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세계 13: 신앙은 영혼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고3 아들이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집에 와 있던 올봄이었다. 아들이 고3이니 일주일만 집에 있겠거니 했다. 2주일 더 등교가 미루어지더니 등교 소식이 없을 때였다. 아들은 공부방(결혼할 누나 방을 공부방으로 바꾸었다.)을 정리하곤 하루 종일 인강을 들었다. 인강을 그냥 틀어놓은 것인지 들으며 공부하는 것인지는 신과 아들만 알 터였다. 점심때가 되면 함께 점심밥을 먹고, 저녁때가 되면 저녁밥을, 아침때가 되면 아침밥을 먹으며 지냈다. 모든 학교가 셧다운을 한 상태였고 하루가 다르게 감염자가 폭증했다.
아침마다 잠을 깨자마자 뉴스를 틀고 감염자 수, 사망자 수를 확인했다. 추운 봄날 아들은 모의고사 시험지를 군산 예술의 전당 앞 주차장에서 받아와 하루 종일 혼자 모의고사를 봤다. 저녁때 보니 아들 볼이 핼쑥해졌다. 이층 서재에서 동영상을 녹화하는 나나 공부방에 앉아 하루 종일 인강을 듣고 문제를 푸는 아들이나 답답하긴 똑같았지만 그래도 우린 위, 아래층으로 나뉜 주택 공간을 따로 같이 배회하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4월 중순 확진자수가 줄어들어 속으로 고3 아들 등교가 머지않겠구나 했다. TV에서 연일 대면 예배, 대면 미사, 대면 예불을 자제하고 온라인 모임을 권고하던 때였다. 몇 달째 였다. 아들 학교에선 소식이 없었고 대학은 4월 27일부터 부분적 대면 강의를 예고하고 있었다. 늘 주말이 문제였다. 일요일이 지나면 새로운 확진자가 교회를 중심으로 발견되니. 생각으론 모일 수 있겠지 했지만 맘속에선 열불이 났다. 아들은 인터넷 뉴스를 읽곤 "학교는 4월 말도 어려울 듯해요." 했다. 말로는 "아들이 집에 있어 엄마는 좋구나." 했지만 답답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듯 월요일이면 큰 교회, 작은 교회를 번갈아 가며 확진자가 나왔다. 할 말이 없었다. '아 멀어지겠구나 4월 말은' 했다. '이러다간 5월도 장담할 수가 없겠구나.' 하던 때였다. 답답함이 몰려왔다.
아침을 먹으며 답답함에 한마디 했다. "신을 믿는 것은 영혼을 믿는 것인데, 믿음은 철저히 나의 영혼과 신 사이의 문제인데 이런 시국에 꼭 그렇게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 했다. 남편은 "당신은 참~ 신앙생활을 한다는 게 영혼을 믿는거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 사람이 모여 관계를 맺는 거지." 했다.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아니 종교생활, 신앙생활의 기본은 영혼 문제 아닌가? 그리고 영적 문제는 사실 신부나 목사가 궁극적으로는 개입할 수 없는 영역 아닌가? 물론 아름다운 영혼을 만드는것은 구체적 행동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이런 시국에 꼭 예배를 모여서 봐야 되느냐 이 말이지. 한 이삼주 모이지 않는다고 신앙이 없어지고 깎아내려지냐고?" 했다. 남편은 "종교가 어떻게 영혼 문제야? 종교는 인간관계 문제지. 종교도 다 먹고사는 사회생활인데 그걸 하지 말라하면 그게 어떻게 굴러가겠어? 당신 참 순진해." 했다.
아침 먹다 목소리가 점점 올라갔다. 나는 "정말 당신은 신앙이, 믿음이 영혼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했다. 내가 "그러면 당신이 날 위해 기도한다고 내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 생각해? 신앙은 철저히 신과 개별 인간과의 관계고, 영혼 문제야. 내가 죽도록 당신을 위해, 내 자식을 위해 기도한다고 내가 그 영혼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없어. 영혼 문제는 개별 문제라니까? 영혼구원에 어느 누구도, 신 이외에는 끼어들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야?" 했다. 남편은 수저를 탕 식탁에 내려놓으며, "당신, 정말 종교가 신과 인간의 영혼 문제라 생각해? 종교는 영혼 문제가 아니야. 그냥 삶의 문제지. 어떻게 영혼 문제야. 다 잘 살아보겠다고 기도하며 서로가 돕고 사는 거지. 다 모여서 비즈니스 하며 신앙생활이라 하는 거지. 그걸 몰라서 당신이 영혼 문제래? 정말 답답하네. 답답해." 했다.
아들이 바싹 구워진 베이컨과 버터에 구운 빵을 먹으며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잼처럼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를 똑 터트려 먹다 갑자기 눈썹이 일자가 돼서는 한마디 했다. "아침 좀 조용히 먹으면 안 돼요? 왜 아침부터 싸우고 그러세요." 아들은 나직하지만 말에 한껏 힘을 실었다. 셋 중 답답함으로 치자면 아들만 한 사람은 없을 터였다. 조용히 부드러운 아침을 보내고 싶었으리라. 아침마다 확진자 수를 헤아리며 등교날이 다가오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던 시간이었다. 얼마나 답답한지는 정말 신(God)만이 알 때였다. 우린 둘 다 입을 다물었다. 아들이 조물조물 주스와 빵을 먹기에 내가 "미안하다 아들, 코로나 19로 본의 아니게~ 종교에 대한 생각 다름을 발견해서 말이다. 이런 건 꼭 집고 가잖니 엄마가. 여하간 미안. 조용히 하마. 맛나게 아침 먹어라." 했다. 아들은 밥을 먹고 방으로 들어갔고 우린 커피를 내려 거실에 앉아 봄 햇살을 보았다. 월요일 아침, 등교날이 멀리 도망가는 듯한 아침에 우린 진정한 종교란 무엇인지 서로 생각하며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우리 사회의, 우리 부부의 신앙과 종교의 민낯을 본 듯했다.
남편 말처럼 소규모 신앙공동체인 작은 교회가 모임을 행하지 않으면 공동체가 와해될지도 모른다. 어린 양 떼가 제각기 흩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영혼 문제, 함께 사는 주변 사람들 문제보다 자신들의 문제를 더 크게 보는지도, 혹은 기도의 힘으로, 신앙의 힘으로, 주님의 힘으로 바이러스와는 무관한 삶을 살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나와 남편이 바라보는 종교가, 믿음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 알았다. 남편이 말한 데로 종교의 사회성을 내가 너무 가볍게 본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수많은 사람이 감염되고 죽음으로 내몰려도 그들은 신앙의 힘으로 물리쳐질 것이라 생각하며 모이니 말이다. 서로를 만나 함께 예배를 드리는 그 행위를 통해 신앙을 확인하고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니 신(神)도 감탄할 일이다.
그 뒤로 아들이 없는 곳에서 우린 커피를 마시며, 산책을 하며 종교에 대한 큰 다름을 발견했다. 남편은 "당신은 종교생활이 신을 믿어서 하는 행위라 생각해? 사람들이 진짜 영혼을 구하고자 신앙생활을 하며 신을 믿는다고 생각해? 영혼에는 관심도 없는 경우가 허다해. 그걸 모르다니 당신은 정말 순진하단 말이야?" 했다. 나는 남편 말을 듣고 대답했다. "영혼을 빼면 앙꼬 없는 찐빵처럼 가짜지, 그게 무슨 신앙생활이야. 진정한 신앙은 신과 인간 개인의 문제고 그 핵심은 영혼 문제지. 구원이란 철저히 영혼 문제라는 데는 한치도 양보 할 수 없어. 그 모든 문제에서 영혼이 없다 하면 그건 심플하지, 무신론이지. 분명한 건 한 인간이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해도 사랑하는 이의 영혼을 책임질 수 없고 구원할 수 없다는 거야. 그래서 신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거야. 죄인이든 아니든, 진정 회개하면, 신이 영혼을 구원하니 말이지."
남편은 "당신은 영혼 얘기를 하지만 실제 종교인들이 얼마나 영혼 얘기를 하나 봐! 그들은 삶이야. 생활이고. 자신들의 삶을 함께 영위하는 거지. 절대 개별적 영혼 존재라 생각지 않아. 종교는 사회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어. 종교는 사회 속에서만 빛을 발휘하는데. 그걸 모르고 영혼 타령을 하니 답답하지.." 했다.
남편과 몇 달 이 문제로 논쟁을 벌였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분명한 다름만 남았다. 종교의 존재 이유로 남편은 공동체 생활로서의 의의, 사회적 역할로서의 종교를 최우선에 둔다는 사실이 명백했다. 이에 반해 나는 인간과 신의 관계, 인간 영혼과 신의 구원(궁극적으로 인간 영혼과 신의 선이 합일된 다는 측면)으로 종교를 바라본다는데 있다. 남편은 영혼이 있고 없고는 중요치 않고, 나는 영혼 구원 유무만 중요하니.. 종교에 대한 근복적 질문만 남았다.
이번 주 토요일 저녁, 보충수업을 한 아들(고3 아들은 한가위 전날 저녁 나와 한가위날 하루 쉬다 다시 학교로 들었갔다.)을 학교에서 데려와 고기를 구워 먹였다. 아들은 어두워진 정원 데크에서 고기를 마음껏 먹고는 방에 들어갔다. 야외 테이블을 정리하고 차를 마시며 남편에게 다시 물었다. "종교란 무엇인것 같아?" 하고 말이다. 남편은 "유대인의 하느님, 기독교인의 하느님, 이슬람의 하느님은 같은 하느님이 아니라 다 다른 하느님이야. 사람들이 구약이 같으니 그 하느님은 같다 하지만 달라. 뿌리가 같다 하지만 결국 실천이 다르면 신이 다르지 않겠어? 가톨릭의 삼위일체 하느님과 유대인의 하느님은 같을 수 없어." 했다. 나는 "한 아버지가 낳은 자식이 열명이라 치고, 자식 열명이 성격도 다르고 행동이 다르다 하여 씨를 뿌린 아비가 다르다 할 수는 없지. 같은 하느님이야. 그 세 종교의 하느님은. 물론 종교의 실천과 행동은 달라졌지." 했다. 남편은 사회적 행동과 실천이 다른 종교적 행태를 주로 말했고 나는 수많은 사회와 문명에서 궁극적으로 인간 영혼에 대한 질문과 구원을 묻는 행위가 종교가 아니겠는가 주장했다.
정원 데크에 작은 촛불을 밝히고 삼십 분 즈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내가 남편 눈을 보고 물었다. "당신은 영혼이 있다고 믿어? 선한 혼과 악한 혼이 있다는 걸 믿느냐 말이지?" 남편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다 남편은 담담하게 말했다. "영혼을 믿지 않는다면 그건 결국 무신론이지. 구구절절한 규약을 지키는가, 사람이 착한가, 선한가 등은 부착적 문제지."하고 잠시 뜸을 들인 후 남편은 "영혼을 믿지, 선한 영혼, 악한 영혼이라 할 때 악한 영혼의 핵심은 영혼을 믿지 않는 거야. 살인을 일삼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그런 행위만이 아니라, 어찌 보면 그런 악한 행위들은 사이코고 정신병이지, 영혼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 영혼을 믿지 않는 게 악한 게지, 신의 입장에 보면 회개 가능성을 말소시키니까 말이야." 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악한 혼을 정의하던 순간, 나는 촛불에 빛나던 남편 눈빛을 보았다. 그의 영혼이 밝게 타오르는 듯 보였다.
생강차를 마시며 이 시간이 참 좋다 느꼈다. 그는 생각 방향이 주로 사회로 향하고, 나는 생각 방향이 주로 나로 향함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좋다. 그와 내가 영혼 만큼은, 선한 영혼과 악한 영혼에 대하여서 만큼은 완벽히 동일한 입장을 갖게 되었다니 그 사실이 좋았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종교에 대해 싸우다 각자 영혼을 생각해 보았으니... 다름이란 언제나 예기치 않은 질문을 던져주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