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선생 숙이

by 정루시아

오전 수업이든 오후 수업이든, 칠판에 수학 문제를 풀이하고 숙이가 돌아서면 반 이상의 아이들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중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은 이미 ‘수학’이라는 단어에 질려 있었다. 어렵지 않은 문제도 쇼를 하듯 재미있게 수업을 해봐도, 아이들 눈에서는 흥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엔 숙이도 교실을 돌아다니며 자는 아이들을 깨웠다. 하지만 십 년 전부터였을까? 아이들이 뱉는 말들이 마음을 상하게 했다.


"지가 뭐라고 그래."


"아, 시발. 졸린 걸 어쩌라고."


엎드렸다 일어나는 아이들이 웅얼거리듯 내뱉는 막말들. 처음 몇 년은 숙이도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뭐라 그랬니? 선생님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학생들에게 사과를 받아내고도 마음은 부글거렸다. 그러나 그런 일이 반복되자 숙이는 마음을 접었다. 아이들에게 정이 떨어졌다기보다는, 현실에 화가 났다. 그 말들이 단순한 사춘기 아이들의 반항과 이유 모를 적개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숙이는 아이들로 향했던 본인의 마음 상자를 굳게 닫아버렸다.

교실이든 집이든, 숙이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코로나가 터진 그해, 숙이는 퇴직을 신청했고 다음 해 봄에 명예퇴직을 했다.
온라인 수업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선생님들도 우왕좌왕했지만, 숙이 자신도 더 이상 교사 같지 않은 자신이 싫었다.


온라인 수업 경험이 전무한 숙이는 교실에서 촬영을 하고, 아이들 과제를 체크하고, 피드백을 주는 모든 일이 낯설고 불편했다. 코로나 이전, 숙이의 하루는 교실에 들어서며 아이들의 핸드폰을 걷는 것으로 시작됐지만, 코로나 이후엔 핸드폰을 통해 아이들과 만나야 하는 역설적 현실에 직면했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수업하던 그 시절에는, 졸고 있는 아이들을 살살 달래며 수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온라인 수업에서는 말이 공기 중에 흩어져 수증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이 이해했는지, 알아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은 조각 그림처럼 화면에 나뉘어 있을 뿐이었다.

하루가 끝나면 숙이는 늘 멍했다.


‘오늘 나는 뭘 한 거지?’


모니터는 꺼졌고, 화면 위엔 침 튄 자국만 남았다. 집에 가면 대학생 막내딸은 종일 집에 있었다. 교사인 엄마는 학교에서, 딸은 집에서 각자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첫째 딸은 대학을 졸업한 후 집 근처 회사에 다녔고, 둘째는 인근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딸 셋과 함께 사는 것이 싫진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숙이는 답답함을 느꼈다.


숙이와 친했던 교사들 중 반 이상이 명예퇴직을 했다. 정년퇴직을 고집했던 숙이도 결국 명예퇴직을 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명예퇴직을 한 후 숙이는 ‘집’이라는 또 다른 교실에 갇혀버렸다.


코로나로 인해 자택근무를 하는 남편과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는 막내딸.
그들의 세 끼니를 챙기는 일은 온전히 숙이 몫이었다.


쉬고 싶어 퇴직을 선택했지만, 숙이는 중학교보다 더 좁은 집 안에 갇힌 채 살았다.

해를 넘기면 끝나겠지 했던 코로나는 끝날 줄 몰랐고, 숙이의 숨은 점점 더 막혀왔다. 그렇게 1년을 밥만 하며 집에서 지냈다. 그러던 올초 1학기에 기간제 교사로 나와 달라는 연락이 왔다. 학교에선 아직도 마스크를 썼지만 코로나 시국은 점점 정리돼 가고 있었다.


코로나 시기, 친구들 모임은 계속 미뤄졌고, 꼭 1년 반이 지나서야 모임이 열렸다.
2월이었다.


그 자리에서 덕희는 숙이에게 말했다.


“올 5월, 산티아고 순례길 같이 가자.”


숙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야~ 난 못 가. 나도 너희처럼 맘 놓고 가고 싶어. 알잖아. 셋째가 아직 대학생이고, 나도 잘 걷지 못하고. 맘 같아서는 나도 놀고 싶지. 그렇지만 그게 말처럼 쉬우냐?”


덕희가 말을 이었다.


“이제 유럽도 열린대. 유럽 사람들은 작년에도 그냥 걸었대. 코로나 음성확인서랑 접종기록만 있으면 마스크 벗고 걸을 수 있대.”


성미가 호기심 섞인 눈빛으로 물었다.


“언제 가는 건데? 800km를 걷는 거야? 수연이랑 주미가 갔던 프로그램이랑 같은 거야?”


“응. 30일 걷고, 중간에 이틀 정도는 대도시에서 여유롭게 쉬기도 해. 왜, 관심 있어?”


“아니, 그냥 궁금해서. 일정은 언제부터야?”


“4월 말에도 있고, 난 5월 2일에 갈 거야.”


“그래, 그럼 일정표 나한테도 보내 줄래? 나도 한번 볼 게.”


“당연하지. 그거야 쉽지.”


성미는 큰 관심은 없다는 듯했지만, 궁금한 눈빛이었다. 덕희와의 대화가 이어졌고, 주미가 살갑게 웃으며 곁에서 말했다.


"5월이면 정말 좋겠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마음 같아선 나도 가고 싶은데, 남편이랑 산행 계획을 세워놔서… 이번에는 좀 어려울 것 같아."


수연은 산티아고를 추억하듯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그 길을 떠올리니, 발바닥의 통증보다 가슴이 먼저 저려왔다. 그 길을 걸으며 매일 마주했던 해돋이, 혼잣말처럼 속삭이던 기도들, 그리고 눈물. 모든 게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몇 년 늦춰. 나 정년 퇴직하고 같이 가자."


"내일도 장담 못하는데 몇 년은 안돼. 난 올해 다녀올 거야."


다부진 덕희가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며 단호하게 말하니 수연은 아쉽다는 듯 “그래 알았어. 좋겠다. 부럽다.” 했다.


숙이가 지나가듯 수연에게 한마디 했다.


"하여간 있는 것들이 더 한다니까? 한번 갔으면 됐지. 또 가려고? 체 해."


성미가 숙이말에 동조하듯 박수를 치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하여간 있는 사람들일수록 더해. 가봤으면서 또 가?"


모두가 깔깔대며 웃었다. 그 뒤 성미가 덕희와 함께 가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단체 카톡방은 한동안 들썩였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덕희와 성미는 공항에서 찍은 출국 사진을 보내왔다.


함께 출발했다는 메시지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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