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잔혹해야만 했다

히가시노 게이고 <방황하는 칼날>

by 정물

나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총이나 칼에 맞는 소리만 들어도 내가 맞은 것처럼 느껴진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잔인한 묘사가 나오면 토할 것 같이 속이 울렁거린다. 그래서 스릴러나 호러 장르에 굉장히 약한 편이다.


그런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만큼은 재미있게 읽는다. 잔인하거나 성적인 묘사가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 현장은 최소한으로 필요한 만큼만 묘사되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줬는지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 이유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범죄자를 '절대적인 악'으로 보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용의자 X의 헌신', '가공범' 등 대부분의 히가시노 게이고 책에 등장하는 범인들의 사정을 보면 '나였어도 그런 선택을 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즉, 그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악한 사람이어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도덕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악행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범인을 응원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번 책은 다른 히가시노 게이고 책들과 달리 초반부터 잔혹한 묘사가 펼쳐졌다. 어느 여름날 축제에 놀러갔던 딸이 일면식도 없는 소년들에게 인간 이하의 짓을 당한 후 목숨을 잃는다. 딸을 잃은 슬픔에 잠긴 아버지 나가미네는 어느 날 범인의 거주지를 알려주는 의문의 전화를 받고 그 범인의 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딸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보게 된다. 이성을 잃은 그는 집으로 귀가한 범인을 가차없이 살해한다.


이때 나가미네가 범인의 집에서 본 비디오의 장면이 너무나도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읽다가 토할 정도였다. 그래도 꾹 참으며 읽어 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내가 피해자들의 감정에 완전히 이입돼 있었다. 나가미네가 범인 중 한 명을 살해하고 나서 '너무 쉽게 죽어버렸다'라고 말했을 때 나도 똑같이 허무함을 느꼈다. 더 고통스럽게 죽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피해자의 아버지가 '어디서 살해되면 좋을 텐데. 아쓰야처럼...'이라고 말했을 때는 나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후반부에서 나가미네가 그렇게 찾던 범인과 마주쳤을 때는 정말 손에 땀을 쥐면서 '제발'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읽는 중간 중간 그 비디오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러면서 왜 히가시노 게이고가 초반의 비디오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했는지 이해했다. 이들은 연민의 감정을 줄 필요가 없는 '절대적인 악'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간 이하의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소년법'이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받으며 형량을 적게 받는다. 10대에 범죄를 저질러 10년간 소년원에 있는다고 해도 출소하면 20대. 그렇게 잔인한 행동을 했는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 빛나는 청춘을 보낸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범죄를 저지르며 질주하는데도 막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악의 끝판왕인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시간은 그들에게 피해를 당했던 그 때에 멈춰 있다. 그들처럼 빛나는 미래를 꿈꿀 수 없다. 가족을 잃은 슬픔, 범죄로 인한 트라우마와 평생을 함께한다. 그럼에도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곳은 없다. 일반인들은 물론 우리 사회의 '정의'라고 불리는 사법조차 피해자의 편이 아니다. 그래서 나가미네는 엽총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초반의 잔혹한 묘사는 범죄자에 대한 일말의 연민도 갖지 못하게 하면서 피해자들의 감정에 더 잘 이입되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평소에 당사자가 아닌 이상 관심이 없었던 소년 범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끔 한다. 토를 할 정도로 범죄자들의 행동에 분노하고, 손에 땀을 쥘 정도로 피해자들의 복수를 응원했음에도 정작 나 자신은 평소에 소년 범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촉법소년' 관련 사이다 영상이 나돌 때도 내 일상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우리 가족도 언제든 소년범들의 타겟이 될 수 있다. 나도 나가미네처럼 피해자의 마음을 대변해주지 않는 현 사법 체제에 분노하며 범죄자에게 총을 겨눌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년 범죄에 대해서 평소 관심을 가지지 못했고, 이들을 어떻게 교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남의 일처럼 대했던 과거가 떠올라 나 자신이 창피했다.


누군가는 피해자들은 감정적일 수 있어도, 사법은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만약 내 가족이 소년범에 의해 살해당한다면 정말 지금의 법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테고 내가 모르는 법적인 사정 등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에서도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초반의 잔혹한 묘사를 거쳐 나가미네가 범죄자를 쫓는 과정, 경찰이 그 뒤를 쫓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만의 답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렇게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제3자도 소년 범죄에 관심을 갖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도록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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