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 소비자에서 글 쓰는 생산자로
변화의 시작은 작년 연말 즈음이었다.
여느 날과 같이 퇴근 후 피곤한 몸을 대충 집구석에 구겨 넣고, 습관처럼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이라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귀찮다는 핑계로 유튜브 쇼츠 알고리즘에 나를 맡겼고, 엄지손가락을 기계적으로 위로 올리는 걸 반복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1시간 가까이 시간이 흘러 있었고, 남은 건 공허한 마음뿐이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무기력함이 내 몸을 휘감았다. 화려한 영상 속을 헤매다 현실로 돌아온 내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과감히 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간 생산자로서 블로그나 유튜브 등 여러 시도를 했지만, 꾸준히 이어지지 못하고 실패했던 기억이 스쳤다.
부분적으로나마 성과가 있었지만, 관심 없는 분야이거나 목표가 뚜렷하지 않아 동력을 잃기 일쑤였다.
이번에는 달라야 했다.
남들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옷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래서 플랫폼 대신 투박한 다이어리 하나를 샀고, 투박하게 볼펜으로 일기를 쓰며 스스로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 경험을 곱씹고, 책에서 읽은 문장을 글로 정리하며 내 삶에 비추어 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는 의외의 수확을 가져다주었다.
하루를 복기하며 나를 바로잡는 시간
조용한 집에서 끄적거리다 보면, 불현듯 지난 어제와 오늘이 스쳐 지나가며 마음에 걸린 일들이 생각난다.
가족들의 이야기에 공감을 못한 건 아닌지, 회사 후배에게 쓸데없는 말을 해서 걱정을 안긴 건 아닌지.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실수가 잦고, 주변 사람들에게 배려가 없는지 깨달았다.
실제로 글로 적다 보니 후회되는 일이 명확해졌고, 늦기 전에 사과의 말을 전할 용기가 생겼다.
그 사과가 상대방에게는 변명처럼 들렸을지 모르지만, 의도한 바와 다르게 해석할 말을 조심하게 됐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을 여과 없이 말하는 자세를 고칠 수 있어서 긍정적이다.
상상 속의 나와 마주하는 민낯
일기를 쓰다 보니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직장인이라면 다들 겪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교류하는지, 어떤 류의 사람인지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거지만, 그 안에서는 끊임없는 갈등과 고민 그리고 해결 과정이 녹아들었다.
인생과 행복, 성장, 미래에 대한 걱정 등 반복적으로 쓰이는 단어들이 곧 나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했다.
놀라웠던 건, 머릿속에서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과 실제 현실을 살아가는 나와는 온도차가 꽤 심했다는 점이다.
속 좁은 인간인지는 알았지만, 마음속에 그렇게 담아두고 꿍해 있는 게 쿨하다고 생각했던 나와는 사뭇 달랐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이 이야기할 때는 잘 안 와닿던 말들이 내 글로 만나니, 창피하기도 했다.
100%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를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의 시너지
일기를 쓰면서 ‘하루 10페이지 독서’를 병행했던 게 큰 동력이 되었다.
예전에는 다독 자체가 목표이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주객이 전도되어 남는 게 없었다.
독서량이 많은 건 아는 척할 때는 좋을지 몰라도,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속적인 독서는 메마른 머릿속에 단비가 되어 더 풍부하고 깊은 생각으로 유도한다.
작가가 인고의 노력으로 펴낸 책 한 권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기분은, 그것을 본인의 언어로 다시 써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이제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생산자로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하루 이틀 사흘..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재단하는 중이다.
텅 빈 화면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부터는 나만 보는 일기장이 아닌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글을 써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