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들
숙이는 친구 모임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가볍게 술 한 잔 하며 수다 떠는 이 모임은, 숙이에게 숨 쉬는 공간처럼 편안하고 소중한 자리였다. 하지만 그날따라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작은 소도시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의 삶이 어쩌면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을까?
숙이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자신은 아직도 집과 학교에 묶여, 늘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한 삶을 살고 있는데,
친구들은 하나둘씩 자기 뜻대로 삶을 꾸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숙이는 자신도 이해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3년 전, 주미와 수연이 순례길을 간다고 했을 땐, 그들의 모험이 신기했고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덕희와 성미가 순례길을 간다는 소식에, 숙이의 마음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단지 가고 싶어서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
왜 자신만 이 힘겨운 일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그게 답답했고 궁금했다.
덕희는 순례길을 함께 가자고 했지만, 숙이는 두 딸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학교에서 온 전화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기간제 교사로 몇 개월만 나와줄 수 없겠냐”는 상투적인 요청이었지만,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둘째 딸이 석사를 끝내고 박사과정에 진학하겠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그 전화가 이렇게 신경 쓰였을까?
숙이 자신도 잘 모르겠다.
며칠 전, 퇴근한 남편은 소맥을 마시며 은근히 말을 꺼냈다.
"요즘 박사과정은 등록금이 왜 이리 비싸? 셋째만 대학 보내면 끝인 줄 알았더니. 허허, 박사라니. 당신도 한잔하지?"
남편은 넉살 좋게 소파에서 빨래를 개던 숙이를 향해 술잔을 흔들었다.
숙이는 고개를 저으며 티브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 마셔. 당신이나 마셔. 세상 물가가 다 오르는데, 등록금이 안 오르겠어? 국립도 아닌 사립대가."
"3년은 다녀야 하잖아?"
"그렇지. 기본이 6학기니까."
"둘째, 셋째 합쳐서 등록금 내려면 허리가 부러지겠네. 당신, 기간제 연락 왔다며? 안 나가? 놀면 뭐 해."
"싫어. 지긋지긋해. 나도 이제 좀 쉬자고."
"1년 쉬었잖아. 살살 해. 최선을 다하니까 힘든 거지."
"됐어. 참견 마."
"빨래 내가 갤 게. 기간제 교사는 학급도 안 맡고 서류도 덜 하잖아."
"평생 안 하던 빨래를 당신이 해? 웃기지 마. 관둬."
"그냥 대충 해. 최선 다하지 말고."
"그걸 말이라고 해? 웬수가 따로 없다. 됐어!"
"기간제 그냥 나가봐."
"됐다니까! 제발 좀!"
결국 숙이는 집에서 가까운 중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나가기로 했다.
코로나로 선생님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숙이는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날, 2교시 수업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온 숙이는 깜짝 놀랐다.
카카오톡에 메시지가 30개 넘게 쌓여 있었던 것이다.
열어보니, 공항에서 덕희와 성미가 보낸 출국 사진이었다.
“우린 오늘 출발!”이라는 메시지와 함께였다.
3년 전 순례길을 다녀왔던 주미와 수연은 신나게 카톡을 달았다.
“와~ 좋겠다! 부럽다! 5월이면 딱 좋은 시기지. 짐은 되도록 적게 챙겨~ 스페인! 거기 다 있더라. 나도 다시 갈걸~ 덕희랑 성미가 간다니까 나도 또 가고 싶다!”
주미는 원래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는데, 산티아고를 다녀온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모임에도 적극적이고, 조곤조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모습이 숙이에게도 놀라웠다.
덕희가 순례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던 건 바로 그 주미와 수연이 순례길을 다녀온 후였다.
그렇게 벼르던 덕희가, 드디어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숙이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다.
자신은 여전히 제자리인데, 친구들은 하나둘씩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지금, 뭘 하며 살고 있는 거지?’
‘왜 다들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데, 나는 이 모양일까?’
‘내가 이상한 걸까?’
묵직한 의문이 가슴속에 내려앉았다.
숙이는 생각을 털어내듯 머리를 흔들고 카카오톡 프사를 바라봤다.
무엇이 자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어깨에 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지—숙이 자신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프사에 있는 딸들의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 나에겐 예쁜 딸들이 있지.’
덕희와 성미는 3~4일 간격으로 단체 채팅방에 사진을 올려놨다.
청명한 봄날의 스페인 구릉지대, 비가 쏟아지는 진흙길, 노랗게 유채꽃이 핀 긴 언덕길—모두가 엽서처럼 아름다웠다. 작은 체구에 활짝 웃고 있는 덕희는 그 자체로 행복해 보였고, 늘씬한 성미는 건강한 에너지가 물씬 풍겼다.
3년 전 주미와 수연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때도 단톡방은 며칠 간격으로 떠들썩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숙이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경치도 길도, 그리고 함께 걷는 친구도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친구들의 결심과 행동이 더 부러웠다. 숙이의 남편은 퇴근 후 늘 소주 한 병에 맥주 두 병을 곁들여 마셨다. 술을 좋아했고, 잘 마셨다. 대학 시절 과 커플이었던 숙이는 친구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남편이 마음에 들어 결혼했다. 사실 결혼 전엔 숙이도 술을 즐겼다.
가끔 수연은 숙이를 ‘도량이 넓다’고 놀리곤 했는데, 그건 술을 몇 병 마셔도 끄떡없는 숙이의 주량을 빗댄 농담이었다. 그러나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부터 모든 일상이 달라졌다. 학교와 집이 숙이의 전부가 되었고, 교사였던 그녀의 삶은 엄마이자 아내로 덧씌워졌다. 남편은 결혼 전이나 후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회식이 있는 날, 과음을 하고 돌아온 남편은 자고 있는 아이들 방에 들어가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정을 부리곤 했다.
"아이고, 예쁜 딸… 오늘도 잘 있었어?"
아이들이 어릴 땐 그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중학생이 된 후로는 "왜 아빠가 우리 방에 들어오게 하냐"고 화풀이를 숙이에게 했다. 숙이가 남편에게 몇 번을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건 남편에겐 일종의 낙이었다.
숙이는 오랫동안 ‘모든 날들이 다른 듯 같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흘러 되짚어보니 결국 ‘모든 날들이 같은 듯 달랐음’을 깨달았다. 아침에 아이들을 챙겨 등교시키고 나면, 숙이는 종일 중학생들과 힘겨루기를 해야 했다. 수학을 가르치며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일이 수십 년째였고, 그런 자신이 왜 다시 기간제 교사로 교단에 섰는지, 마스크를 쓴 채 표정을 가린 아이들을 상대하며 수업을 하는지—스스로도 납득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눈동자조차 잘 보이지 않는 그 교실에서, 숙이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 덕희와 성미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슴 어딘가가 턱 막히는 듯했다.
3년 전 주미와 수연이 사진을 보내왔을 때는 '와, 참 부럽다. 보기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3년이 흐른 지금,
숙이는 자신의 삶이 마치 상자에 갇혀버린 것만 같아뭐라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에 숨이 막혔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어느 날, 덕희와 성미가 도착했다는 사진을 보내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대장정을 마치고 대성당 앞에서 신발을 벗은 채 철퍼덕 주저앉아 두 팔을 하늘 높이 쳐들고 활짝 웃는 사진이었다. 벌써 30일이 지나 있었다. 둘은 해맑게 웃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열 살 때, 성당 마당에서 성경 가방을 깔고 앉아 공깃돌을 하던 시절처럼 천진난만했다.
그 사진을 보자, 숙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미쳤나… 갑자기 왜 이래…"
숙이는 교무실 책상 앞에 놓인 티슈를 뽑아 눈물을 닦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건 단순한 부러움이 아니었다. 신세 한탄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뿐인데,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이 돌덩이처럼 가슴 위에 올라앉은 기분이었다. 그때 서른 갓 넘은 젊은 여교사가 지나가다 사진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어머~ 여기 산티아고 순례길 아니에요? 친구분들이 다녀오셨나 봐요. 저도 가보려고 계획 중인데… 며칠 동안 걸으신 거예요? 30일짜리도 있고, 짧게 걷는 길도 있다던데.”
숙이는 담담하게 사진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아 예, 30일 동안 걸어서 도착했데요. 800킬로미터를 걸는 것이라 힘들었을텐데 말이죠.
내 친구지만 진짜 대단하죠?.”
“정말요? 연세도 있으신데… 더 짧은 코스도 있다던데 길게 가셨군요. 그래도 전 다 걷긴 좀 무서울 것 같고, 방학 때 짧게 한번 가보려구요. 선생님은 언제 가실 계획이세요?”
숙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휴~안 가요. 거길 왜 가요. 할 일도 지천인데요… 아파트 앞 개천도 안 걷는데 어떻게 가겠어요.”
“선생님도 참~ 개천이랑 산티아고랑 같아요? 분위기도 경치도 다르죠. 저는 자유로울 때 실컷 해보려구요. 결혼하면 힘드니까요.”
젊은 여교사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난 후, 숙이는 핸드폰을 조용히 뒤집어 책상 위에 엎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똑같이 흘러가는 자신의 하루가 서글펐다.
‘결혼하면 힘들다니…’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800킬로미터를 걸은 친구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되뇌었다.
3년 전, 주미와 수연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던 해, 막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숙이는 마음이 놓였었다.
막내만 대학에 들어가면 숨통이 트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학교 수업을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던 숙이에게 카톡이 도착했다.
덕희와 성미가 순례길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들이 길을 나선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귀국이라니.
시간은 참 빠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