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두막 속 10살 아이
소리에 잠을 깼다. "우르르 쾅, 쩌~어~~ 억, 쾅쾅." 새벽 5시! 열어 논 창문에선 냉기가 훅 들이쳤다. 잠들면 좀처럼 깨지 않는 남편은 하얀 베갯잇에 옆얼굴을 대고 얕은 숨을 쉬며 자고 있다. 번쩍하는 빛에 마당 스카이로켓 향나무가 지나갔다. 정원 목수국 하얀 꽃이 흔들렸다. 비가 쏟아졌다. 빗방울에 공기 알갱이가 부딪치며 낮게 울었다. 물 알갱이는 하늘을 부유하다 땅의 품에 안기며 쏴와~ 쏴와 울음을 쏟아냈다. 안도의 노래일까? 아쉬움의 울음일까? 남편은 시든 배춧잎 같은 이불을 잡아당기며 돌아누웠다. 살포시 등을 말며 자는 그는 심해 속 떠 있는 따스한 물방울 같다.
8월 여름 장맛비! 7월 중순부터 내린 비가 8월로 이어졌다. 처음 온 비와 지금 오는 비의 일생이 다를 터인데 '그저 비가 온다.' 생각한다.
"밥 먹자~?" 8월 더운 아침! 엄마 목소리에 잠을 깼다. 늦잠을 자던 3학년 10살인 내가 부스스 일어나 밥상에 앉으니 엄마 이마엔 땀이 송글 했다. 잠 깬 내 목엔 긴 머리카락이 달라붙었고 4살 위 언니가 입던 반바지 자락이 다리를 휘감았다. 머리를 모아 노란 고무줄로 묶고 휘감긴 바지자락을 펴며 밥상에 앉았다. 작은 기와집은 아침부터 가마솥 같다. "엄만 밥 먹고 사과밭에 갈 건데, 놀다 점심때 얼음 가져올래?" 송글 맺힌 땀이 뚝 덜어지듯 엄마가 물었다. 며칠 전 담근 여린 열무김치가 새콤한 향을 냈다. 눈만 하얗고 온몸이 까만 마른 나뭇가지 같던 나는 열무김치를 젓가락으로 잡으며 "얼음요? 네. 가져갈게요." 했다. 아싹한 열무! 손톱으로 똑 누르면 알사한 풀냄새를 남기며 뿌리가 쉬이 잘리던 열무였다. 엄마는 땀을 흘리며 작은 절구통 안 고추와 마늘을 짓이겼다. 빨간 고추와 톡 쏘는 향을 내며 으스러지던 마늘이 열무의 가녀린 이파리에 숨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손톱 끝 짙은 초록물을 남긴 열무김치를 올렸다. '열무는 이제 내 속에 숨어 있겠구나.' 했다.
대동 국민학교 운동장, 몇 백 년 된 은행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땅따먹기를 했다. 황톳빛과 붉은빛이 감도는 운동장엔 아이들의 발에 부서지고, 뭉개진 작은 돌 알맹이가 흑설탕처럼 깔려있었다. 딱딱한 땅에 금을 긋고 놀았다. 쪼그려 놀다 무릎이 아프면 금 긋던 나뭇가지를 내던지고 그네를 탔다. 미끄럼틀에서 얼음, 땡 놀이를 했다. 까만 내 볼에 땀 방물이 비처럼 흘렀다.
해가 머리 위로 갈 때 얼음 대접을 꺼냈다. 동네 하나뿐인 우리 집 냉장고를 엄마는 좋아했다. 큰 노란 주전자에 얼음을 넣고 집을 나섰다. 사방이 복숭아 밭으로 둘러싸인 엄마의 사과밭! 차가운 땀을 흘리던 큰 주전자를 한 손으로, 두 손으로, 어깨에 걸치고, 가슴에 끌어안으며, 걷고 또 걸었다. 어른도 30분 걸리는 길은 그림 동화책 속 길처럼 구불거렸다. 리어카 바퀴 두 줄이 선명한 언덕길을 풀을 밟으며, 질레 꽃을 구경하며, 느릿 지나가는 지렁이를 피해, 오목조목 동글 둥글 표주박을 뒤집어 놓은 듯 한 넓은 공동묘지를 지나, 수십 년도 더 된 기괴한 복숭아나무 밭을 지나 걷고 걸었다. 야트막한 두 개의 언덕을 지나, 누가 사는지 모르는 세 개의 마을을 지나, 졸졸 흐르는 작은 개울을 지나, 빨갛게 사과가 익어가는 엄마 밭으로 갔다. 너울거리는 황토색 길을 따라 시원한 얼음물을 기다리는 엄마에게 갔다.
노란 주전자가 찬 땀을 송글송글 흘릴 때 뜨거운 땀을 흘리며 밭고랑을 매던 엄마는 날 보고 붉은 사과처럼 웃었다. "참 덥다. 비라도 쏟아지면 좀 시원하겠구먼!" 비 오듯 땀을 흘리던 엄마가 얼음물을 수건에 적시며 말했다. 엄마는 얼음같이 찬 수건으로 땀범벅이 된 내 빨아간 얼굴을 닦아주곤 자신의 얼굴과 목덜미를 훔쳤다. 칠성사이다라 쓰인 유리컵에 얼음물을 따라 내게 주곤 기다렸다 물을 마시며 "어휴~ 시원하다. 살 것 같네~. 무거웠지?" 했다. 엄마 목소리는 얼음이 갈라지듯 쨍했다. 사과밭 한 평 반 남짓 원두막에 올라 찬 밥에 얼음물을 말아 멸치볶음을 먹었다. 엄마랑 앉은 원두막은 넓었다. 맛소금이 얼기설기 엉겨 붙은 볶은 검정콩을 소리 나게 씹었다.
엄마는 밥을 먹곤 한숨 잤다. 달큼한 숨 내음을 내며 자는 엄마! 내 키 두배 높이의 원두막에 앉아 사과나무를,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를, 사과나무 꼭대기에 까치를 좇고자 쳐놓은 반짝이는 끈을, 하늘의 구름을, 파란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를 보고 또 봤다. 까치가 날아와 사과를 쪼아 먹는 소리를, 매미가 매~에, 쌔~하며 노래하는 소리를, 땡볕 바람에 사과 나뭇잎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벌과 나비들이 사과나무 아래 콩 이랑을 배회하는 소리를, 여치와 방아깨비가 이리저리 뛰는 소리를, 개구리가 개굴 거리며 팔짝 뛰는 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단잠을 깬 엄마는 사과나무 아래 심어놓은 콩 이랑을 맸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다 엄마 옆에 가 잡초를 뽑았다. 그늘진 콩나무 아래 풀들은 잘도 숨어있었다. 가늘고 길고 보드랍게 자란 풀은 어린 내 손아귀에 쑤욱 뽑혔다.
해가 서쪽으로 달려가니 엄마가 "저녁 할 시간이네. 넌 여기서 놀고 있어. 밥해서 가져오마." 했다. 엄마는 서리꾼을 쫒고자 원두막 잠을 자곤 했다. 해저녁 모기장을 내리고 촛불을 켜니 풀벌레 소리가 가득했다. 작은 촛불에 그림일기를 쓰다 잠이 들었다. 빛과 천둥소리에 잠을 깼다. "우르르 쾅쾅. 쏴와~." 비가 쏟아졌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촛불은 꺼졌고 칠흑 속에 번개가 쳤다. 촛불을 켤 겨를도 없이 하늘에서 빛이 쏟아졌다. 하늘을 반으로 가를듯 길고 기괴한 번개가... 하늘이 눈을 뜨려는지 실눈들이 사방으로 뻗쳤다. 하늘 위 높은 곳에서 시작한 빛들은 쌓이고 갈라지며 땅으로 내리 꽂히고 다시 하늘로 치솟았다. 서쪽 하늘과 남쪽 하늘이 서로 하늘 높이를 자랑하듯 번개를 뿜어냈고 그 사이 구름 얼굴이 보였다. 크레파스에서 볼 수 없던 빛깔이, 칠흑 같은 어둠 속 오색 빛깔이 섬광처럼 지나갔다. 얼마나 예뻤는지 입을 다물수 없었다. 번개가 지나가자 어둠 속 공기가 태산 같은 소리를 냈다. 큰 돌이 갈라지듯 "쩌~억, 쩍 우르릉 콰광~ 우르르르 콰꽝." 괴성을 냈다. 뜨거운 공기들이 사방으로 내달리며 빛에 응답하듯 소리를 냈다. 엄청난 비가, 쏴와~ 쏴와 하며 내렸다. 빗방울을 만나 흙 알갱이들이 원두막 주위를 부유했다. 흙내음이 일며 사과 냄새가 엄마의 사과밭에 가득 찼다.
비가 들이쳐 원두막 덮개를 내리고 성냥을 그어 촛불을 켰다. 8월의 소낙비였다.
보름달이 머리 위에 오도록 엄마는 오지 않았다. 더운 땅이 토해낸 땅 내음과 소낙비의 텁텁한 습기가 사과밭에 가득 찰 때 달빛과 함께 몽글거리던 작은 구름이 하늘을 날았다. 비가 멎은 엄마의 사과밭은 8월의 소리들로, 맹꽁이와 개구리, 풀벌레 우는 소리로 가득 찼다.
8월의 밤, 엄마의 사과밭은 10살 아이인 나를 꼭 안아주었다. 원두막에 앉아 번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천둥이 얼마나 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소낙비는 땅 내음을 어찌 내는지, 비 소리는 얼마나 시원한지, 나에게만 알려 주었다. 빨갛게 익어가던 사과는 8월 소낙비를 만나 얼마나 빤지르르하게 세수할 수 있는지, 사과 꼭지는 얼마나 나뭇가지를 꽉 잡을 수 있는지, 풀벌레는 어둠 속에서 얼마나 당당한지, 가지가 꺾이고 잎은 떨궜지만 사과나무는 얼마나 단단히 땅을 잡고 서 있는지 했다. 어떤 번쩍임도, 어떤 소리도, 어떤 내음도, 어떤 어둠도, 꼭대기 사과를 떨구지 못하듯 원두막에 까만 눈을 뜨고 앉아 있는 날 위협할 수 없음을 알았다. 여린 열무김치를 삼키듯, 칠흑 같은 어둠도 내가 삼키면 되는 것임을 엄마의 사과밭은 알려줬다.
보름달이 서쪽으로 향할 때 아버지와 엄마가 손전등을 들고 원두막에 오셨다. 엄마는 오는 내내 아버지께 면박을 받았는지 오자마자 "아이쿠 다행이다." 했다. 아버지는 "네가 없어 깜짝 놀랐다."며 "무서워 울지는 않았냐?" 했다. 세상 요란하게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로 퍼부었던 8월 소낙비에 10살 여자아이가 혼자 덩그러니 원두막서 온 밤을 보냈으니 오죽 무서웠을까 싶어 아버지는 간이 철렁 내려앉았다는 듯 말했다. 엄마와 아버지가 칠흑 같은 밤길을 비가 그치자 한달음에 오신 게 기뻤다. 나는 "안 무서웠어요. 무서울게 뭐 있어요. 번개도 예쁘고 천둥도 그냥 좋았어요." 했다. 아버지는 "세상 끝날 듯 천둥 번개가 쳤는데 안 무섭고 좋았어?" 하며 날 업었다. 따스한 아버지의 등에 업히며 "네, 무섭지 않았어요. 사과도 풀벌레들도 다 잘 있던데 뭐가 무서워요?" 했다. 아버지는 마른 가지 같은 나를 업으며 "넌 참 겁도 없구나. 두려움이 없냐? 네가 나보다 낫다. 나는 무섭던데." 했고, 엄마는 "넌 어디서 왔냐? 겁도 없고, 엄만 무섭더구먼." 하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날 아버진 내 기억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긴 길을 업어주었고, 엄마는 아버지 옆을 따라 걸으며 내 등을 계속 쓰다듬어 주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무엇이 두려웠고 무엇이 무서웠을까? 자식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자라 두려움이 되었을 게다.
누구나 자기만의 시간이 있고 누구든 자기만의 시간을 삼켜야 할 때가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소낙비가 오는 엄마의 사과밭에 홀로 있던 나는 그 시간을 잡아 삼켰다. 인생에서 그 어떤 이도 나를, 내 존재를, 나 스스로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할 수 없음을 말이다. 그날, 엄마의 사과밭에서 어둠을 먹고, 소리를 삼키며, 나는 어둠 속에 나 스스로 빛나는 존재임을 알았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나를 찾으러 오신 반가운 아버지도, 따스한 엄마도, 지금 내 옆에서 살포시 등을 말고 잠을 자는 남편도, 사랑스럽고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도 아닌, 있는 곳에서 주어진 시간을 선택하고, 어떤 선택도 주저하지 않는 나임을 말이다.
조치원의 그 많던 복숭아 밭은 길로, 건물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8월의 장맛비가 번개와 천둥이 새벽 5시 내 작은 정원에 가득 찼다. 엄마의 사과밭은 사라졌다. 엄마의 사과밭 원두막에 있던 10살 소녀는 다섯 배가 넘는 시간을 지나 집을 짓고 마당의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어둠을 삼키며 앉아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번개는 요란하고 천둥은 공간을 흔들지만 나는 늘 10살의 원두막 어둠 속 아이다. 이젠 90세를 향해가는 노모의 등을 쓰다듬는 딸이며, 따스한 숨을 내쉬며 자고 있는 남편의 아내이며, 두 얘들을 사랑하여 걱정의 맘을 알게 된 엄마이며, 젊은 학생과 배움을 함께하는 스승이며, 수십 년 지기 친구를 갖은 나이지만,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10살 원두막 칠흑 같은 어둠에 앉아 세상 소리를 듣던 나다. 원두막에 홀로 앉아있던 10살의 나는 이제 시간을 삼키며 이층 안방 침대에 칠흑 같은 나의 마당을 보며 앉아있다. 내 작은 정원 마당에 긴 시간을 돌아 도착한 번개와 천둥은 내게 말하고 있다. 더 짙은 어둠을 삼키고, 더 많은 시간을 삼키며, 더 많은 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당당히 나가며, 나답게 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