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소주 마시다 부부 싸움(2)

남편의 세계 12: 오 주여! 황금률을 따라서

by 정루시아

막걸리 마시다(2008년 즈음) 행복에 대한 생각 다름을 발견하곤 우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주장을 펼쳤었다. 아래, 윗집은 뭔 싸움을 하나 했을 게다. 새벽 2시까지 다람쥐 쳇바퀴 같은 말을 쏟아내다 씩씩거리곤 침대에 누웠다. 몸이 닿지 않게 멀찌감치 떨어져 자자 했다. 남편은 황당함에 눕지 않고 침대에 걸터앉아 "당신 화났어? 그냥 생각이 좀 다른 걸 가지고~ 왜 그래?" 했고 난 돌아누워선 "여하간 오늘은 굿 나이트 허그는 없는 걸로." 했다. 남편과 나는 한동안 이불을 당기며 실랑이를 했다. 유치했다. 지금도 유치하지만 생각이 다르다고 화를 내며 콧김을 날렸으니 말이다. 하여간 그날 이후 우린 수년간 싸움과 논쟁의 언저리를 맴돌며 행복을 논했다.


그 후 한 사 년(2012년) 흘렀을까? 토요일 저녁 얘들과 동네 유명한 닭갈비집을 갔다. 조금 매운 음식이 들어가니 얘들이 단 음료수를 사달라 하여 소주도 한병 주문했다. 주말부부인 우린 술 마실 일이 좀 채로 없다. 남편은 술을 마시면 두통이 심해 자제했고 작은 아파트를 얻어 군산에서 혼자 살던 나는 주중에는 연구실서 수업과 논문 작업을 하며 밤 11시나 12시에 퇴근하니 술을 먹고 싶으면 혼자 와인 한잔 마시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래간만에 소주 한잔 하니 행복한 주말 저녁이었다.


아이들은 달달한 음료수에 닭갈비를 먹고 우린 소주 두어 잔 마셨을 때였다. 내가 사는 얘기를 하다 "우리 잘 살고 있는 거지?" 했다. 남편은 "행복하지. 아이들 잘 자라고, 우리 사이좋고, 행복 뭐 별거 있어?"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말을 받아 "그렇지? 누구 잣대로 이러면 행복하고 저러면 불행한 게 아니라니까?" 했다. 그 순간 남편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냥 쉽게 생각을 물릴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 "당신이 말하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지. 인간에도 급이 있듯이 행복에도 급이 있다니까?"


행복의 급을 떠나 인간의 급을 말할 때는 정말 머리가 핑 돌았다. "인간에 뭔 급이 있어? 사람이면 다 사람이지. 이상한 소리를 하네. 뭔 선민의식[選民意識]에 푹 쟁여진 소리를 하시나?"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던졌다. 남편은 소주를 비우더니 사람의 내적 품성도 7단계가 있다면서 어디서 읽은 것인지 들은 것인지 품성론을 들고 나왔다. 다 기억은 못하지만 "인간이 다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살인을 일삼은 인간, 마더 테레사처럼 평생 고귀한 선행을 하는 사람, 남의 것 빼앗음을 일상으로 하는 사람,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 성인처럼은 아니어도 남을 도우며 성실이 사는 사람 등. 그걸 다 같은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지. 다르다니까?" 했다.


나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과 살며 행하는 행동이 천차만별인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급이 있네 다르네 하는 그 생각은 동의할 수 없는데. 인간은 작은 것에 변화하는 사람, 큰 것에 변화하는 사람, 변하지 않는 사람, 변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그건 자신이 선택하여 산다는 사실만으로 다 같은 인간이야. 그걸 급으로 말할 수는 없지. 행복도 그렇고."라고 말했고 남편은 다시 나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부동의 [不同意]의 고갯짓을 했다. 아이들은 이미 닭갈비를 다 먹고 볶음밥을 맛나게 먹고 있었다. 우린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서로 한숨을 쉬며 다시 상대적 행복, 절대적 행복, 인간의 급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딸이 우리 얘길 듣다 "엄마 더 먹을 거야? 우린 다 먹었는데. 둘이 싸워? 행복 갖고? 배 불러 난 행복한데." 했다. 딸이 동생을 보며 "넌 어떠니?" 했고, 아들이 "응 나도 많이 먹었어. 좋아. 배불러 좋아." 했다. 내가 "그래? 배불러서 행복해?" 하니 아들은 "응, 맛있어서 행복해." 했다. 식당을 나서서도,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차를 한잔 마시면서도 논쟁은 계속됐다. 몇 년 동안 잊을만하면 행복 갖고 빙빙 도는 얘기를 했다.


생각의 다름이 어디서 연유하는지 궁금했다. 무엇이 이런 생각의 다름을 유도했는지. 늘 이런저런 사회문제와 아이들 교육문제를 갖고 견해를 나누다 보면 목에 걸린 가시같이 얘기가 겉돌다 따끔거렸다. 처음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싸웠다면 시간이 갈수록 다름은 알겠는데 왜 다른지 그 근원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그러나 그걸 어찌 단박에 알겠는가? 우린 서로 사랑한다 생각하며 그 사랑이란 감정을 자기 동일시로 착각하며 지내왔고, 각자 일을 하며 두 얘들과 함께 성장하는 평범한 부부니 말이다.


2016년 도울 김용옥의 중용, 인간의 맛(2011년, 통나무)을 읽기 전까지 늘 남편과 생각의 다름이 부딪히면 가시가 목안으로 들어가듯 불편했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으며 기뻤다. 내 손으로 가시를 뺄 수 있을듯하여 말이다.


나는 모태신앙 속에 자랐다. 주말이면 어린이 미사를 시작으로 여름, 겨울로 여름 성경학교, 크리스마스 행사 준비로 온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고 대학 때는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성경과 함께 해방신학과 성서 관련 책들을 주로 읽었다. 엄마는 가톨릭 신자였으나 큰집과 함께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서 큰엄마와 엄마는 제사와 차례를 일상의 일로 행했다. 유교 집안에 가톨릭이 자리를 튼 샘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가톨릭을 탐탁히 여기지 않았으나 엄마를 핍박하지 않았고, 늘 도리를 다하는 엄마를 고마워했다. 엄마 덕에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임종 전에 모두 세례를 받았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늘 예수님 말처럼 본인이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시부모님과 남편을 모셨지만 정작 그런 대접을 받고 사는지는 의문이다. 난 남아선호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유교문화 속에서 자랐지만 늘 의문이었다. 부모님께 예를 다하는 것은 알겠는데 왜 여성이 남성을 모셔야 하는지 말이다. 그 많던 제사와 차례상의 주축은 죽은 자와 남성들이 그 근간에 있음이, 큰엄마와 엄마의 상차림이, 숨어있는 여성의 노동이 달갑지 않았다. 유교문화가 싫었다. 며느리가 되니 더 싫었다.


엄마손을 잡고 주말에 성당에 가면 신부님은 강론에서 예수님은 누구나 다 똑같이 사랑하신다 했다. 신앞에 만민이 평등하고 누구나 신의 자녀라 했다. 시부모를 모시며 살던 엄마는 주일 미사 후 늘 표정이 밝아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님 말씀은 엄마의 유일한 위로이고 희망이고 삶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상의 거대 담론과 사상의 구체적 실천은 늘 이율배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린 나는 몰랐다. 그런데 내가 살아온 문화적 충돌 과정이 우리 교육, 삶의 방편에서도 뒤죽박죽 섞여 있었음을 어찌 알았겠는가?


몇 년 전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아마존의 힘없는 여인은 자신이 원치 않았으나 기독교인들의 황금률[golden rule]에 의해 삶이 변화했다. 자신들이 선택한 삶이 아닌 선택당한 삶을 살게 되는 그 모습이 난 싫었고 폭력적이라 생각했다. 이와는 반대로 남편은 그러한 방식이 인류의 진보, 발전이라 생각하며 질병과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하기에 상대적 행복을 말했었다.


철학적 바탕이 다른 것이었다. 내가 그리 싫어하던 유교문화였음에도 내가 채택한 사상은 공자[孔子]와 노자[老子] 사상이었다. 그들은 동양문화의 사상적 주류였고 나도 모르게 나의 내면에는 그들의 사상이 숨어 살고 있던 것이었고, 남편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아님에도 예수님 [Jesus Christ]의 황금률[golden rule:"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누가복음 6:31).]의 황금률 주장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유교문화의 집안에서 자라며 여성을 멸치국물처럼 유려 내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했던 나는 유교 창시자인 공자 사상의 바탕을 선호하고 있었고, 나와 성당에서 결혼하고자 2주 속성으로 교리 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았던 남편은 기독교 정신의 정수를 부여잡고 있었으니 사람의 생각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투적이고 극성맞은 나는 동양 사상을 선호하고, 늘 온화한 남편은 서양 사상을 선호했던 것이었으니 그걸 모르고 십수 년 넘게 그냥 한 이불을 덮고 우린 서로 비슷하다 생각한 게다.


공자[孔子]의 중용: 시저기이불원(施諸己而不願) , 역물시어인(亦勿施於人)

자기 자신에게 베풀어 보아서 원치 아니하는 것은 또한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는 뜻이다. 중용 인간의 맛, 도올 김용옥 p 197



예수님 말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누가복음 6:31==Whatever you sish that men would do to you, do so to them)



남편과 내가 살아온 시대는 온갖 종류의 종교, 사상, 철학, 문화가 마구 뒤엉켜 있어 우리가 무엇을 근간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우리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 보니 남편과 내가 서있는 지점을 알게 되었다.



노자[老子]를 주해한 왕필의 명언: "사랑하지 마라! 사랑을 하기만 하면 바드시 만들고, 세우고, 베풀고, 감화를 주고, 은혜가 있고 함이 있다. 만들고, 세우고, 베풀고 감화를 주면, 만물은 스스로 자기를 잘 가꾸어 나가는 데 오히려 그들의 참모습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 은혜가 있고 함이 있으면, 사물들이 치우치게 되어 공존의 미덕을 상실한다."


도올 김용옥: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것은 아가페적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지 아니 함"의 인류애이다. p199


내가 생각한 바를 노자[老子]는 이미 그 옛날 했던 것이다. 책을 읽고(2016년 여름) 남편과 차를 마시며 생각 차이의 근원을 말하니 남편이 재미있어했다. 남편은 "생각보다 생각 출발과 향하는 지점이 크게 다르군." 했다. 그래도 남편은 상대적 행복론을 굽히지 않았다. 남편은 "부모가 있는데 자식이 죽어간다고 생각해봐. 돈이 있고 병원이 있어 자식을 살릴 수 있다면 당신은 어찌하겠어? 당연히 살리고자 최선을 다하겠지. 그렇지만 돈도 없고 병원 자체가 없다면 당연히 사랑하는 아이를 손 한번 못쓰고 죽게 하겠지. 과학과 경제 발전으로 그러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니 당연히 앞으로 나아가야지. 손도 못쓰고 죽던 과거의 시대와 무엇이건 해볼 수 있는 지금의 시대, 이걸 비교하기 싫어도 우린 그렇게 나아가며 살고 있고, 어쩔 수 없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있는 것과 부족한 것을 비교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그 기저의 비교를 통해 행복이 놓이게 되고. 그런 의미로 상대적 행복이란 거야." 했다.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어떤 부모가 아이를 먼저 죽게 하고 싶겠는가?


나는 "개별 상황으로 전체를 말하는 게 옳은 것인지 해. 인류가 발전한다는 생각을 나는 거부해. 경제 발전이란 말속에 내재된 자본주의 야수성을, 그 포악성을 잘 알잖아. 가톨릭과 기독교가 세계에 저지른 수많은 폭력들을,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모든 일들을 생각하면 예수님은 철저히 이용당한 거지. 그들의 탐욕과 욕망에. 스페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떻게 라틴 아메리카를 탐욕했는지, 제국주의가 제3세계를 어떻게 찬탈했는지, 수탈을 위해, 자본증식을 위해 신의 이름을 널리 사용했잖아. 그들이 황금률을 이용해 톡톡히 사업수완을 부린 거지. 난 상대적 행복론이 황금률의 빵부스러기란 생각이 들더라고. 여하간 난 공자님, 노자님이 너무 좋네. 놀라워 그 시절에 그런 사상을 갖고 인간을 꿰뚫어 보았다는 것이." 했다. 남편은 "당신과 나의 생각 차이가 동서양 차이일 줄이야?" 하며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봤다.


BC 500년 사람(공자:BC551~479와 노자:미상[공자가 노자를 만났다 하니 동시대의 사람이라 추측됨])과 BC 4년 사람의 아들이라 자청했던 신의 아들(예수님: BC4~AD30)이 2016년 우리 부부의 행복론 싸움 해답으로 이름이 거론될 것이라 생각들 하셨을까?


예수님의 황금률과 공자의 사상이 우리 집 거실을 배회하다 지나갔다. 그분들이 거실을 배회하다 가셨다 하여 우리 일상이 달라지겠는가? 단지 우리의 다름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그것이 너무 행복할 뿐이었다. 행복이 무엇인지 서로 몇 년간 싸우다 생각의 다름, 그 근원을 알게 될 뿐이었다. 아직도 우리는 행복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 죽을 때까지 싸워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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