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엄마의 집밥
허겁지겁 점심을 먹다 회의감이 들었다. 제가 먹는 것들이 다 상표가 달린 음식들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윌 하나과 상품으로 파는 클렌즈주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빵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점심에는 간단하게 닭가슴살 스테이크와 고구마. 고구마도 이미 익혀져서 나온 상품이다. 가끔은 나의 입맛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평균적인 입맛을 위해 만들어진 바깥 음식을 먹는다. 이렇게 하루를 나 또는 내 가족이 만든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을 입에 쑤셔 넣으며 위를 채운다. 먹는다가 아니라 '채운다'에 가깝다.
집밥이 먹고 싶었다. 음식점 후기를 이것저것 찾아보며 '집에서 먹는 맛이다'라는 문구가 있는 곳을 찾아봤다. 하지만 그 모습 뒤에 자괴감이 드리우고 있었다. 집밥은 집에서 찾아야지. 지도 앱을 껐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것과 비슷하게 흉내 낸 것으로라도 대리만족해야 하는 상황이 슬펐다.
입속에서만 맴도는 '집밥'이라는 단어를 힘겹게 뱉어본다. 그리고 밥상을 상상해 본다. 먼저 밥은 무조건 잡곡밥. 아빠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여기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배춧국, 매콤 달달하게 무쳐진 오징어채볶음, 고소하고 짭짤한 멸치볶음도 빠져서는 안 된다. 여기에 잘 구워진 생선 한 마리가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밥상. 그 밥상 앞에는 내가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엄마가 있다. 이것도 먹어 봐, 저것도 먹어 봐 하면서 보채고 자신의 이야기를 신나게 주절주절하던 엄마가 있다.
물론 위에서 내가 말했던 음식 모두 돈으로 살 수 있다. 요즘 반찬가게들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 하지만 우리 집 냉장고가 아닌 진열대에서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오징어채, 엄마의 손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길이 닿은 오징어채를 보면 위화감이 든다. 내가 아는 오징어채는 이렇게 예쁘지 않은데. 락앤락에 터질 듯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 이런 모양과 향, 맛이 아닌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은 고모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해주셨다. 고모의 배려 덕분에 혼자 있는 아빠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고모에게는 너무 감사했지만 반찬에서 엄마의 것이 아닌 향과 손길이 느껴져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엉성하게라도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요즘 유튜브에 영상도 많겠다 조회수가 높은 영상을 보고 따라 하기도 했다. 아빠와 동생도 맛있다고 했지만 나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가 해줬던 맛은 아니잖아.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서툴게 만든 음식도 잘 먹어주는 아빠와 동생을 보자 그 말이 쏙 들어갔다.
엄마와 함께 집밥도 사라졌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언제가 제일 서럽냐고 묻는다면 백화점이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녀를 봤을 때, 그리고 집밥이 그리울 때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을 봤을 때다. 점점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엄마의 집밥을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붙잡야 한다고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