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책 읽기는

새해 나는, 읽는 사람

by Soopsum숲섬


우선, 천천히 다시 읽고 싶다.

한 권의 책 안에서 자주 앞으로 돌아가며, 읽었던 책들을 다시 들춰보며 느리게 읽고 싶다.

아래 문장을 보았다.



"이 책의 여기저기에 이름들의 목록이 나오는데 현대인에게는 매우 지루할 이러한 목록들이 옛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의 대상이었고, 많은 재미를 제공하던 부분이었다는 점이다.

여기 나오는 이야기들은 대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한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소개되면 당시 사람들은 거기 어떤 이름이 나올지를 예상하며 기대를 가지게 되고, 그것이 정말로 나올 때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희랍어 이름들은 대개 뜻이 있기 때문에 그 뜻을 새기며 읽거나 들으면, 그 즐거움은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 (우리 판소리에서 <춘향전>의 어사또의 남행길 소개라든지, <흥보가>에 나오는 '제비 노정기', 흥부의 자식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죽 열거하는 장면이나, 박에서 나온 옷감들의 목록, 보물이 나온 후 옷치장한 모습의 묘사 같은 것이 되겠다.)"

ㅡ《그리스 신화》 아폴로도로스, 강대진 옮김. 민음사 (2005)



이제야 성경과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름들의 존재 이유를 진심으로 깨달았다. 성경이나 신화가 일종의 역사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새삼스럽게 그 이야기를 지어내고 그 시간을 살아내며 이야기를 전해왔을 당사자들의 삶이 훅, 생생하게 다가온 것이다. 그리하여 책 속의 어떤 문장도 허투루 흘려보낼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세상은 세부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창조하려는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지 세심하게 고민해야 한다."라고 했다. 올해 읽은 글쓰기 책에서 작가들이 어떤 자세와 태도로 자신만의 '진정한 장소'를 구축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년엔 천천히 그 장소를 찾아 오래 머물고 뭉기적거리며 살아보고 싶다. 최소한 책을 읽는 동안이라도.


그리고, 좋은 문장을 수집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읽은 문장들이 서로 연결되고 그렇게 이어진 문장들이 세계를 확장하고 질문의 답을 찾게 해 준다. 그 과정 자체의 즐거움도 크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나만의 문장과 답이 생겨난다. 새해는 꾸준히 읽고 질문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모아둔 목록 중에서 2023년에 꼭 읽고 싶은 목록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 로마 신화》

《오이디푸스 왕》소포클레스, 강대진. 민음사 (2009)

《닥터 지바고》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박형규. 열린책들 (1990)

《세월》 아니 에르노, 신유진. 1984북스 (2021)

《올란도》 버지니아 울프, 이미애. 열린책들 (2020)

《G.H.에 따른 수난》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배수아. 봄날의책 (2020)


혹시라도 같이 읽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같이 읽기를 시도해도 기쁘겠다. 지루하고 힘든 여정이 될 게 분명하니까. 1년 안에 읽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평소 읽고 싶었던 책들이고, 심지어 십 년이 넘게 가지고만 있었던 책도 있다. 이렇게 목록으로 만들어 공개하면 어쩐지 힘들어도 그냥 덮지 않고 열심히 읽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가능하다면 여러 나라의 다양한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 처음 시도하는 세계 여행처럼.



최근 약간 불성실해진 줄넘기를 다시 숨차도록 매일 해야겠다는 게 새해 다짐이다.

건강하고, 편안하고, 감사를 잊지 않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3일 남은 하루하루도 새해만큼이나 소중하게 느껴지니 다행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