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착각

100권을 읽어도 내 삶이 제자리인 이유

by 정남이


책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올라오지만, 며칠 뒤 막상 기억나는 게 별로 없는 경험해 본 적 있을 것이다.

독서 좀 한다는 사람들은 한 번쯤 겪어 봤을 테고, 책이 두껍거나 본인이 어렵다고 느꼈을수록 더 그랬을 것이다.


연말연초가 되면 신년 계획에 어김없이 ‘책 nn권 읽기’가 예외 없이 등장하고, 최소한 올해보다는 많이 읽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우리는 대부분 책을 양으로 보고 완독 한다는 목표에 치중하지만, 다독이 모든 사람들에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나 같은 경우엔 남들에게 있어 보이고 싶은 ‘지적 허영심’으로 한 두 권씩 읽기 시작했다.

워낙 독서습관이 안되어 있었기에 책을 다 읽는다는 행위에 집중했고, 내용을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이 책을 읽어봤다고 말하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책 제목과 작가, 그리고 간단히 사람들에게 아는 척하기 좋은 내용 요약을 머릿속에 넣어두기까지 했다.

증상이 정점에 달했을 때는 1년간 읽은 책이 100권이 넘는다고 책 제목을 전부 기록해 두고, 그걸 자랑하는 지경까지 갔다.


하지만 문득, 쌓여가는 책에 비해 내 삶은 1도 바뀐 게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혹자는 책을 읽고 난 후 삶이 180도 바뀌었고, 성공하는 사람들은 항상 책을 가까이 둔다는 인터뷰가 흔하지만,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무슨 일이든 임계점이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뚫고 올라갈 때까지는 변화가 미미할 수 있으니 더 많은 책을 읽으면 내 삶도 달라질 거라 믿었다.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다.

일정 부분까지는 절대적인 양이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가 될 순 없다.

결국 독서의 양을 아무리 늘린다 한들, 양질의 독서가 병행되어야지만 유의미한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눈으로만 읽는 책은 그만>


책을 읽는다는 착각을 할 때가 많았다.

소설이 아니라 자기 계발, 경제/경영, 역사 등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눈으로만 쫓아서는 안된다.

저자가 말하는 바를 읽고, 그 안에 속 뜻을 생각하고, 그걸 글로 남겨봐야 한다.


귀찮게 언제 글을 쓰고 있냐고 생각할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책을 읽고, 고민하는 것에 그칠 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랬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고민에서 멈춘다면 딱 거기까지이다.

나를 바꾸길 원한다면 그 생각들을 쓰고, 나아가 내 삶에 적용할 부분이 무엇인지 까지 고민하면 해야만 합니다.


나 또한 양질의 독서를 위해 책을 읽는 습관을 바꿨다.

필사와 함께 내 생각을 덧붙여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일기장에 짧게 책에서 본 좋은 문장을 쓰고 생각 3~4줄을 쓰는 정도였다.

이 사소한 과정에서 점점 내 생각을 두터워졌고, 거기서 여러 갈래의 곁가지가 뻗어 나오더니 내 생활 이곳저곳에 쓸만한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

그래서 하나씩 주체적으로 쓰고 적용하다 보니, 삶이 하나씩 바뀌는 게 체감됐다.




<철학을 내 삶으로 가져오는 법>


최근 《죽음은 통제하지만 인생은 설계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스토아 철학을 적용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철학이라는 걸 접하고 ‘아~ 좋은 말이네’ 하고 넘겼다면, 금방 휘발되어 머릿속에서 금세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글로 정리했고, 최근 나를 괴롭히던 문제를 해결하는 힌트가 되었다.

* 스토아 철학은 이분법적 사고와 같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선을 다하되, 그 외 ’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 과감히 인정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이 문장을 내 상황에 대입해 글로 써보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책을 단순히 읽는 수동적인 독서는 잠깐의 성취감을 줄지 언정 능동적이고 발전된 삶 자체를 약속하지 않는다.

스토아 철학을 내 삶에 적용시키는 시도는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씩 기록하고 시도하다 보면 삶의 방향은 분명히 바뀌게 되어있다.

그 시작은 책 모퉁이에 작은 포스트잇이라도 좋으니 시작해봤으면 한다.

거창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고, 나를 바꾼다는 주체적인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그것으로 가장 수혜를 볼 사람은 글을 쓰는 본인이기 때문이다.


오늘 쓴 한 줄이, 짧은 메모 하나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의심하지 말자.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흐르면, 단단한 바위를 뚫게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