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엄마의 떡볶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유독 나에게 엄했다. 맏이라서 그랬다기엔 혼내는 정도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심했다. 오죽하면 나의 초등학교 일기장의 8할은 엄마에게 혼나서, 엄마를 실망시켜서 속상하다는 내용이다. 그 작은 아이가 엄마를 실망시켰으면 얼마나 시켰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엄마에게 혼났던 날이면 엄마 몰래 울면서 엄마를 실망시켜서 속상하다는 내용을 일기에 썼다.
한 번은 엄마가 나와 동생을 엄청 재치있게(?) 혼낸 적이 있었다. 동생과 내가 엄마에게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엄청나게 졸랐던 모양이다. 엄마는 순순히 알았다고 했고 나와 동생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엄마를 기다렸다. 그때 그 떡볶이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뇌리에 박힐 줄은 꿈에도 모르고.
엄마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사온 떡볶이를 식탁에 올려놨다. 그 떡볶이를 보고 동생과 나는 묵직하게 식탁에 올라온 떡볶이의 양에 깜짝 놀랐다. 엄마는 이게 만 원 어치라면서 이걸 오늘 다 먹어야 한다며 남기면 두 번 다시 떡볶이를 안 사주겠다고 말했다. 요즘은 떡볶이가 이만원도 우습게 넘어가지만 그때만 해도 컵떡볶이가 5백원 하던 시절이다. 만원 어치면 조그만 아이 둘이 먹기에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나와 동생은 꾸역꾸역 떡볶이를 먹었다. 당연히 다 먹지 못했고 이후 얼마 간은 엄마에게 떡볶이를 사 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그때 떡볶이를 원없이 먹어서 그런지 지금도 그렇게 떡볶이를 찾는 편은 아니다.
내 머리가 커지면서 엄마가 이런 깜찍한 재치를 발휘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엄마의 강한 모습은 점점 희미해졌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나에게 강하게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이가 들어도 엄마는 나에게 역정을 내기도 하고, 현명한 해결책을 주기도 했으며, 어떤 위기도 거뜬히 이겨내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엄마는 암 투병 중에도 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항암치료 약물 때문에 혼자 힘으로는 코앞의 화장실도 못 갔던 엄마는 그런 자신의 약한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 뜬금없이 나에게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기저귀를 차야 하고, 아빠에게 화장실 뒷처리를 온전히 밭겨야 하는 것도 나에게는 절대로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한참 항암치료로 먹을 것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면서도 내가 집에 오는 날에는 그 어떤 날보다 잘 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랬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한다. 아무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엄마의 모습. 벌어진 입술은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말라 있고,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금방이라도 '툭' 건드리면 '아이고, 벌써 이만큼 잤냐'라면서 벌떡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며 빨리 집에 가자고 이 병실을 걸어 나갈 것만 같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던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안쓰러운 사람으로, 세상에서 가장 보고싶은 사람으로 남았다. 그때의 떡볶이를 엄마도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