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80대가 기다려지는 이유

선우용여 <몰라 몰라, 그냥 살아>

by 정물

아침에 호텔 조식을 먹으러 벤츠를 모는 80대 할머니. 적고 나니 '할머니'라는 단어가 참 이상하게 느껴진다. 숫자만 보면 '할머니'라는 칭호가 맞는데 이 분에게는 너무 어색하다. 80대라고는 믿기지 않는 팽팽하고 맑은 피부와 걸음걸이, 아웃백에서 기름진 스테이크에 감자를 두 개씩이나 먹을 정도로 튼튼한 위장, 잔잔하게 그녀 주위를 맴도는 좋은 사람들까지. 그녀를 보면 외로운 독거 노인이라기 보다 싱그러운 청춘 같다.


'제가 살다 살다 80대 할머니가 동기부여가 될 줄은 몰랐어요'. 언젠가 그녀의 유튜브에서 봤던 댓글에 엄청 공감했던 적이 있었다. 그녀에게서는 어떤 청춘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그걸 보면서 구독자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앞으로 남은 삶에 대한 용기를 얻는다. 나 또한 그녀의 유튜브를 보면서 '저렇게 늙고 싶다'라며 늙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저렇게 나이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삶을 동경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그녀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80대의 나이에 유튜브를 하는 것은 박수를 쳐 드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보여주기용 콘텐츠겠지 싶었다. 내가 삐뚤어져서 그런지, 그녀가 집에서 소소하게 하루를 보내고 부시시한 머리로 일어난 모습을 보여줘도 콘텐츠를 위한 가식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또 혼자서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그녀가 돈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닌가, 일반 사람들한데도 자기처럼 살라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반항심도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그녀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달라졌다. 데뷔와 결혼, 미국행, 뇌경색 등 인생에서 여러 고개를 넘으면서 쌓아 온 지혜가 책에 다 녹아 있었다. 그녀가 인생에서 위기를 맞고 이를 극복할 때마다 '이건 나중에 꼭 젊은 사람들에게 알려 줘야겠다'라고 어딘가에 메모해둔 걸 모아놓은 것 같았다. 물론 그녀가 지금의 나처럼 직접 키보드를 치면서 집필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글 하나 하나에 까랑까랑하면서 나긋나긋한 그녀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왜 그녀가 그 나이에도 젊고 밝은 기운을 유지하고 있고, 항상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지 알게 되었다. 먼저 그녀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스렸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주름진 얼굴과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뚱아리를 보면서도 그녀는 매일 아침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결혼하자마자 남편의 엄청난 빚을 그대로 떠 안게 되었을 때도 "나에게 일할 복이 있다면 그는 받을 복이 많은 남자구나. 그래서 나에게 일할 복을 줬구나"라고 생각하며 연기 일에 매진했다.(이 부분을 읽을 때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그녀는 남들이 넘어져 주저앉을 만한 일에도 벌떡 일어나 다리에 뭍은 흙먼지를 털털하게 툭툭 털고 앞으로 씩씩하게 나아갔다. 긍정적인 생각은 밝은 인상을 만들고, 밝은 인상은 사람들을 모이게 만든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그녀는 지금까지 해왔고, 지금도 해오고 있으며, 그 결과는 그녀 자체로 증명되었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기반으로 그녀는 과감히 도전했다.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기 위해서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거기서 봉제공장, 한정식집 등 온갖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배우가 예능에 나오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던 때인데도 그녀는 "나는 뒤에서 이상한 짓 안 해"라며 시트콤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여러 예능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의 웃음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고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자신감을 쌓고, 이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는 것. 이것이 그녀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일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늙음이 죄가 되어가는 요즘, 나를 포함해 '늙는 것'을 두려워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이런 시대에 그녀의 모습은 이런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준다. 나도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려울 때마다 그녀의 책을, 그녀의 유튜브 영상을 꺼내 볼 것 같다. 벤츠를 몰고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아울렛에서 아이 쇼핑을 하며, "몰라 몰라 그냥 살아"라면서 고민하는 시간도 아까워하는 유쾌한 그녀의 모습을 오래도록 보고 싶어서. 그리고 그런 나의 미래의 모습을 꿈꾸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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