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길의 끝
‘Santiago’란 커다란 글자가 새겨진 조형물 앞에서 성미와 덕희는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섰다. 모든 순례자들이 저마다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이곳은 긴 순례길 여정의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이자,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30분만 더 걸으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나온다. 두 사람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덕희와 성미는 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종착지를 향해 걸어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소란한 말소리에 정신이 얼얼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새벽어둠 속에서 시작된 고요한 숲길을 걸었는데, 이제는 이 환한 빛과 소리들 속에 섞여 있으니 같은 하루라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때, 덕희가 성미를 향해 크게 외쳤다.
“성미야, 이 길이 그리울 것 같아. 힘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다시 오고 싶을 것 같아.”
“그래? 난 두 번은 못 해. 힘들어서 죽겠어.”
“너랑 얘기하면서 오니까 힘든 길도 그냥 쑥 지나간 것 같아.”
“허긴, 별 얘기 다 하면서 오니까 800km도 금방이다. 우리 참 잘했다, 그치?”
성미와 덕희는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대성당을 향해 나아갔다. 오전 11시 10분, 성당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입구는 길게 구불구불 줄이 늘어서 있었고,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줄을 따라 한참을 기다려 대성당 안에 들어서니 자리는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아침부터 계속 걸어온 두 사람은 지쳐 있었다.
“난 힘들어서 이렇게는 서서 못 있겠다.”
덕희는 신발을 벗고 성당의 웅장한 주랑 벽에 기대어 다리를 뻗고 앉았다. 순례자들이 바라보든 말든, 덕희는 ‘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미도 곁에 앉아 신발을 벗고 다리를 폈다. 어린 시절 성당 마당에서 놀던 두 사람은 마치 그때처럼 천진하게 서로를 보고 웃었다.
“원래 예수님 시대 유대인 기도공간은 맨발로 들어가 앉는 거잖아. 어쩌겠어, 아파 죽겠는데. 이렇게 앉아 쉬는 우리 맘을 예수님도 아실 거야.”
말을 마친 덕희는 물병을 집어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성미는 벗어놓은 자신의 신발을 바라보았다. 뒤꿈치가 닳아 천이 해져 있었다. 반년 전, 순례길을 준비하며 새로 산 신발이었다. 몇 달간 길을 들이며 아껴 신었는데, 800km를 걸은 뒤 그 신발은 완전히 헌 신이 되어 있었다. 새 신발이 헌신이 되는 동안, 순례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새로워졌을까? 문득 궁금했다.
둘은 바닥에 퍼져 앉아 미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둘은 미사가 시작되자 조용히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비록 언어는 달라도 가톨릭 미사는 어느 나라든 그 형식이 같다. 스페인어로 울리는 미사 어구를, 성미와 덕희는 한국어로 이해하며 묵묵히 따라갔다. 반복된 미사의 말들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둘의 입속에서 되살아났다. 그 익숙함이 경이로웠다.
신실하게 성당을 다녀온 덕희는 엄마의 영혼과, 밥투정하던 남편, 그리고 세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30일 동안 무사히 걸을 수 있었던 모든 발걸음에도 깊이 감사했다. 그 순간, 주름진 엄마의 얼굴이 미소와 함께 떠올랐다. 덕희는 눈물을 삼켰다.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에, 엄마가 너무도 고마웠다. 그리고 이제야 엄마에게 무심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조용히 용서했다.
미사의 마지막, 거대한 향로가 성당 안에서 흔들리며 향기를 흩뿌렸다. 성미는 눈을 감았다. 향기와 함께 하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국민학교 3학년, 첫 영성체를 받던 자신의 얼굴이었다. 성미가 간직하고픈 마음의 얼굴이었다. 성미는 조용히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향로를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