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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오 Oct 01. 2022

그랬으면 어땠을까?

2021년 9월

추석이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서학동에 갔다. 늘소담에서 전통과자를 사고 미연이네 가게에 인사를 하고 집에 갈 생각이었다. 모든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다. 때문에, 한옥마을과 풍남문, 전라감영길을 지나 스몰해빛small habit 카페로 걸어갔다. 걷는 길에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는데, 특히 대학시절에 대한 것들이었다. 


전북대에 4년 간의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입학했지만 학점관리를 못 해 자격을 잃었을 때 아빠의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 생각이 떠오른 건, 자격을 잃고 학자금대출을 받기 위해 당시 도청길에 있는 전북은행에 아빠와 같이 갔었던 기억 때문이다. 그 은행이 있던 자리를 지나쳤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나 한심한 존재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그 사실을 되돌릴 수 없다.


대학을 서울로 갔으면 어땠을까? 군대를 일찍 갔으면 어땠을까? 기타를 튕기면서 나도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대학원을 그냥 다녔으면? 그냥 평범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살았으면? 적당히 교회를 다니고, 적당히 취직을 하고, 적당히 결혼을 하고, 적당한 대출을 받아 적당한 집에서 아이들을 낳고 살고 있다면 어떨까?


복음주의적 기독교 신앙서적을 좋아하며 적당히 착하게 살며,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집사님이 되었다면? 그런 여러가지 생각들을 했다. 그렇다면 지금쯤 회사를 어떻게 뛰쳐나가 새로운 일을 할지 고민하는 ‘책임연구원’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이미 스타트업 붐에 휩쓸려 한차례 방황한 이후일까? 그러다 모아둔 돈으로, 카페를 차리고 있을까? 


여전히 교회를 다니며 주님이 주신 사명을 고민하는 사람일까? 그러다 새로 가게를 차린 동생네에 가서 식사를 나누며 함께 기도를 하기도 하고, 차를 마시다 “주님을 위한 사명감이 없이 가게를 하면 망할 수 밖에 없다.”는 류의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람이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걷는 중에 했다.


스몰해빛의 은행나무가 보이는 창가
전라감영길에 있는 과거의 전주를 표현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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