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의 날벼락
제목에서 스포한대로,
이 이야기는 암에 걸린 내 이야기다.
도대체 왜?
그냥 다 짜증나고 억울하고 화도나고...
현실을 회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는 없고
그저 암카페 등에서 나와 비슷한 상황인 분들의 글을 보며 조금의 위안을 삼고 있기에...
내 글도 누군가에게 아주 살짝이라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길 바라보며...
끄적여보기로 했다.
“나, 아파. 암이야.”
다음 질문은 으레 “무슨 암?” 이기 마련.
그렇다면 부위를 설명할 차례.
가슴, 요즘은 유방이란 단어로 더 많이 부르고 있는
내 신체기관이 바로 그 대답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여자라면 겪어봤을 검진세트
가슴 찌부 X-ray 촬영& 끈적하고 차가운 초음파 검진.
내 원래 가슴은 이 두 가지를 해본 분이라면 알만한 단어들로 이뤄져있다.
치밀유방에 섬유선종이 많은 타입.
쉽게 말하면 가슴 조직이 탄탄하고 무해한 혹이 많다는 것.
수년 전에 약간 의심되는 혹이 있어
조직검사도 했지만 착한 혹으로 판명나 그저 해프닝으로 넘어갔다.
이후 검진 때도 별 이상없이 그저 귀찮은 숙제이기만.
자연산 75D컵인 만큼 '부피가 있으니 혹이 많을 수 있지. 이 정도 번거로움이야 뭐~!'
생각하며 걱정으로 생각하진 않고 지내고 있었다.
그렇게 넷플릭스와 함께 딩구르르 하던 평범한 어느 날,
왼쪽 윗가슴에 유난히 뾰족한 혹이 만져졌다.
워낙 혹이 많은 나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말 법 했는데 그 날은 왠지 검진 받을 때도 지났고 하니
오랜만에 가보자 싶더라.
며칠 후 꽤 오랜 시간 다니던 (하지만 매우 띄엄띄엄)
동네 유방외과에 초음파 검진을 예약했다.
귀찮지만 나에게 내려진 숙제니 출석 도장 찍자는 마음으로 도착한 유방외과.
몇 년 전 갑상선 저하증도 있었던 터라
원장님은 요즘은 잘 자냐, 스트레스 없냐, 피곤하지 않냐, 운동은 하냐 여쭤보셨고
뭐 잠은 어지간히 자지만 스트레스와 피곤은 그냥 이 생에 함께 하는 동반자와도 같다고..
하지만 운동은 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내 모든 대답 중 이 한 마디에는 눈이 초롱초롱 해지며 반가움을 나타내던 원장님.
운동은 뭐 하냐, 얼마나 했냐의 물음에 한 달도 안 됐고 헬스 PT를 끊었어요가 내 대답이었다.
원장님은 허허허 난 또 오래 하고 있다고~
하지만 운동을 시작한 건 참 잘했다며 칭찬해주셨다.
문진이 끝나고 초음파실로 이동.
언제나처럼 동글납작한 익숙한 녀석들의 크기를 연신 적던 원장님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건... 모양이 안 좋은데 조직검사를 해봐야겠는데...
비슷한 상황이 몇 년 전에도 있었고, 그 때 역시 섬유선종이란 착한 혹으로 판명이 났던 터라
그냥 또 귀찮은 걸 한 번 더 해야하는구나... 생각만 하던 나였다.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주 많이 귀찮은 조직검사가 끝나고
(가슴에 마취 주사를 놓고 굵은 드릴형 주사바늘로 가슴 속 조직을 채취하는 방식)
이번엔 원장님의 표정이 좀 더 많이 어두워지셨다. 암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 때까지도 난 그리 운이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걱정하다가 또 착한 혹으로 판명이 나겠지라고 생각하며
가슴에 칭칭 감아놓은 붕대에 답답하네, 가슴에 구멍이 났네~ 투덜대며 나왔다.
검사 결과는 당시 다음주 초에 나온다고 했다.
월요일이나 화요일이겠지? 생각하고 월요일 내내 기다렸는데 (본능적으로 결과가 아주 궁금했나보다.)
연락이 없어 화요일에는 병원에 전화를 했다.
내일 돼야 나올 것 같단다.
또 다시 기다림.
다음 날, 점심 메뉴인 제육볶음이 다 되기를 기다리던 중 전화가 걸려왔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단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암'이란다.
암선고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느꼈을 거다. 단 한 글자가 이토록 무거울 수 있음을.
하늘이 무너졌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걸까?
초가을의 맑은 하늘이 양 어깨를 꾸욱 눌렀던 게 분명하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