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엄마의 명절 음식
이번 추석에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가 있을 때와는 다르게 식탁은 휑했다. 추석 전날 항상 났던 기름 냄새도, 구수하면서 비릿한 생선국 냄새도, 갓 지은 밥 냄새도 없었다.
우리 집안은 설날엔 엄마가, 추석엔 엄마를 포함한 다른 집안의 며느리들이 돌아가면서 명절음식을 준비했다. 엄마는 설 음식을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설 연휴 전날이면 항상 아팠다. 추석도 준비해야 하는 해에는 그 아픔이 두배였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마치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대학생처럼 잠을 못 이루면서 명절 음식을 준비했다.
우리 집에서는 명절 음식으로 새우전, 동그랑땡, 동태전, 소고기 산적과 돼지고기 산적, 삼색나물, 옥돔구이나 조기구이를 준비했다. 갈비찜, 잡채 등 복잡한 음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언뜻 보면 간단히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저 몇 가지 부치기만 하면 되는 음식들이지만 하고 나면 삭신이 쑤시고 기름 냄새에 질리는 것. 명절 음식을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밥과 국은 제일 마지막에 준비했다. 우리 집에서는 옥돔을 넣어 끓인 생선 미역국을 준비한다. 미역과 옥돔 등을 넣고 국물이 뽀얗게 날 때까지 끓이는 것이다. 엄마는 수시로 주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국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봤고, 나에게 여러 번 맛보라고 시키기도 했다. 나는 "괜찮다", "걱정하지 마라"라고 해도 엄마는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 냄비를 뜬 눈으로 지켰다.
무심한 것인지, 잔인한 것인지, 집안 사람들은 엄마가 암 투병 중일 때도 명절 음식을 준비하라고 했다. 항암치료 때문에 자신의 입에 음식을 넣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 입에 들어갈 음식을 만들었다. 그것이 엄마의, 나의, 우리 가족의 마지막 명절 음식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처음 맞았던 설날에, 친척들은 사전에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앞으로 명절에 음식을 하지 말고 각자 조용히 보내자는 의견을 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진작에 이렇게 할 수 있었으면서 이제야. 정말 누가 죽어야 변하는 구나. 그렇게 엄마를 괴롭게 했던 명절 음식이 죽어서야 끝났구나. 내가 지금 고통받고 있는 것도,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내가 죽기만 하면 끝나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 추석에 우리 가족 중 누구 하나 "명절 음식을 안 먹으니 섭섭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의 빈자리를 애써 피하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고, 마지막까지 명절음식으로 괴로워했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 떄문일 수도 있겠다. 나도 명절 음식이 그립지 않다. 엄마가 해준 음식 중 유일하게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