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잘 살면 되는 거야!

남편의 세계 9: 성곽을 쌓는 자! 걸으며 상상하는 자!

by 정루시아



몇 년 전 클라우드 시스템이 몰아치던 때 다수의 IT학자들이 미래 세대들은 죽은 부모와 조부모를 가상현실 세계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돌아가신 부모 데이터를 시스템(특정 프로그램?)에 투입하면 자식은 데이터로 설계된 죽은(가상) 부모를 만나 고민과 고충을 털어놓기도 하고, 부모(죽은 가상 부모)로부터 위로와 충고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라 말이다. 죽음이면 끝인 세대에서 미래 IT세상에선 인간이 불멸의 존재로 거듭날 것이라니....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기술이 날로 발전하니 모니터 속이나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로 죽은 부모가 잠시 소환되어 가벼운 대화를 하는 일, 밥은 먹었니? 하며 지극히 평범한 하루 일과를 묻고 대답 할런지도 모를 일이다. 미래를 예견하는 학자들은 모습을 소환하던, 목소리로 부활하던, AI 기술 발전은 부모 자식의 물리적 시간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데이터 축적 결과가 생물학적 인체의 죽음을 넘어선 불사의 인간을 만들어 내놓을 것이라 하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2017년 늦은 봄, 금요일 서울 출장 겸 남편과 남산 성곽길 걷기를 계획했다. 남편은 간만의 여행이라 짐을 싸고 즐겁게 교통편을 검색했다. 토요일 오전 남산 성곽길에 들어서니 사람이 가득했다. 서울에서 사는 외국인인지, 한국을 여행 온 외국인인지, 서울시민인지, 나처럼 서울 구경온 여행객인지, 모두들 눈에 성곽을 담고 환하게 웃었다. 성곽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성곽을 찬찬히 손으로 만져 보곤 오래된 길을 걸었다.


능선을 따라 1~2미터로 야트 마하 게 세워진 성곽길에서부터 절벽처럼 5~6미터 높이로 세워진 성곽길을 걸으며 "성 쌓느라 조상들이 정말 고생했겠네." 하니, 남편은 "그러네. 생각보다 길고 높네. 사대문을 모두 연결했을 터이니 긴 시간이었겠지." 했다. "후대에 남길 유산으론 돌만 한 게 없어.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피라미드, 로마의 콜로세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경주 석굴암처럼 말이야." 하니, 남편은 "돌이 시간을 견디는 데는 참 유용하지. 참 좋네." 했다. 나는 "돌이 무슨 시간을 견뎌, 인간의 바람이지, 천천히 변하는 돌의 속성을 인간이 그저 이용한 거지. 돌은 그 자리에 있을 뿐이야." 했다.


"저번에 출장 가며 라디오를 들으니 이제 미래세대들은 죽은 자들을 소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하니 "뭔 소리야?" 하며 남편은 시답지 않은 소릴 들었다는 듯 대답했다. "당신도 들어봤을 텐데, 한 사람의 데이터를 전부 모아 AI처럼 만들면 그 데이터가 살아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도록 할 수 있다는 말 말이야. 정말 죽음 이후에도 IT 기술로 부모, 혹은 자녀, 위대한 스승들을 소환하여 새로운 대화를 할 수 있을까?" 하니, "데이터를 집결하여 딥마인드(deep mind)하면 의사소통은 하겠지, 그렇지만 그게 무슨 의미야?" 했다.


"의미를 떠나서 나는 정말 궁금해서 그래. 컴퓨터에 저장된 모든 내용과 SNS로 행해진 모든 데이터들을 한 곳에 모으면 그 데이터가 데이터 주인과 동일할까? 그러니까, 내 데이터를 모아 놓고, 내 생각 논리로 살아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면 그걸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없을까? 하고 말이야. '내 생물학적 존재는 사라졌지만 생각하는 존재(즉 한정된 나의 데이터가 지속적 관계를 통해 새로운 데이터를 만드는 새로운 나: 모든 감각은 물리적 데이터 처리과정을 통해 발현된다는 주장에 입각하여)가 남는 것이다.'로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내 생물학적 존재가 사라졌으니 그 파편인 사유의 일부가 잔존하는 것으로 결국 '나는 아니다.'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말이야." 했다. 남편은 "데이터를 모은다면 모을 수 있지." 했다. 남편은 내가 남편에게 했던 카카오톡 답변, 이메일, 사진, 반응의 행태 등을 총합하면 간단하게 나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했다. 내가 좋아했던 음악, 장소, 친구들, 음식들, 책들, 글귀들 등 수많은 정보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진짜 나일까?" 하는 물음에 남편은 "그게 당신의 한 부분(사유의 파편, 물리적 형태의 파편, 경향성의 파편)이라 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그건 과거고 멈춘 거지. 불완전한 조각, 볼드모트가 영혼을 여러 조각내어 숨겨놓은 것과 같은. 그러니 당신이었지만 당신이 아니지. 인간이 왜 인간이야. 몸도 있고 생각도 있어야지." 했다. 내가 "나의 한 부분이나 나는 아니다? 확신해?" 하니, 남편은 "글쎄, 물음표네."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다 "그럴 수 있다면 당신 데이터를 모조리 모아 죽음에서 부활시켜야겠네." 했다. 내가 "뭣이라? 그건 내가 먼저 죽는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데. 왜 내가 먼저 죽어?" 하니,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곤 "그럼 내가 먼저 죽어? 당신은 누가 보살피고." 하기에 나는 "나는 내가 알아서 잘 죽을게요. 당신 걱정이나 하세요. 그냥 우리 각자 알아서 잘 죽어봅시다." 했다. 불멸을 얘기하다 누가 먼저 죽느냐를 가지고 20분은 실랑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땀을 흘리며 성곽길을 걷다 "참 오래전에 저 성곽을 쌓으려 다친 사람도,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분들의 노고에 이런 아름다운 길을 걷고 좋네. 참 좋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은 참 좋아?" 했다. "지금 이리 세상이 데이터 생성, 축적, 소비 세계로 진입하니 여하간 나중에 우리 애들이 엄마, 아빠를 보고프면 죽은 우리를 소환하겠어." 했다. 남편은 "우리를 걔들이 소환한다고? 왜?"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날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아니 혹시 딸, 아들이 살다 힘들면 소소한 궁금중이나 애로 사항을 가상의 우리에게 물어볼 수도 있잖아. 우리의 가상 데이터가 구축이 되면 말이야." 했다.


남편은 피식 웃으며 한심하단 듯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얘들이 최근 힘든 일 있다고 당신에게 전화한 적 있어?" 묻기에, "아니 없는데." 하니, "잘 생각해봐. 고민이 있다고 신중하게 상담이라던가 뭐~ 그런 걸 전화로라도 말한 적이 있는지." 하여, 다시 나는 "없는데?" 했다. 남편은 피식 웃으며 "그래~. 거봐. 부모가 멀쩡하게 살아있는데도 아이들은 부모에게 먼저 상담하지 않아! 그게 일반적이야. 뭔 큰 사고를 친 게 아니면, 다 자기들의 바운더리 안에서 해결이 돼. 그게 정상이야. 살아 있어도 상담은 고사하고 자주 통화도 안 하는데 무슨. 부모는 건강하게 잘 키웠으면 다 한 거야." 하며 나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나는 "아니 그래도 내가 죽으면 가끔 컴퓨터 속에서라도 아이들이 날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거지" 했더니, 남편은 "완벽한 DNA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력이 떨어져. 모든 존재는 불완전성을 갖고 있어야 변화에 민감하고 능동적이지. 적당히 줘야지, 다 주면 안 되는 게 인생이고 생명체의 기본이야." 했다. 미래 시간은 아이들 시간이다. 내가 무엇을 그리 다 주고 싶어도 내가 미래를 모르니 다 헛수고이긴 하다. 그래도 나는 그냥 일반 부모 아닌가? 미래학자들의 말에, 인공지능이 판을 친다는 미래이니 혹여 내 데이터가 좀 쓸만할까 싶어 꺼낸 말에 무지한 엄마가 됐다. 남편 대답이 참 좋았다. "당신 있어 보이네, 인생 좀 아네! 그런 혜안이 있다니~" 하며 올라간 남편의 어깨를 토닥였다.


길을 걸으며 맘 속으로 '해리포터 시리즈의 움직이는 사진, 펜 시브 같은 기억 저장은 좋을 듯' 하단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고 잠시 마음의 행복을 누리길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가끔은 추억만으로도 위안이, 행복해지는 순간이 있지 않아? 여하간 그런 프로그램이 개발되면 난 사용한다에 한표. 내 정보를 모두 긁어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 묻고 싶을 때, 그냥 들어와 한 몇 초 들려가도록 말이야." 하니 남편은 "뭐 데이터 용량이 무한정 커지면 사용하겠지만 그걸 걔네들이 얼마나 사용하겠어? 맘을 비우고 사진이나 찍자, 여기 좋다." 하며 셀카를 찍었다. 가족 카카오톡에 남편이 사진을 올리니 딸이 활짝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고 아들은 보지도 않는다. 한 시간 넘은 대화의 결과를 확인하는 데는 1분이면 족했다.


성곽길을 따라 한참 걸었다. 왼편의 성곽을 따라 울창한 숲길을 걸으며 수백 년 전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언덕에서 내려본 광활한 서울시내는 건물로 빼곡했고 촘촘한 건물만큼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응축된 공간, 시간이 축적된 공간을 잠시 지나가는구나 했다. 남편은 "사람이 죽고, 세상이 변하고, 변한 세상에서 사는 얘들에겐 우린 그냥 부모고 지나가는 가드야. 우리끼리 잘 살면 되는 거야! 뭐 엄청 잘하라 해도 얘들은 우리가 거쳐온 과거에 사는 게 아니라 미래에 사니 아이들에겐 우리말이 맞을 수 없어." 한다.


남편은 늘 아이들과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지내듯 한 발을 빼듯 관조적으로 말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늘 딸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주기적으로 들어가 무얼 그리는지, 무얼 먹는지, 어딜 갔는지, 누구와 무얼 했는지 들여다본다. 식사하다 딸 얘기가 나오면 지나가듯 잘 지낸다며 가득한 정보를 토해낸다. 정작 나는 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들어가지 않는다. 딸과 함께 브런치 작업을 하며 카톡을 나누고 가끔 전화를 하지만 말이다.


남편은 가까운 미래 죽은 부모와 자식 인터페이스가 나오면 아마 얼리 어뎁터처럼 가장 먼저 참여를 희망하리라. 그리곤 다시 내게 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진짜 나일까?"


죽음 이후 우리 정보들은 아이들의 DNA로, 사회의 빅데이터 속에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 성곽처럼! 성곽은 그저 늘 있었으되, 살아 길을 걷는 우리는 성곽의 지어짐을 상상하고, 성곽에 말을 걸고, 또 무너진 성곽 복원을 상상하듯 말이다. 언제나 죽은 자는 산자에 의해 살아나지 않는가! 그리고 언제나 산자는 죽은 자로부터 오고, 죽은 자는 산자의 기억을 배회하다 지나갈 뿐이지 않은가? 남편이나 나나 우리 자신을 믿는 만큼 아이들을 믿고 있음을 성곽길을 걸으며 보았다.


남편이 말한 자식과 부모의 정의가 그날처럼 믿음이 갔던 적이 없었다.


"완벽한 DNA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력이 떨어져. 모든 존재는 불완전성을 갖고 있어야 변화에 민감하고 능동적이지. 적당히 줘야지, 다 주면 안 되는 게 인생이고 생명체의 기본이야."


"사람이 죽고, 세상이 변하고, 변한 세상에서 사는 얘들에겐 우린 그냥 부모고 지나가는 가드야. 우리끼리 잘 살면 되는 거야! 뭐 엄청 잘하라 해도 얘들은 우리가 거쳐온 과거에 사는 게 아니라 미래에 사니 아이들에겐 우리말이 맞을 수 없어."


남편! 참 좋은 말이에요. 그러니 그만 아이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엿보지 말고 우리끼리 잘 살아 봅시다.


추신: 아들이 3일간 방학으로 집에 왔다. 점심으로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만들어 함께 먹으며 아들에게 물었다. "죽은 엄마 데이터로 AI를 만들어 너와 대화하면 난 죽은 걸까? 산 걸까? 그게 진짜 엄마겠니?" 하니 아들은 샐러드에 든 황금 키위를 포크로 폭 꽂아 입에 넣곤 "엄마가 뭘 느껴요? 느낄 수가 없잖아요." 하며 마당에서 기른 토마토를 마저 먹는다. 관계가 아니라 바로 주체로 향하다니. 참 간단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글 쓰고 딸이 그림 그리길 일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