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일까?
숙이만 제자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친구들은 하늘을 나는 듯 자유롭고, 숙이는 자신만의 궤도에서 돌고 있는 항성 같았다.
가방을 정리하던 숙이는 문득 책상 앞에 놓인 작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는 주름이 깊고, 눈 밑이 검게 그늘진 얼굴이 있었다.
깜짝 놀랐다.
생기 없는 눈, 불룩한 눈가, 늘어진 입꼬리.
마치 만화 속 늙은 할멈처럼 보였다.
숙이는 거울을 조용히 엎었다.
‘내 얼굴이 왜 이래… 대체 왜 이렇게 됐지?’
그날 저녁, 숙이는 남편이 사다 놓은 소주를 꺼내 술잔을 채웠다. 남편은 맥주 두 병을 들고 와 식탁에 앉았다.
입맛을 다시며 숙이를 바라보더니 대뜸 말했다.
“당신도 마시려고? 그래, 마시자. 오랜만에 당신이랑 소맥 좋지.”
숙이는 남편을 째려보며 말했다.
“그래, 원수야. 오늘은 술 좀 마시자.”
남편은 괜히 유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오~ 마누라랑 술 한잔! 예전에도 좋았지만, 지금도 좋다~ 이 나이에 마누라랑 술 마시며 이리 신난 남편 봤냐?”
숙이는 대꾸할 힘도 없었다. 미운 건지, 좋은 건지조차 헷갈렸다. 그저 피식, 웃음이 났다.
“하… 내가 못 살아. 넌 진짜 넉살 하나는 못 말린다니까. 내가 이 나이에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알아?
힘들어서 못 해 먹겠어. 친구들은 산티아고 갔다 왔다는데, 나는 이러고 앉아 있잖아. 뭐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하겠냐…”
“뭐, 누가 또 산티아고 갔어? 당신도 갔다 오지. 내가 보내 줄게. 뭐, 얼마면 돼? 까짓 거.”
“말은 참 쉽게도 하신다?”
“허허… 그야 당신이 뭐가 답답해서 그런 고생을 해? 남편 품 안에서 이렇게 편히 살면서~
굳이 개고생 하러 걸어갈 이유가 없지. 갈 필요가 없지, 우리 마누라는.”
숙이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술잔을 채워 들고는 남편의 잔과 부딪치며 말했다.
“오늘 쉬는 시간에 거울을 봤는데… 참 늙었더라.
최소한, 나는 내 얼굴만큼은 책임지고 살고 싶었는데 말이야.”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 당신 얼굴이 어때서. 아직도 그대로야.”
“나도 눈은 있거든. 그렇게 얼렁뚱땅 말로 넘기면 내가 속을 줄 알아?
아, 진짜 술 당긴다. 당겨.”
“아니라니까? 당신, 아직도 좋아. 우리 아직 한창인데 무슨 소리야.
자, 일로 와봐. 안아보게.”
“당신… 취했어? 저리 가.”
숙이 남편은 예전처럼 장난기를 발동했다. 입술을 숙이의 볼에 갖다 대려다 팔뚝에 밀려 나가떨어지자,
볼멘소리로 다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정말이라니까? 내 눈엔 당신은 그대로야.”
“그렇겠지. 매일 저녁 술 마셔도 아무 말 안 하니까 좋을 거야. 누군가는 행복해야지. 뭐, 당신이라도 편하게 살아야지. 내 얼굴에 주름이 가득해도… 어쩌겠어.”
숙이는 술기운 때문인지, 억울함 때문인지 말을 하며 굵은 눈물을 뚝 흘렸다.
남편은 웃음기를 거두고, 숙이의 술잔에 조용히 소맥을 채웠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 얼굴을 겉으로만 봐?
내 눈엔 당신이 천사야. 어렸을 때부터 봐온 그 모습 그대로야.
당신은 잘 살아왔고, 지금도 잘 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거야.
당신은 남의 삶을 부러워하며 기웃거리는 사람이 아니잖아.
자기 주관 뚜렷하고, 휩쓸리지 않고,
좋은 선생으로, 엄마로,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았잖아.
그거면 된 거 아냐? 인생이 꼭 무슨 대단한 의미를 가져야 해?
그런 건 다 허상이고 이데올로기야.
자기만 만족하면 그게 제일 좋은 삶이지.”
“말이라도 못 하면… 됐어. 누가 그 말 믿는 줄 알고.”
숙이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식탁 한쪽에 놓인 티슈를 빼 눈물을 닦았다.
남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자신이 만족하면 그만’이라는 걸 몰라서 운 게 아니었다.
그저, 쉬고 싶었다.
조금의 여유가, 마음먹는다고 거저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자신이 짊어진 짐을 어디에, 어떻게 내려놔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날 숙이는 오랜만에 소맥을 실컷 마시고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