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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오 Oct 05. 2022

대학생과 베이스 연주자

2018년 11월 수업일지

동네 빵집에서 빵 두 조각을 사서 먹고 아침 10시에 합정역 8번 출구 근처에서 새로운 학생을 만났다.


목소리가 너무 앳된 대학생이다.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서 고등학교 때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전공 미술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다고 한다. 여전히 미술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있어서 그걸 영상디자인으로 풀어내고 싶어서 배운다고 한다. 


이렇게 단순 취미가 아닌 학생들은 좀더 부담이 된다. 하지만, 수업을 더 재미있게 끌고 갈 수 있어서 신난다. 유튜브를 같이 보다가 아이유의 '삐삐' 뮤직비디오를 재생하려는데 갑자기 귀를 막는다. 그 노래를 누구나 듣기 때문에 자기는 그 노래를 듣지 않고 싶어서 일부러 안 듣고 있단다. 귀여운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 끝났다. 다행히 수업이 맘에 들었나 보다. 안도의 한 숨이 나온다. 수업을 마치고 어디를 가냐니까 '요괴그리기' 원데이 워크숍에 간단다. 귀여운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귀여운 것들을 한 곳에 모으라고 한다면 이런 친구들을 꼭 불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거르고, 이어지는 수업을 위해 영등포구청역에 갔다. 중년의 베이스기타 연주자. 처음 만날 때 부터 상냥했던 분이셨다. 오늘도 역시 상냥하게 나를 맞아 주셨다. 오늘은 그의 음악 작업실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지하 스튜디오는 퀘퀘했다. 담배 냄새로 쩔어 있었다. 낡은 악기와 장비들의 먼지로 가득했다. 거기서 뭔가 우울함이 느껴졌지만, 나를 상냥하게 대해주시는 덕분에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었다. 


예술가를 꿈꾸든,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든 누구나 보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5년째 월세가 오르지 않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그 스튜디오를 보면서 느꼈다. 모든 것은 보통의 삶으로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도 보통 사람이고. 그 우울한 지하에서 계단을 걸어 나와 횡단보도에서 작별인사를 하며 무언의 응원을 주고 받은 것 같다. 마지막 인사 역시 상냥했다. 


수업을 마치고 홍대앞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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