난 뒤로는 금세 말문이 트였다.
유 박사라는 사람은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이로, 3년 전 아내와 사별한 후 우울증을 겪다가 걷기를 시작해 순례길에 오르게 됐다고 했다. 키도 크고 호감 가는 인상이었으며, 수줍음이 많은 편이었다. 그에 비해 김 사장은 유 박사의 대학 동창으로, 넉살 좋고 떠벌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로 작은 부품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60대 초반으로, 대기업을 퇴직한 뒤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김 사장은 자신은 실속은 없지만 유 박사는 삼성에 특허받은 부품을 납품하며 실속 있게 산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걷는 속도가 달라 덕희와 성미는 함께 출발해도 두어 시간 후엔 늘 둘이 남게 되었다. 카페에 들르면, 유 박사와 김 사장이 먼저 와 있다가 눈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넘겨주곤 했다.
오랜 사회생활 덕분인지 덕희는 언제나 호탕한 인사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덕희가 지나가듯 성미에게 말했다.
“유 박사란 분 참 순해 보인다, 그치? 남자들은 와이프가 죽으면 금세 늙는다더라. 우울증을 앓았다니 사랑이 깊었나 보네. 우리 남편도 내가 죽으면 그럴까? 아마 아침밥 차려 먹기 귀찮아서 금방 새사람 들일 걸.”
“너도 참. 밥 타령 한다고 설마 밥 때문에 새 장가를 가겠니? 네가 다 해주니까 남편이 밥 타령하는 거지.”
성미는 부럽다는 듯 덕희를 바라보며 말했고, 덕희는 자기가 한 말이 우습다는 듯 어이없어 웃었다.
순례길 5일 차,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서 에스테야(Estella)로 향하며 둘만 걷게 되자 성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예전에 만나는 사람이 있었어. 좋은 사람이었는데 결혼하자고 하니까 겁이 나더라. 너 우리 아버지 알지? 평생 엄마 속 썩인 거. 여자 생겨서. 엄마는 새벽기도 다니며, 마귀에 빠진 아버지를 구해달라고 기도했어. 그런데 여자에게 빠진 남편을 신이 어떻게 구해? 신 입장에서야 이놈이나 저년이나 다 자기 자식일 텐데. 무슨 도적질도 아니고, 사랑한 거잖아. 아버지도 한심했지만, 나는 엄마도 답답했어. 그래서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결혼할 때는 좋았던 사람이 아버지처럼 변할까 봐 무서웠거든. 그래서 그냥 거절했어. 혼자 살 자신이 있었지, 그땐. 그런데 요즘 자꾸 의심이 들어. 내가 잘한 선택인지.”
덕희는 길을 걸으며 조용히 성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도 성미 아버지의 바람기를 어머니를 통해 들은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어머니와 함께 은행 창구에 갔을 때, 성미 아버지가 제법 곱상한 얼굴의 젊은 여자와 통장을 만들고 돈을 입금하던 모습을 목격한 기억이 선명했다. 그래서인지 성미의 말이 더 깊숙이 가슴에 와닿았다. 자기 남편이 통장의 돈을 젊은 여자에게 몽땅 부어줄 상상을 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날 길을 걸으며 성미는 친구들 중 처음으로 덕희에게, 사귀던 남자가 병원으로 옮기기 전 함께 일했던 의사였다고 말했다. 덕희는 연상이었다면 혹시 유부남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5월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름다웠고, 동행한 순례자들도 각기 다른 개성과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고 배려심 깊었으며, 걷다 들린 카페에서 만나면 어느새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3년 전부터 준비했다는 덕희의 너스레에 성미는 그저 웃었다.
카페에서 휴식을 마치고 길을 나설 때 성미가 말했다.
“한국 사람 정말 많네. 단체, 가족, 개인까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는데.”
“부지런들 하잖아. 그러니 많이들 오지.” 덕희가 활기차게 답했다.
“그나저나 코로나인데도 사람이 많네. 코로나 전에는 진짜 개미 떼처럼 많았겠어. 순례길은 일 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걷나?”
“27만 명 정도 걷는데~. 지금은 그나마 줄은 거라네.”
“세상에. 그렇게나 많이?”
“전 세계에서 오니까.”
“언제부터 이렇게 걷기 시작했을까?”
“1189년에 교황이 성스러운 길이라 선포한 이후 중세 때 사람들이 걸었대. 그 길이 잊혔다가,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다시 걷기 시작했고.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란 소설도 한몫했다나 봐. 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순례길을 언급했다지 아마.”
“그럼 지금 알베르게나 카페 같은 것도 그때부터 장사를 시작한 거구나.”
“그렇지. 30년 정도밖에 안 됐을 거야.”
“그나저나 중세에 이 길을 걸었다는 것도 놀랍다.”
“놀랍긴~. 예수님 제자 중 야고보 성인이 이 길을 걸었고… 그 유해가 산티아고 대성당에 있으니 종교적으론 상징이 있지. 생각해 보면, 대성당보다 야고보의 유해를 옮긴 제자들의 믿음이 더 놀랍지. 그렇게 먼 길을, 그 시절에. 배로 이스라엘에서 이곳까지 이동해 왔다고 하니~. 2천 년 전이든 지금이든,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길을 걷고 자기 삶을 살아가니까.”
“덕희야, 3년 준비했다더니 대단하네.”
“아냐, 그냥 궁금해서 책자도 보고 블로그도 읽고. 뭐 별거 아냐.”
“여하간~ 우리 잘 왔다. 그치?”
성미가 웃으며 말하자, 덕희는 한숨을 쉬었다.
“힘들었어. 직장생활도, 애 키우는 것도, 부부생활도. 그냥 죽을힘을 다해 산 거지.”
“그러게. 애가 셋이면 진짜 힘들었겠다.”
“아니야. 애들 덕에 모르고 그냥 달려온 거야.”
“엄마면 그게 되나 보구나.”
“그럼. 잘 키우고 싶어서 앞뒤 안 가리고 열심히 산 거지.”
“그걸 애들이 알아줘?”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냥 내가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게 중요하지. 생색낼 일도 아니고. 그래도 이젠 나도 좀 쉬고 싶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천천히 살아보려 해. 그래서 이 길이 내 생에 내게 주는 첫 선물이야.”
“좋다, 산티아고 순례길. 허긴 넌 예전부터 뭐든 열심히 했지. 공깃돌 기억나?”
성미가 공깃돌 놀이를 하던 덕희를 흉내 내자, 덕희는 그런 성미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길을 걸으며 자주 사진을 찍고, 함께 걷던 사람들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자세로 사진을 남겼고, 다른 순례자들과도 흔쾌히 어울려 순례자 식사를 함께했다. 걷고, 먹고, 잠자는 단순한 삶. 그 안에서 두 사람은 마음껏 자유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