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알려준 유일한 레시피

08. 엄마의 김밥2

by 정물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음식 중 제가 가장 사랑하는 김밥을 최근에 만들어 먹었습니다. 엄마가 가르쳐준 그대로,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엄마처럼 김밥을 말고 있는 나 자신에 뿌듯하면서 울컥했습니다. 여름 햇빛에 그을린 공기 냄새와 주방에서의 참기름 냄새, 김 냄새, 오이 냄새, 여기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의 합주. 이것이 제가 엄마와 보냈던 여름이었습니다. 이런 여름날에 이렇게 엄마와 김밥을 말았더랬습니다.


당시 엄마는 재료를 준비해주고 하루의 고단함을 물로 씻어냈습니다. 그동안 저는 엄마가 열심히 준비해준 재료로 김밥을 말았습니다. 지금 해보니 재료 준비부터 김밥을 말기까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당시 엄마가 일을 마치고 바로 재료를 준비해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가르쳐준 그대로 김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그래 이 맛이었지', '이런 여름 맛이었지'라는 생각에 기쁨도 잠시,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오이도 단무지도 어묵도 계란도 큼지막하게 들어간 김밥을 한 입 가득 먹으며 이게 김밥 때문에 목이 메이는 것인지, 엄마가 보고 싶어서 목이 메이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확실한 것은 세월이 흘러도 아직도 이 맛을 잊지 않고 그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엄마의 맛이 그리울 때 엄마의 맛을 찾을 수 있는 음식이 하나라도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지난 번에 '엄마의 김밥'을 쓰면서 엄마는 왜 나에게 김밥을 가르쳐 줬을까, 다른 음식도 아니고 왜 하필 김밥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도 많이 가고, 재료도 많이 들어가는 이 김밥을 왜 가르쳐 줬는지 오랜만에 엄마의 김밥을 만들어 보니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특별한 양념 비율이나 끓이는 시간에 관계없이 재료의 조합만으로 금방 엄마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물어볼 곳이 없는 지금의 나는 추측만 해 봅니다.


여름에 숨어 있던 가을이 더위 장막을 살짝 걷고 '나를 잊지 마'라고 하는 것 같은 요즘입니다. 엄마도 '나를 잊지 마'라는 뜻으로 저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김밥을 만들어야 겠다'는 의식을 살짝 드러내주신 거겠죠. 앞으로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어쩌면 지금보다 더 자주, 김밥을 찾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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