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루시아 Oct 12. 2020

부부 생활  정량평가!

남편의 세계 14: 데이터 생성? 아니 아니, 데이터 질!



2017년 5월 무렵이었다. 정책보고서를 일곱 달에 걸쳐 작성한 후였다. 집필 책임자라 몇 달 일만 하니 남편은 부드럽던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마감시간이 정해진 일이니 인내심을 가져달라 했지만 주말까지 늦은 퇴근을 하니 남편 입이 뾰족해졌다. 사람이 어떻게 앵그리버드가 되는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집필 중이던 보고서는 한정된 페이지 내에 데이터를 최대한 요약정리해야 하니 도표가 많았다. 도표뿐인가? 한눈에 쉽게 볼 수 있는 창의적 도안이 필요했다. 퇴근 때마다 표들과 그림과 통계치가 난무하는 작업물을 집에 가져왔었다. 보고서 작업이 끝난 후 앵그리버드였던 남편은 얼마 후 해피 버드가 됐다.   


최종 요약본을 집에 가져왔을 때 남편은 책상에 앉아 12페이지를 찬찬이 살펴봤다. 가득한 데이터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 한마디 했다. "한 페이지에 이렇게 많은 데이터를 넣느라 고생했네. 여하간, 요즘 대학은 비교과 교육(전공교육을 제외한 학생 지원 활동들을 칭함) 현황도 평가 대상인가 봐? 엄청나네. 참여 학생도 많고! 우리 때는 그냥 몇몇 서클 활동하고 데모하는 게 전부였는데. 정말 다양하네." 했다.


내가 웃으며 "그럼 요즘 대학이 그 옛날 대학은 아니지. 전공교육은 기본이고, 심리상담, 정신상담, 학업부진학생을 위한 전문 코칭, 선후배 연결 멘티-멘토 프로그램, 취업연계 프로그램 등 다양하지, 그리고 교수도 다양한 평가기준으로 평가하고. 여하간 그런 게 있어. 크게 보면 정량평가와 정성평가 영역으로 평가를 하지. 대학에서 생산(학생, 교수, 직원)하는 수많은 데이터가 바로 정량평가 영역이라면 교육목표, 인재상 설정, 이를 위한 대학 중단기 목표 설정과 실행 의지, 이를 뒷받침할 조직 구성 등이 정성평가에 해당되지." 했다.


남편이 "나도 알지. 응급실 평가도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로 나뉘어하니까. 내가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대학 데이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서~. 이런 걸 당신이 어떻게 다 모았는지." 했다. 나는 웃으며 "그렇지? 데이터 정말 많지? 그걸 내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한 거지. 그들이 저녁 늦게까지 찾아서 준거지. 그러니 내가 어떻게 일찍 와. 물론 데이터 처리 방향과 구성은 내 머릿속에서 나와야 하지만. 함께 일하는 거니까. 함께 늦는 거지." 했다. 남편은 "이걸 직원들이 다 찾아내려면 힘들었을 텐데." 했다. 내가 "우리나라 공무원은 그냥 공무원이 아냐. 정말 일 잘해. "이런 데이터가 있지 않을까요?" 하고 물어보면 데이터를 제비가 박 씨 물고 오듯 정리하고, 분야별로 부족한 데이터가 있다 싶어 "이 분야는 이게 다일까요?" 하고 물어보면 밤을 새워서라도 찾아주더라고. 정말 놀랐어. 일도 잘하고 맘도 곱고." 했다.


남편은 웃으며 "당신이 좋은 사람들과 있는 거지. 뺀질거리는 사람들도 많아." 했다. 내가 "그럼, 나도 알지, 이런저런 이유로 다 안된다는 사람이 있다는 걸 나도 아는데 여하간 난 운이 좋아서 내가 궁금해하면 다 알려주고, 모아주고, 챙겨주고 하더라고." 했다. 남편은 "오죽하겠어? 당신이 한번 궁금하면 그냥 못 넘기니 빨리 알아봐 주는 게 낫겠다 했겠지." 했다.  


남편은 정량평가 데이터를 한참 쳐다봤다. 교양, 전공, 비교과 파트의 정량평가 내용과 학생지도, 교수-학습지원, 교육의 질 관리 추진목표와 현황 데이터를 쓰윽 관람하듯 넘겼다. "대학은 이렇게 보고서를 작성하여 평가하는구나." 했다.


남편은 정량 데이터 평가가 인상 깊은 모양이었다. 2017년 여름, 저녁을 먹으며 남편이 "당신 보고서를 보니 잘하겠다는 의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네. 의지보다 현재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그러니까 정량 데이터가 본질을 말해준다는 걸 알았네." 했다. 나는 남편 말을 받아 "그럼 잘하겠다고 말하는 거야 쉽지. 말로는 별도, 달도 따 줄 수 있지. 실제 행동이 어렵지." 했다. 남편은 눈을 빛내며 "그렇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당신 보고서를 보고 배웠다니까! 정량 데이터 생성의 중요성을 말이야. 그 데이터들을 보니 당신 대학 교수, 직원들이 어떻게 학생들과 활동하는지, 어떤 학생을 양성하고자 하는지 한눈에 알겠던데." 했다. "언제 그런 걸 세세하게 봤데. 놀라운걸.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니. 조금 뿌듯한걸." 했다.


그런 대화가 오간 뒤 한 달(2017년 늦여름)이 지났을까? 저녁에 차를 마시며 남편은 작심한 듯 말했다. "내가 요즘 찬찬히 생각해 봤는데, 우리 부부도 정량평가를 해야 되지 않겠어? 정량평가 데이터가 그렇게 중요한다니 말이야" 했다. 내가 "부부 정량평가? 그 데이터는 뭔데?" 하니 남편이 살포시 웃으며 "부부 정량평가 데이터가 뭐가 있겠어?" 했다. 내가 "핵심을 말하세요. 말 빙빙 돌리지 말고." 했다.  남편은 눈에 가득 웃음을 담고 다리를 꼬고 앉아 발을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부부만이 할 수 있는 사랑(性:sex)! 그게 핵심이지. 친구들과도 밥은 먹고 산책은 하잖아. 부부의 정량 데이터 핵심은 사랑이지. 그러니 교육 데이터 생성하듯 부부도 사랑 데이터를 정규적으로, 규칙적으로 생성해야 한다는 거지." 했다.

 

2016년 보직을 맞아 첫 보고서를 작성하고 나서 내가 남편에게 지나가듯 말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잘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정량적 데이터가 각 주제별로 탄탄하게 있어야 하겠어. 내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데이터를 생성하고 혹 누락된 데이터를 분야에 맞게 수집하는 게 중요하겠어." 하고 말이다. 그걸 일 년이 지난 2017년이 된 후, 남편은 내게 [부부 정량평가를 위한 데이터 산출]이란 방식으로 제안했다. 참 잘도 배운다. 내 남편은...

 

한해 만에(2016년 비교 2017년) 풍부해진 보고서 데이터를 보고 흡족해하던 내게 남편은 "수고했다." 면서 강한 한방을 날렸다. 그날 저녁 이후 남편은 한 달에 두어 번은 "부부 정량 데이터가 빈약하다는 둥, 데이터 산출이 어렵겠다는 둥, 정량평가와 성과관리 지표 달성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를 입에 달고 지냈다. 2019년 여름 두 언니와 형부들과 함께 크로아티아 자유여행을 가서도 남편은 형부들에게 '부부 정량평가'를 언급하며 형부들을 당황하게 했다. 형부들은 그때 "그래 자네는 데이터 생성을 잘하고 있나?" 했더니 남편은 "형님! 인생 뭐 있어요. 최선을 다해야죠. 정량평가 기준을 세우고 성과관리를 잘해보려고요. 제 목표는 죽기 직전까지 일주일에 (?) 번입니다." 했다. 형부랑 언니들이 배꼽 잡고 웃었다. 어찌나 강한 자신감과 책임감으로 뭉쳐진 선언이었는지. 형부들은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고 언니들은 "00 서방은 참 유머가 대단하네." 하며 웃었다.  


여하간 남편은 그 뒤로 잊을 만하면 정량평가 데이터를 운운했다. 남편은 지나가듯 "아~ 이렇게 빈약한 데이터를 생성해서 되겠나? 이번 달은 망했네. 이거 너무 느슨한 것 아냐?" 이랬다가, 저녁마다 푸샵을 하며 "체력을 길러야 돼. 목표 달성을 위해선 무엇보다 체력이 있어야지." 했다가, 피곤해하는 나를 보며 "이렇게 비협조적이면 정량평가 데이터를 어찌 생성하겠어?" 했다가, 자신이 일이 많아지면 "너무 바빠서 데이터를 어찌 생성하나?" 했다가, 저녁나절 정원에 물을 주는 나를 보고는 "성과관리를 위해 성과지표를 수정해야 하나?" 했다가, "지표를 그렇게 쉽게 수정하면 안 되지? 그렇겠지?" 했다가, "애당초 성과지표를 너무 높게 잡았나?" 했다. 데이터를 운운하는 순간 우리는 늘 빵 터졌다. 그냥 웃는 게 답이다.


최근 남편이 정량평가 데이터니, 성과지표 달성이니를 말할 때 내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여보, 데이터 생성 중요하지요. 그건 부정 안 해,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게 '데이터 질'이란 말이죠? 수준 높은 '데이터 질'을 확보하는 것, 일정량의 데이터가 모이면 그 데이터를 중심으로 정성평가를 할 수 있는데. 그런데 당신은 지금 3년이 흘렀는데도 데이터 생성에만 목숨을 거니. 참 답답해서. '질'을 담보해야죠? 왜 아직까지 데이터 생성에만 목을 매는지... 생각을 좀 전환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했다.


남편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나의 얘기를 듣고는 다리를 풀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편은 "데이터 생성이 아닌 '데이터 질'? '데이터 수준'이라고? 아~ 알았어, 알았어. '데이터 질'이라~" 했다. '남편은 이제 삼사 년은 '데이터 생성'이 아닌 '질적 평가'에 온 정신을 집중할 일만 남았겠구나.'싶다. 탁월한 응용력과 실천력을 겸비한 남편 덕에 웃는다.

작가의 이전글 아침 먹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부부 싸움(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