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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오 Oct 07. 2022

나는 남에게 어떤 존재일까?

나의 일은 누군가의 평온하고 안전한 삶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지 생각해본다. 그런 조용한 열정에 삶을 투여하는 이들은 말이 적다. 매체는 자신의 가치를 꺼내 보이고, 불로소득을 위한 자본과 시스템을 가지라 한다.


“뱅뱅이론”이라는 개똥철학이 있다. 자신의 바지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뱅뱅을 입지 않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뱅뱅을 입는 사람들은 조용하다는 그런 원리다. 뱅뱅이 망하지 않는 이유가 그렇다는 그런 말이다.


SNS를 보면 세상은 진보하고 사람들은 공동의 선을 쫓는 것 같지만 정작 자신의 재산과 부동산의 가치만이 중요한 사람들은 조용히 한 표를 행사한다, 뭐 그런 류의 말이다. 창업가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은 유난을 떨며 세상에 임팩트를 주려고 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동네 백반집이 일으켜주는 것 같은 그런 거 말이다.


농사를 짓든 연구를 하든, 컴퓨터 앞에 앉아 사무를 보든 가게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든 모두 하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프로젝트는 무언가를 구상하고 준비하고 실행에 옮겨 그것이 프로젝션 되도록 하는 것이다. 나의 프로젝트는 누군가의 삶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생각해본다. 어떤 영화를 머리 또는 머릿 속에 그려낼지 생각해본다


반드시 어디에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한다는 그런 반드시는 없다. 반듯이 하는 게 더 필요하다. 하천에 모인 무리의 새들은 뭔가 나름의 규칙에 의해 다함께 가만히 머무르고 있다. 저들이 보는 인간은 어떤 공동의 규칙을 따르는 동물일까?



한국에서는 새의 집을 '둥지'라는 예쁜 말로 표현한다. 그리고 한국사람들은 가족들의 집을 둥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0월의 어떤 날 하루 동안 많은 사람들과 스쳤다. 강아지와 걷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손녀로 보이는 아기와 걷는 할머니를 보았다. 판박이 처럼 닮은 엄마와 걷는 세 아이들을 보았다. 할머니인 엄마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 아줌마를 보았다. 몸이 굳어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는 아들과 국밥을 먹으러 온 아빠를 보았다. 똑바로 걷지 못하는 딸과 등교하는 엄마 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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