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oyager Nov 20. 2020

장진호 전투가 투자에 준 교훈

원칙의 중요성 그리고 좌절하지 않는 용기

Prologue


전쟁사를 무척 좋아한다. 인간의 모든 모습이 몇 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축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시적으로 전쟁의 배경이 되는 정치, 경제, 외교에서부터, 미시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지도부의 판단력, 어리석음, 실력, 운, 모험, 인간성 등등과 더불어, 전쟁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일반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보여주는 처절함까지 다 담겨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에 대한 관심’을 ‘전쟁’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는 것이다.


2차 대전, 한국전, 월남전이 주된 관심 대상인데, 이들 중에 널리 알려진 전투는 무수하게 많지만 내 관점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은 “장진호” 미 해병 1사단의 후퇴이다. 물론 독일 “롬멜”의 “북아프리카 전투”도 적장 처칠이 칭찬할 만큼 멋있었고, “롬멜” 자체도 훌륭한 인간이지만 ‘전술과 보급의 균형’이라는 내 기준에서 “장진호 전투”보다는 평가가 낮다. 그래서 2위. 3위는 월남에서 프랑스를 내쫓은 “디엔비엔푸 전투”.


사족이기는 하지만, 가장 평가가 낮은 사람은 1위 "몽고메리", 2위 "맥아더". 전쟁에서 자신의 인간적 약점을 그대로 노출시켜 불필요하게 병사들의 희생을 너무 많이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독일에 명장들이 많기는 하다. 롬멜 외에도 만슈타인, 구데리안, 모델, 되니츠 제독 등등. 한국은? 한국전이건, 베트남전이건 미군의 보조적인 역할밖에 못하기도 했고, 솔직히 평가하기도 낯부끄러운 지휘관들 투성이이기도 하다.


장진호 전투

Hope for the best, plan for the worst


개념적으로 작전은 전투를 위한 전술과 보급의 2개 축으로 이루어진다. 장기적으로는 보급이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 일시적으로 전투에 이기더라도 보급이 따라오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패하기 때문이다. 밥 못 먹고, 총알 떨어졌는데 어떻게 전투를 지속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다. 2차 대전 롬멜의 북아프리카, 독일의 소련 침공, 연합군의 마켓 가든, 한국전쟁 중공군 참전으로 인한 미 8군 지리멸렬, 베트남 프랑스군의 디엔비엔푸 전멸 모두 보급에 문제가 생겨서 당한 패배이다. 모두 초기에 밀어붙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인데 이순신 장군은 보급의 귀재였다. 임란 시기 중앙이 무너져서  정부의 보급이 0일 때 둔전으로 군량미, 어업으로 부식, 군수품 조달, 무기 제조까지 해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인천 상륙 작전 후 연합군이 파죽지세로 북진을 할 때 보급선이 길게 늘어졌다. 서부 미 8군의 경우 300km까지. 독일의 전격전처럼 승기를 잡았을 때 밀어붙이는 것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전격전의 승리는 상대방의 무능, 심리적 공황, 대응 작전의 실패, 혹은 폴란드나 소련의 경우처럼 장비의 열세 등등이 합쳐져 개전 초기에 승리한 것이지 측면 방어선은 “flank”에 취약하다. 어쨌든, 연합군이 기분 좋게 쳐 올라가고 있을 때 북한 영내로 몰래 잠입해서 반격을 노리던 대규모 중공군이 이를 모를 리 없고, 북진하던 연합군은 중공군 반격에 일방적으로 몰매를 맞고 완패를 해서 뒤로 물러나게 된다. 소위 1.4. 후퇴.


북진하던 10군단 소속의 미 해병 1 사단장 스미스 소장은 상관인 10 군단장 아몬드가, 맥아더의 꼭두각시라고 불리던, 사단을 연대별로 나누어 빨리 진격하라고 재촉했지만, 사단 편제를 유지하면서 요소요소에 보급기지를 만들고, 이를 위한 비행기 활주로까지 만들어 놓고 조심스럽게 진격한다. 적이 자신의 취약점을 파고 들어올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당시 미 해병 1사단은 구성원 70%가 2차 대전 참전용사일만큼 전투력이 높았고, “해병 = 체력 = 사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조심했던 이유는, 일본이 수세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던 과달카날 전투를 비롯해, 2차 대전 태평양 전선에서 다양한 실전 경험을 풍부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이 부족하고 전투력도 낮았지만, 인민군이 후퇴하는 분위기 타고 압록강에 먼저 도착하네 마네 설쳤던 한국군, 미 육군 부대들은 중공군 반격에 일패도지하고, 그 후에 한국군 부대는 중공군만 보면 도망치다가 군단 해체, 지휘권 박탈이라는 수모까지 겪는다. 그래서 1.4 후퇴 후 반격의 계기는 전부 미국, 프랑스, 터키 군 등 참전 외국군들이 만들어 냈다.


장진호에서 미 해병 1사단은 몇 배에 달하는 적의 치열한 포위공격을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스미스 사단장은 비행기로 탈출하라는 10 군단장 아몬드의 권유를 거부한다. 항공 철수를 할 경우 비행장을 엄호하던 병력이 희생되고, 장비 보존이 불가능하다면서. 그리고는 “후퇴가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의 공격이다”는 명언을 남기고, 진두지휘한다. 만들어 놓은 보급기지를 활용해서 부대원들의 사기, 전투력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대규모 포위공격을 뚫고 성공적으로 함흥까지 철수했다. 합리적 작전, 리더십, 사기, 체력, 전투력이 잘 조화된 사례이다. 보급이 없으면 체력이 없고, 체력 없으면 사기도 없고, 당연히 전투력도 없다. 작전이 잘못되고 리더십이 부족하면 망하는 것이고.


만일 스미스 사단장이 전술과 보급을 동시에 고려하는 작전을 세우지 않고 육군들처럼 진격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다른 부대들보다 더 잘 싸우기는 했어도 훨씬 더 큰 희생을 치렀을 것이다. 스미스 사단장은 나중에 4성으로 진급, 10군 단장 아몬드는 진급으로 포장해서 후방으로 날려가고, 맥아더는 자신의 실패를 덮으려고 대통령 트루만과의 불화를 만들어서 폼나게 은퇴한다.  


작전의 원칙, 투자의 기준


작전의 원칙이 전술과 보급이라면, 주식시장은 실적과 유동성이 투자의 기준이다. 지금 소수의 기업을 제외하고는 실적은 엉망이지만 유동성이 장을 끌어올리고 있다. 3월 이후의 반등은 전적으로 유동성이 만들어 낸 것이고, 신문이나 유튜브를 보면 내년에도 장밋빛 전망이 많은데, 근거는 역시 전 세계 도처에 깔린 유동성.


유동성에 의한 상승도 결국은 코로나 이후의 경기회복으로 인한 기업실적 회복을 가정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 아무리 유동성이라도 가치가 없는 것들의 가격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실적이 주가를 떠받칠 정도로 회복될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본다.


최고의 시나리오가 유동성은 풍부한 채로 코로나가 진정되고 기업실적이 호전되는 것이라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코로나가 지속적으로 확산되어 기업실적 회복은 지지부진한데, 급증한 부채로 기업, 가계의 부도가 확산되어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표면화되거나 실제로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 주식시장은 “Hope for the best”의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한국전쟁에 비유하면 인천 상륙작전 후에 후퇴하는 인민군을 추격해서 북진하는 연합군 분위기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지금은 10년에 한 번 오는 투자 기회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항상, 더욱이 지금은 “Plan for the worst”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보유하고 있는 데로, 그렇지 않더라도 그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계획을 나름대로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파생상품으로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를 조절할 수 있다면, 방어할 때 공군의 화력지원받는 정도의 효과가 있지만,  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글이나 유튜브를 보면 많은 전문가들이 나와서 분석을 한다. 섬찟할 정도로 사람들을 오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만일 내가 그 업에 있지 않다면, 혹은 경제에 문외한이었다면, 그 화려한 화술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증권사, 펀드사 현직들은 대부분 언변은 화려하고, 기발한 분석을 내놓기는 하지만 장사속도 많고 인사이트도 보이지 않는다. GDP 추정하는 방식도 틀리게 분석을 하는 경우도 봤는데, 댓글은 통찰력 있다고 쓰여있었다. 내 기준으로 신뢰성 높은 분석을 하는 분들을 꼽아 보면 제도권 경력과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다.  


아마 이 글을 1~3년쯤 지나서 보면, 사람들이 이 글을 쓴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투자에서 1~2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빨라도 빠른 게 아니고, 느려도 느린 게 아니다. 나중에 내 아이들이 읽으라고 쓰는 목적도 크기 때문에 글의 Time Horizone이 길다.


PS.  장진호 전투에서 또 다른 큰 교훈은 꺾이지 않는 용기. 스미스 사단장의 사기를 북돋는 리더십이 큰 작용을 했지만, 해병의 체력도 용기를 지탱하는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몸이 힘들면 마음도 힘들어진다. 그래서 체력과 shape를 유지하는 것은 군인들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미 정부 급할 때마다 SOS…위기 관리 탁월 ‘월가 해결사’

[월스트리트 리더십]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알라딘’ 플랫폼 도입 등 철저한 리스크 관리로 명성을 쌓은 래리 핑크는 월가의 해결사로도 불린다.
 [로이터=연합뉴스]

2008년 3월, 제이피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파산 위기에 몰린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인수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장애물은 베어스턴스의 모기지 관련 자산. 요동치는 시장에다 구조도 복잡해 인수 가격 산정에 애를 먹고 있었다. 그때 다이먼이 ‘SOS’를 요청한 인물이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었다. 핑크는 회사의 전문가들을 급파해 다이먼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그런데 핑크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티머시 가이트너 당시 뉴욕 연준 총재가 그에게 연락을 취해왔고, 이후 블랙록은 베어스턴스 매각 조건에 따라 뉴욕 연준이 떠안게 된 부실 자산(300억 달러)의 관리를 책임지게 된다.
  
 핑크는 이렇듯 ‘월가의 해결사’로 통한다. 위기 때마다 민간 금융회사는 물론 미국 정부까지 그에게 자문을 구하고 종종 실질적인 관여를 요청한다. 특히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미국 정부의 ‘월가 구출 작전’에 깊숙이 개입했다. 베어스턴스와 보험사 AIG 등 정부 구제 금융을 받은 회사들이 연준에 넘긴 부실 자산에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 모기지 업체 패니메이·프레디맥의 자산, 그리고 연준이 시장에서 직접 사들인 모기지 채권까지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급 자산들을 블랙록이 도맡아 관리한 것이다.
   
 블랙록의 경쟁사 뱅가드도 ‘알라딘’ 고객
  
 이처럼 핑크가 누리는 막강한 위상의 배경엔 블랙록의 핵심 역량이 자리 잡고 있다. 또 이 역량으로 일궈 낸 블랙록의 거대한 자산 규모는 핑크의 영향력을 증폭시킨다. 그것은 ‘리스크 관리 역량’이다. 1988년 블랙록을 설립한 후 지금까지 최우선에 두고 꾸준히 투자하며 개선해온 역량이다. 자산의 가치 변동을 초래하는 요인들을 파악하고 시나리오별로 분석해 대비하는 일련의 투자 활동에서 블랙록은 탁월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블랙록이 이와 같은 경쟁력을 갖추게 된 데는 핑크의 철두철미한 리스크관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리스크에 대해 강박관념이 있다”고 토로할 정도로 불확실성을 경계한다. 돈을 벌면 왜 버는지, 돈을 잃으면 왜 잃는지 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데 블랙록의 성공 DNA라고 할 이 까다로운 리스크관이 생겨난 배경은 예사롭지 않았다. 핑크가 지금껏 인생 최대의 실패라고 여기는 30여 년 전의 사건이 그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1976년 월가 투자은행 퍼스트보스톤에 입사한 핑크는 이른바 스타 트레이더로 급부상했다. 당시 걸음마 단계이던 모기지 채권 거래로 회사에 막대한 수익을 안기면서다. 성공 비결은 초보적이지만 남들보다 앞서 컴퓨터를 활용한 데 있었다. 수많은 모기지를 엮어 증권화하는 모기지 채권의 특성상 단순한 계산으로 거래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이를 컴퓨터의 힘을 빌려 해결한 것이었다. 덕분에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회사 역사상 최연소 임원이 되는 영예도 누릴 수 있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핑크에게 위기가 찾아온 건 1986년의 일이었다. 영원한 승자는 없는 법인지라 귀신같이 시장을 예측해 수익을 올리던 핑크의 팀이 손실을 내기 시작했다. 물론 금리 예측이 틀린 탓이 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리스크 관리에 있었다. 막상 손실이 불어나자 그동안 놓치고 있던 리스크 요인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그 해 2분기에는 손실 규모가 무려 1억 달러에 이를 정도였다. 재무적 성과가 곧 인격이라고 여겨지는 월가에서 스타 트레이더 핑크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더욱이 리스크 관리가 의심받자 이전의 수익은 중요치 않았다. 그때부터 좌천성 인사를 포함한 치욕적인 처우가 이어졌고, 결국 1988년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설립한 회사가 블랙록이었으니, 핑크가 회사를 경영하면서 리스크 관리에 그토록 집착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핑크는 특히 채권을 중심으로 컴퓨터를 비롯한 기술력 투자에 집중했다. 일찍이 모기지 채권 거래에서 컴퓨터의 가치를 경험한 데다, 궁극의 리스크 관리를 위해선 그에 걸맞은 컴퓨팅 파워를 갖추는 게 필수였다.
  
 핑크의 리스크관과 고도의 기술력이 결합한 결정체가 ‘알라딘(Aladdin: Asset Liability & Debt & Derivatives Investment Network)’이다. 핑크는 블랙록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리스크 관리 플랫폼 알라딘을 2000년부터 아예 별도의 사업부로 독립시켰다. 이후 고객들이 자산 관리를 위해 블랙록에 수수료를 지급하고 사용하는 단독 상품이 됐다.
  
 우리의 일상에서 애플의 아이폰이 그렇듯 알라딘은 연기금·자산운용사 등 자산관리 업계의 생태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세계 225개 기관이 알라딘으로 총 18조 달러 규모의 자산을 운용한다(2019년 말 기준). 모건스탠리·UBS 등 대형 자산운용사와 함께 미국 2대 연기금 캘리포니아주 교사 퇴직연금(CalSTRS), 그리고 블랙록의 최대 경쟁사인 뱅가드까지 알라딘의 고객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핑크가 내다본 투자의 미래에서도 기술력이 중심에 있었다. 감정에 휘둘리기 쉬운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이른바 규칙에 기반하고 데이터가 주도하는 투자가 그가 예전부터 그려온 투자의 미래상이었다.
  
 이에 핑크는 알라딘으로 축적한 기술력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신사업으로 상장지수펀드(ETF)를 선택했다. 수차례의 인수·합병으로 블랙록의 덩치를 키워온 핑크는 이번에도 같은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2009년 ETF 브랜드 ‘iShares’로 유명한 자산운용사 바클레이즈 글로벌 인베스터즈를 인수한 것이다.
   
 ETF 운용사 인수, 미래 내다본 ‘신의 한수’
  
 금융위기의 와중에 내린 이 결단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핑크가 예측한 투자의 미래가 현실이 되자 ETF 시장은 급성장했고, 블랙록은 후발 주자임에도 세계 ETF 운용사 중 자산 규모, 종목 수, 매출 등 여러 방면에서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것을 이룬 핑크도 걱정거리는 있다. 그가 블랙록을 경영하는 데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한 이것은 바로 중도를 지키는 일이다. 월가에서 블랙록이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가 사업에 플러스 요인이자 동시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는 까닭에서다.
  
 여러 차례 공적 자산을 관리하며 형성된 친정부 이미지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라는 지위는 블랙록의 정보력에 대한 신뢰로 이어져 영업 활동에 크게 기여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블랙록이 이해상충과 대마불사의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결국 핑크는 금융위기 이후 은행권에 집중된 고강도 규제의 칼날이 블랙록을 향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이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0.11.28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후 주가반등, Mental Accountin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