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원에 꽃을 심으니 좋다. 예뻐서 좋다. 비가 온 뒤 쑤욱 자란 모양새도 좋고, 해가 뜨면 반짝 고개 들고 활짝 웃는 쾌활함도 귀엽고, 해가지면 야무지게 꽃봉오리를 닫는 영민함도 좋다. 별빛 속에 무얼 그리 분주하게 일했던지. 자고 나면 새 봉오리가 생기니 참 바지런하다. 꽃을 심고, 꽃을 보며, 시간이, 생명이 지나감을 배운다.
꽃의 분주함이 좋다. 꽃을 찾는 벌과 나비의 부지런함도 종일토록 이 꽃 저 꽃 헤집고 다니며 꿀을 모으는 모습도 좋다. 쪼그려 앉아 꽃을 보면 벌의 날갯짓에, 어슬렁 거리는 산들바람에, 꽃대공은 살랑살랑 춤을 춘다. 꽃의 빛깔이, 꽃의 유혹이, 꽃의 생명력이, 꽃의 당당함이 좋다.
듬성듬성 심어놓은 꽃들이, 저마다 자기 공간에서 달리듯 자란다. 아침, 저녁, '언제 이리 자랐지?' 넋 놓고 꽃을 보는 게 마냥 좋다. 이른 봄 식물원에서 들여온 마가렛, 비올라, 송엽국이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넉넉히 자리를 주고 꼭 꼬~옥 눌러가며 심었다. 주먹만한 송엽국은 유독 하루가 다르다. 저마다 자리를 주었건만 송엽국은 하루하루 가파르게 성장했다. 마가렛이, 비올라가 송엽국의 기세에 눌려 위로 솟으며 간신히 버텼다. 송엽국은 밀고, 올라타며 다른 자리를 탐내니 꽃의 기세가 달라 꽃들의 삶과 죽음이 갈렸다.
처음 송엽국을 마당에 들였을 땐 잘 몰랐다. 그 성장세를. 작은 송엽국은 연보라 꽃을 피우며 다소곳했다. 한여름 몇 번의 비를 맞은 송엽국은 커다란 피자 한판 크기로 자라났다. 꽃봉오리를 가득 올린 송엽국은 뻔뻔하기까지 했다. 주변의 꽃잔디며 패랭이를 올라타곤 통통한 잎사귀로 그들의 몸통을 눌렀다. 모두 귀하게 정원에 들여 제각기 자리를 주었지만 꽃은 저마다 살길을 찾으며 자랐다. 정원사의 손길이 필요했지만 뭘 모르는 나는 보기만 했다. 송엽국! 왜 돌무더기 한 귀퉁이에 많이 심겼는지, 시골 도로 편 거친 땅에 활짝 피었는지, 그 연유를 몰랐던 나는 송엽국 관리에 실패했다.
짧은 3년의 가드닝에서 배운 것은 꽃도 자리다툼을 한다는 사실이다. 정원사가 관리를 게을리하면 꽃들도 서로 싸워 성장세가 큰 것이 작은 것의 영양을, 햇볕을, 바람을 막아 결국 작은 꽃을 삼켜버림을 배웠다. 정원의 주인인 내가 아침저녁으로 현명하게 들여다 보고, 너무 웃자라는 꽃의 가지를 치고, 자리가 협협하면 넓은 자리로 옮겨 심는 바지런함이 있어야만 저마다의 꽃은 자기 자리서 지나가는 바람을, 쏟아지는 햇볕을, 충분한 땅의 영양을 받아 자기답게 잘 자란다는 것을 배웠다.
최근 고인이 된 한 정치인의 이야기가 연일 뉴스다. 피해자냐? 피해 호소인이냐? 말이 헛되다. 쓸데없는 말들로 말을 지어내어 참 헛되다. 헛된 말들로 싸우고 감정이 상하니 이 또한 헛되다.
애도의 시간엔 애도를 해야 한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가볍지 않다. 죄지은 자의 죽음도 가볍지 않다. 인간이기에 실수하고, 사랑하고, 반성하고, 변화하고, 새롭게 살 수 있는 인간이기에 어떤 죽음도 당연시되거나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신이 사랑하는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인간이기에, 실수하고 욕망하는 인간이기에, 반성하고 변화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일 뿐이다. 참 안타깝고 아쉽다. 설혹 실수하였다 하여도, 욕망하였다 하여도 반성할 수 있는, 다시 잘 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함께 잘 풀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한 정치인의 죽음만큼 제대로 된 시스템의 미작동이 아쉽다.
남겨진 자들의 큰 숙제라 생각한다.
욕망을 다스리는 것은 어렵다. 부처가 그리 비구를 두려워한 것도, 프란체스코 성인이 여성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한 것도 모두 인간에게 끊기 어려운 욕망의 솟구침을 , 욕망에 사로잡히는 인간의 본능을 두려워했음이다. 이 오래되고 근원적 욕망을 일시에 제거하는 시스템,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정말 남겨진 우리의 숙제다.
몇 평 되지도 않는 마당의 정원 꽃들도 자리를 다투는데 천만시민의 행정을 하는 서울시야 어떠하겠는가? 꽃도 자리다툼을 하는데 하물며 인간이 개인의 욕망이던, 권력의 남용이던, 가지를 적당히 쳐주고 각자의 자리를 잘 잡도록 하는 시스템이 잘 작용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구나 욕망이 있고 어떤 개인도 일탈하지 않는 존재가 없을진대 꽃의 가지를 자르던, 자리를 옮기던, 꽃 같은 인간의 가든닝이 잘 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작은 마당의 꽃도 그럴진대...
송엽국 옆에 심겼던 비올라가 송엽국의 기세에 눌렸다면, 비올라 옆에 심겼던 사계 국화는 비올라에 눌렸다. 자리다툼은 상대적이다. 식물이나 인간이나 관계는 참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