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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오 Sep 21. 2022

노인과 젊은이

수업일지-2018

하나,


개인이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몇몇 분께 레슨을 하며 지내고 있다. 이것이 요즘 나의 생계유지 방법이고, 얼굴을 맞대고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레슨을 받는 분의 소개로 어머니 벌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친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어머님께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레슨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아침에 만난다.


지난 한 주 수업을 미뤘는데 이유는 바깥양반께서 갑자기 아프셔서 병원에 가셔야 한다고 해서다. 수업 직전에 일정을 변경하는 것은 결석처리로 하기로 했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계산은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다 먹고 살자고 컴퓨터도 배우고 영상도 배우는 거 아닌가, 살아야지 않겠는가 싶었다.


오늘 아침에도 갑자기 문자가 왔다. 이번엔 배우시는 분 본인에 대한 얘기였다.


-갑자기 허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하네요. 그래서 오늘 수강은 결석처리 해주세요.

-아니에여, 미뤄드릴게요. 제가 계신 곳으로 가서 해도 되구요.

-고맙습니다. 병원부터 가야 될 것 같아요.


작은 회사를 운영하시는 사장님 부부이신데, 이제 와서 굳이 왜 컴퓨터를 배우시냐고 물었었다. 어차피 실무는 직원들이 하는 것 아닐까 하고. 젊은 직원들이 친절하게 컴퓨터를 가르쳐주지 않는단다.



둘,


어떤 학생은 서울의 유명 대학의 졸업반인데, 졸업작품으로 단편영화를 만든다. 학교의 이름값 때문에 웬만한 수준의 작품으로는 졸업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럼 학교에서 졸업작품을 위해 어떤 지원을 해주냐 물었다. 학생들 스스로의 자비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한다. 본인은 몇 백만원 정도를 투자하고 있단다. 그 중 일부가 나에게 레슨을 받는 비용이기도 하다. 다른 친구들은 몇 천만원씩도 쓴다고 한다. 졸업작품을 통과를 결정하는 지도교수들이 그러한 수준을 요구하다 보니 본인들이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학생들은 개인인데, 영화판에서 영화를 만드는 방식을 흉내낸 작품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 같았다. 공식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결국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유지되는 것은 학교의 네임벨류이다. 돈은 학생들이 쓰고, 교수들은 베테랑인척 쓴소리나 한두번씩 하면 된다. 쉽다. 학생들은 그 구조가 더럽다는 것을 알지만, 당장 졸업장을 받기 위해 그냥 참고 만다.


학생들이 거액의 학비와 교육비용을 감수하면서 졸업장을 타려는 것 역시,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때문이다. 교수들이 깐깐하게 구는 것은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해줘야 학교가 좋아하니까. 지금은 이 시스템에서 착취당하는 젊은이들도 그 시간을 견디고 나면 쉽게 다음 세대를 착취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돈이 없지만 육체적 힘이 있고, 노인이 되면 힘이 없지만 돈이 있다. 노인은 돈이 있지만 결국 가난해진다. 노인이 가난의 시작을 늦추는 수단으로 자신의 돈을 사용한다. 하지만 결국은 가난해질 것이다. 가난해진 노인들을 돌볼 사람은 젊은이들이지만, 노인들이 만든 불합리한 세상에서 착취를 당한 젊은이들은 그런 돌봄에 관심을 가질 수 없다.



나도 언젠가 노인이 될 것이다.  




2018년 여름에 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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