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세계 10: 왜 우리는 오늘을 살지 않고 내일을 말할까?
남편과 함께 처음 해외여행을 한 것은 둘째 돌이 지난 후 유럽 4개국(독일 뮌헨, 스위스, 파리, 이태리) 배낭여행이었다.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이스포(ISPO)를 참관하는 것으로 시작한 여행은 아이 둘을 낳고 둘이 오랜 시간(15일) 처음 여행하는 것이니 그저 좋았다.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추운 겨울이어도 좋았다. 직장을 다니며 중국, 미국, 네덜란드, 독일로 출장을 다녀왔던 나로선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지 했지만 남편은 낯선 공간이 주는 긴장과 언어 장벽, 빡빡한 일정 등에 불편해했다. 남편은 날마다 추워했고 날이 갈수록 추위를 탔다.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아름다운 유럽의 거리들을 걷기보단 호텔로 들어가자 졸랐다. 뭐가 그리 추었을까? 낯 섬과 책임감에 그랬지 싶다.
근검절약 남편은 해외여행을 하며 한 5년 동안은 별것 아닌 목걸이, 귀걸이, 스카프, 전통 샌들을 사달라는 나를 마땅찮아했다. 태국을 패키지로 아이들과 함께 가서는 딸과 함께 쓰겠다고 모자를 산다 하니 그런 모자를 언제 쓰려고 하냐며 황당했고, 중국 장가계에서 들린 진주 전시관에서 진주 목걸이 5줄(1줄에 5천 원)을 산다 하니 어이없어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한숨을 쉬며 같잖어했다. 2008년 학생들 12명을 데리고 유럽 11박 12일 연수 프로그램에 따라온 남편은(휴가를 내고 따라온 남편이 여행 내내 학생들 짐을 들어주어 고마웠다.) 베니스에 도착해 2월 베니스 카니발을 구경하며 마스크 하나를 사자 하는 내 손을 막았다. 사도 쓸데도 없고 놓을 데도 없으니 결국은 쓰레기통으로 갈 것이라며 극구 말렸다. 이곳저곳 베니스를 돌아다니다 들어간 무라노(murano) 섬의 유리공방은 참으로 신기하고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한 20년은 불속에서 유리와 씨름을 한듯한 굵은 팔을 내두르며 흐느적거리는 유리를 다루는 장인의 솜씨는 놀랍고도 아름다웠다.
그날 저녁 성 마르코 광장을 거닐며 들어간 유리세공 가게는 점심 후 보고 온 유리공방의 열기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제품 하나하나에 베니스 장인의 오래된 기술과 정신, 미의 현대적 재해석을 볼 수 있어 탄성이 흘렀다. 화병, 전등, 유리잔, 유리그릇, 작은 액세서리까지 무엇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으며 무엇하나 고루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유리세공 목걸이의 가격은 금목걸이 못지않은 금액이어서 먹고사는 방편으로 예술만 한 것도 없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자리에 서서 한 10분 아름다운 목걸이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남편은 "다시 오면 사줄게" 했다. 내가 웃으며 "언제?" 하니 남편은 "몇 년 후면 오지 않겠어?" 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 후 2010년 시부모님을 모시고 일본 여행을 할 때 가이드가 금은 세공을 하는 공방을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얇은 금박을 그릇이나 유리에 입혀 판매하는 제품이었는데 그곳에도 목걸이를 판매하고 있었다. 남편은 목걸이를 쓰윽 보더니 "베니스의 목걸이에 비교하면 참 소소하지?" 했다. '옳다구나' 했다. 나 혼자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2004년 14일 유럽 배낭여행을 할 당시 베니스에서 30유로에 목걸이 세트 1개를 사 온 것이 있었다. 남편은 "2004년에 사 온 목걸이가 더 예쁘네." 하며 2008년 학생들과 여행할 당시 베니스의 작은 상점에서 "목걸이 두 개(하나에 10유로)를 고르라." 하여 감지덕지하며 목걸이를 사 온 경험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남편이 금가루가 들어간 목걸이를 보고는 별거 아니라며 폄하하는 순간 이 목걸이가 200달러가 넘어도 사야 함을 깨달았다.
내가 카드를 커내 들고 "이 목걸이 포장해주세요." 할 때 남편은 황당해서 눈이 사탕만 하게 커졌다. "아니 이런 건 베니스에 가면 30 유로면 살 것 같은데 왜 이걸 사? 별론데..." 나는 아무 말도 않고 결재했다. 목걸이 세트가 엄청 예쁜 것도 아니고 특출 난 것도 아니지만 샀다. 내 카드로, 내 돈으로 샀다. 여행을 가면 늘 남편에게 "사달라." 했다. 남편은 선물을 사주는 행위를 자신만의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던 내가 말도 없이 사니 남편은 '왜 그 정도 값을 하지 않는 것을 사는가?' 하며 의아해했다.
함께 살아가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며 사는 것이다. 근검절약 남편을 설득해 해외여행을 나가선 더더욱 남편을 배려해야 하니 늘 사고 싶은 물건을 남편 손으로 사도록 했다. 남편이 사주는 행위를 통해 서로 생각을 맞추고 남편의 근검절약의 기준을 거스르지 않도록 하는 나의 배려 말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남편의 의중을 고려하여 내가 직접 사지 않았음을 남편은 몰랐다. 우린 각자 경제 주체이니 각자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었음에도 내가 늘 배려받고자 하였음을 말이다. 그날 저녁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다음에 이곳은 다시 안 올 거거든,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는 이렇게 못 오거든." 했다. 남편은 "뭐라고?" 하며 어이없어했다.
다음 해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터키 여행 갔을 때였다. 가끔 장거리 이동을 하며 들리는 쇼핑장소는 늘 남편을 불편하게 했다. 어머니도 남편도 늘 근검절약함을 모르지 않지만 나는 나서서 남편 옷을 고르고 입히기를 반복했다. 아들 입은 옷을 어머니가 앞뒤로 살피곤 꼼꼼히 소매 기장이며 품을 살피는 모습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남편은 경비도 만만치 않은데 왜 그러냐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유명한 가죽 공장에 여행객을 데리고 간 남자 가이드는 "사모님 옷은 사지 않고 왜 남편 옷만 보냐." 했다. 함께 온 아주머니들이 이것저것 입어보는데 나는 남편 옷만 들고 놨다.
어머님은 남편이 입은 가죽 코트를 보곤 입이 귀에 걸렸다. "너무 멋있구나. 잘 어울린다."며 그리 좋아하실 수 없었다. 간절기에 적당한 가죽옷을 샀다. 면제품을 판매하는 공장에선 남편 와이셔츠만 몇 개를 샀다. 아들 옷만 사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의 근검절약은 이미 무장해제됐다. 아마 남편은 평생 그 가죽옷과 와이셔츠를 걸치며 함께 간 터키에서 행복하게 웃으며 옷을 고르던 그 시간을 소환할 수 있으리라. 인간의 삶은 그저 추억을 소환하기도 쉽지 않은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감을 알지 못한다. 우리 뇌가 우리 생각보다 그리 영민하지 못하여 잊음이 되새김보다 더 빠름을 쉽게 망각한다. 옷을 걸치며 그 망각을 잠시 벗어날 수 있음을, 최소한 그 감촉을 공유할 수 있음을 감사할 뿐이다.
터키 여행의 묘미는 뭐니 해도 카펫 공장 방문이었다. 말 그대로 우리 가족은 수많은 아름다운 카펫을 구경만 하고 뚜벅뚜벅 걸어 나오기만 하면 됐다. 가이드 말처럼. 나나 남편이나 무슨 카펫을 살 생각이 있었겠는가? 색색으로 펼쳐지는 카펫과 방향에 따라 빛이 달라지는 아름다운 카펫에 어머님은 넋을 잃고 앉아계셨다. 어머니 옆에는 남편과 꼭 닮은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할머니 손을 잡고 그 아름다운 빛에 넋을 잃고 "할머니 저거 이뻐요." 했다. 나는 단박에 알았다. 어머니 마음에 카펫이 쑤욱 들어온 것을 말이다. 카펫에 홀려 30여 명의 그룹 투어 여행객이 모두 자리를 떠도 어머니와 어린 아들만 앉아 카펫을 흥정했다.
남편은 내 옆구리를 찌르며 나가자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웃었다. 그리곤 삼분의 일 가격으로 흥정한 어머니께 "어머니, 그렇게 맘에 드세요?" 하였더니 어머니는 "너무 좋구나." 했다. 손자인 내 아들이 옆에 있다 "할머니 이거 사면 나중에 저 주세요." 하며 쐐기를 박았다. 어머니는 "그럼, 내가 쓰다 너 줄게. 이걸 죽어서 어디 들고 가냐? 너 줘야지." 하시며 우릴 보곤 "지금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 물었다. 내가 "어머니 이거 좋으시면 사들일게요. 나중에 쓰시고 손자 주세요." 했다.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그럴래? 내가 그럼 누구 주냐? 이걸! 손자 주지." 하며 너무도 행복해하셨다. 비쌌다. 여행지에서 아무리 가격을 깎아도 비싼 가격이었다. 한 사람의 여행경비가 넘으니 말이다. 남편은 "다음에 사드릴게요." 했지만 시부모님께 다음의 터키라니 말도 되지 않은 소리였다. 남편에게 카드를 달라 했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어머니는 여행 내내 행복해하셨다. 근검절약이 생활로 배어 있어도 여러 벌의 아들 옷과 아름다운 카펫에 어머니 마음은 풍요로웠고 시아버지는 말을 아꼈다.
그날 저녁 남편은 머리를 쥐고는 짜증을 냈다. "그걸 부화뇌동하여 어머니가 혹하여 물건을 사게 내버려 두었다."며 나를 탓했다. 내가 웃으며 "여보, 어머님이 그리 사고 싶다는데, 그걸 뭘 못 사드려. 두고 봐요. 나도 그 카펫이 좋더라고. 모든 물건은 다 제자리가 있어. 어머니 집에 그 카펫은 어울리지 않아. 그 카펫은 몇 년 후면 우리 집에 올 거야. 그리고 나중에 내가 아들에게 물려줄 거고. 할머니랑 꼭 붙어 앉아있던 당신 아들에게 우리의 기념품으로 남겨질 거야. 걱정하지 마." 했다. 남편은 "참 당신이 몰라서 그러지, 엄마는 그냥 쌓아놓을걸. 아까워서 펼치기는커녕. 그런 걸 왜 사?" 했다. 그러고는 "그걸 왜 우리한테 줘. 손자 라면 몰라도." 했다. 어머니는 여행이 끝나고 한 달 후에 카펫 값을 보내주셨다. 여행경비며 아들 옷 사느라 돈을 많을 썼을 텐데 카펫 값은 줘야겠다며 말이다. 남편은 "어머니가 돈을 보내 주셨다."면서 "정말 카펫을 펴서 쓸까?" 궁금해했다.
일본에서 비싸게 샀다며 어이없어하던 그 목걸이와 귀걸이를 하고 나선 늘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이 목걸이, 귀걸이 기억나?" 하면 남편은 웃는다. 베니스에서 산 직경 5cm 넘는 목걸이를 하고 며칠 후 다시 물으면 남편은 또 웃는다. 내가 지나가듯 "베니스는 언제 가나?" 하면 남편은 저도 모르게 산 마르코 광장의 목걸이를 생각하며 "그때 샀어야 하나?" 한다. 학회 참석으로 가족여행으로 일 년에 한 번 정도씩은 국외여행을 하였으니 소소한 물품들이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산 15유로 샌들과 망고 매장에서 산 남편의 분홍색 남방, 쾰른 대성당을 지나 로드샵에서 산 남편의 재킷과 코트, 내 가죽점퍼, 프라하의 길거리에서 산 남편의 신발과 내 롱부츠 등 가격은 모두 저렴하지만 그 신발, 그 옷을 걸치는 순간 수많은 추억이 함께 소환되어 입가에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한 5년 남편은 작은 소품을 사는 날 이해하지 못했다. 귀걸이를 하고 "이거 어디서 샀는지 기억나?" 하고 내가 물으면 남편은 "어디 샀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이건 2009년 스페인 구엘 파크의 젊은 청년이 직접 만들어 팔던 4유로 귀걸이 었는데? 기억 안 나? 더운 여름날 당신이 굳이 "이런 걸 사냐."며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날 봤었잖아?" 남편은 "그랬나?" 했다. 나는 계절에 맞춰, 옷색에 맞춰, 여행지를 추억하며 귀걸이, 목걸이를 하며 물었다. 어디다 쓰냐던 그 소소한 액세서리는 늘 남편과 함께였던 추억을 소환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서야 남편은 내 쇼핑을 이해했다. 작년 여름 작은 귤만 한 크기의 유리세공 목걸이를 하고 출근하는 나를 보던 남편이 "아~ 그건 베니스 무라노 섬에서 산 목걸이지. 오래됐어도 예쁘네. 두세 개 더 사도 좋았을걸. 10유로였던가?" 한다.
여행지에서 남편은 늘 "다음에 와서 사자!"를 외쳤었다. 지금을 살며 왜 자꾸 미래를 얘기하는지 나는 들은 척도 않고 5유로에서 30유로 정도의 귀걸이, 목걸이, 샌들, 시장 옷을 사달라 졸랐고 남편은 하는 수없이 사주었다. 옷뿐이랴? 동남아시아에 여행을 가선 5달러, 10달러의 야자수 열매 그릇, 접시 받침대, 테이블 세팅 러너, 나무젓가락, 샐러드 집게, 테이블보 등 여행지의 특색에 맞춰 샀다. 남편은 "쓰지도 않을 것을 왜 사? 어디다 쓸려고? 그런 건 다 쓰레기 돼." 했다. 아무리 비싸야 30불, 30유로가 넘지 않는 소소한 액세서리와 부엌용품을 샀다. 생글거리며 "두고 봐요. 다 쓸데가 있어요." 했다. 남편은 꼿 방귀를 뀌며 "그걸 어디다 써? 그 목걸이를 하고 어떻게 학교에 가?" 했다.
집을 짓고 나니 어머님이 카펫을 보내셨다. "한 계절 카펫을 펴보니 좋기는 하지만 집에 어울리지 않아 말아 두었다." 하셨다. 어머니는 "야~ 내 집엔 어울리지 않는데 높은 천장인 너희 집 거실엔 딱 그 카펫이 있을 자리더구나. 너희 집에서 쓰고 나중에 내 손자 줘라!" 하셨다. 지금 우리 집 거실엔 터키 여행지에서 산 그 카펫이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카펫을 어머니께 받아 거실에 깔며 남편은 환하게 웃었다. "정말 당신 말대로 카펫이 여기로 오네. 여기 펴니 잘 어울리네. 집 색깔과 딱이야. 좋네." 했다. 난 그 카펫을 보며 어머니가 나의 아들과 나란히 앉아 수많은 카펫을 구경하며 환하게 웃던 모습을 본다. 그 길지 않은 여행의 기간 어머님은 아들의 지어지지 않은 집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풍요는 근검절약으로 쌓아놓은 돈과 물품이 아닌 마음의 풍요다. 수많은 행복한 추억들을 일상의 의복으로 입을 줄 아는 자만이 진정 행복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자다. 사위와 함께 온 딸이 마당 뒤꼍에 놓인 선반의 소소한 물품을 보곤 활짝 웃는다. 우리 가족이 함께 했던 모든 추억이 그 작은 기념품에 새겨져 있음을...
요즘도 출근하며 중국에서 한 줄에 5천 원 하던 일그러진 진주 목걸이를 한 줄로 연결하여 목에 걸고 집을 나서면 남편은 웃는다. 장가계 여행 후 진주 목걸이를 풀어 질긴 나일론 실에 꿰고 있으니 남편은 속도 모르고 "긴 진주 목걸이를 사달라 하지?" 했다. 내가 웃으며 "당신 잘 모르지? 내가 긴 진주 목걸이 사달라 하면 너무 비싸서 깜작 놀라며 당신이 그럴 거잖아. "다음에 와서 사!" 하고 말이야. 난 다음에 여기 안 올 거였거든." 하니 남편이 크게 웃었다. 세계 곳곳에서 산 얼마 하지 않는 목걸이와 귀걸이를 하며 나는 행복했고, 당당했고, 주눅 들지 않았으며, 밝았던 우리를, 우리 가족의 추억을 소환한다. 그리곤 얼마나 빠른 속도로 과거를 지나쳐 미래로 달려가는지, 향하는지 목에 걸린 목걸이와 발에 신긴 신발들로 깨닫는다.
오늘 저녁 고3 아들의 저녁을 차려주며 "터키에서 산 카펫 주면 가져갈 거니?" 하고 물으니 아들이 웃으며 밝게 대답했다. "엄마, 그 카펫을 놓을 데가 있을까요? 예뻐서 천장에 매달아도 좋을 듯 하긴 해요." 한다. 싫다고는 하지 않고 둘 곳이 있을까 걱정을 하는 아들을 보곤 참 추억이란 소중하구나 싶다. 내가 밥을 먹던 아들에게 "천장보단 평범한 벽면에 그냥 걸어도 좋을 카펫이야." 하며, "네가 싫다 안 하고 놓을 곳을 걱정하니 엄마맘이 좋구나!" 했다. 개인의 추억이 가족의 역사가 되는 순간을 만들기란 쉬워 보이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남편의 "다음에 와서 사!"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니, 우리는 매 순간 과거에 매달리지도, 미래에 복종되지도, 현재를 과신하지도 않아야 됨을 아들 대화속에 느끼는 행복한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