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 나는 바벨을 들기로 했다.

가늘고 길게? 짧고 굵게? 그 사이에서 찾은 제 3의 길

by 정남이


연말의 회사에는 두 종류의 임원만 남는다.

살아남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지난주 임원을 포함한 여러 사람이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났다.


매년 12월이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풍경이다.

밑에서는 치고 올라가고, 위에서는 밀리고 밀리다가 결국 집으로 떠난다.

임원 중 한 명은 마지막 인사를 위해 직원들 자리를 돌며 씁쓸하게 웃었다.


‘졸업이니깐 축하해 줘’


그가 내민 손을 잡으며 생각했다.

임원이 되는 순간 부와 명예가 따라오지만, 그 끝은 철저한 성과주의의 냉혹함뿐이구나.

단순한 숫자를 넘어 최고 경영층의 입맛 맞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야생’의 세계다.


<가늘고 길게 vs 굵고 짧게>

그렇다면 우리 같은 평직원들은 어떤 마음일까?

모두가 임원을 꿈꾸며 불나방처럼 뛰어들까?


승진하고 싶은 목표는 있지만, 주변 3040 세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대체로 본인의 야심을 드러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임원? 됐어. 그냥 적당히 진급하다가, 몸은 편한 곳에서 정년까지 근무하고 싶어”라고 말할 뿐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가늘고 길게’ 가는 실속파 같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책임은 지기 싫고 돈은 벌고 싶다’는 회피의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들을 비겁하다고 욕할 수 있을까?


임원이 되기 위한 길은 순탄치 않다.

동료들과 경쟁하고, 가족과의 시간을 줄여가며 업무와 상사의 요구를 맞춰야 한다.

여기 까지만 본다면 일에 욕심이 있고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전해 볼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도 임원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승진 여부는 내 노력은 기본이고, 상사들의 주관적인 평가, 즉 ‘운’과 ‘정치’에 달려있다.

전반적인 태도, 리더십, 좌우상하 주변 동료들의 평판과 인정 등 모든 걸 포함하는 말이다.


내 인생의 목숨줄을 상대방 손에 쥐여주는 것.

그렇게 올인했다가 실패하면 정년은커녕 노후 준비가 부족한 채로 ‘강제 조기 졸업’을 당하게 된다.

이 불확실한 도박판에 내 인생 전부를 걸기에는 지켜야 할 게 많다.


<1%의 확률>

패기 넘치던 신입사원 때가 생각난다.

본사 HR 교육 담당자가 수백 명의 동기들 앞에서 말했다.

“여기서 임원까지 가는 사람이 ‘1% 미만’입니다” 스치듯 이야기한 게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다.


순수했던 우리는 콧방귀를 뀌었다.

‘1%? 너무 작은 거 아냐?’ 내가 그 1% 가 될 건데?‘

신입이었던 우리들은 무조건 열심히 해서 회사에서 별을 달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게 멋있어 보였고, 신입으로서 업무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마냥 멋있지만도 않았고, 업무에 대한 열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식었다.


연차가 쌓이고 안전지향적으로 바뀌는 것도 있지만,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으므로 본인의 기준에서 본능적으로 계산하게 된다.

결국 무엇이 나에게 유리한가?

문제는 ‘가늘고 길게’ 가고자 하는 것도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회사는 고액 연봉 관리직을 내보내는 게 유리한 결정이다.

희망퇴직을 받는 회사가 왕왕하게 있는 걸로 보아 불안한 게 사실이다.


내가 과연 이 자리를 계속 고수해서 회사가 요구하는 성과를 맞출 수 있을까?

상대적으로 연봉이 적고 능력이 더 뛰어난 후배들이 금방 배워서 할 수 있는 업무라면 굳이 내가 필요할까?


<굵고 짧게 가기도 두렵고, 가늘고 길게 가기도 힘든 시대>

도대체 우리는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까?


나는 금융공학 철학자인 나심 탈레브의 ‘바벨 전략’을 추천한다.

어중간함을 버리는 ‘바벨 전략’ 맹목적인 충성도 무책임한 월급 루팡도 답이 아니다.

운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바벨을 한번쯤 봤을 것이다.

바벨은 바 양 끝단에 무거운 추를 달아서 균형을 맞추어야지만 들어 올릴 수 있다.


바벨 전략은 어중간한 중간을 텅 비우고 양쪽 끝단에 자산을 배분하여 균형을 맞추는 전략이다.

어중간한 가운데는 없고 한쪽은 극히 위험한 자산, 다른 한쪽은 안전한 자산을 배분하여 위험을 최소화하는 게 핵심이다.


1. 극도의 안정성 (대체 불가능한 실무자)

회사에서는 정치나 임원 승진에 목매지 않는다.

대신 상사의 요구 수준 이상 업무 능력과 성과를 보이면서 나를 쉽게 대체할 수 없게 만든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에너지를 아껴, 내 업무 전문성을 키우는 데 쓴다.

이것이 내 회사생활을 지키는 강력한 방패역할을 할 것이다.


2. 극도의 위험성 (회사 밖 1인 사업)

퇴근 후에는 완전히 내 것인 일에 도전한다.

글쓰기, 유튜브, 온라인 커머스 무엇이든 좋다.

중요한 건 회사 밖 내 삶에 집중하고, ’ 폭발적인 성장‘을 노리는 것이다.

설령 실패해도 괜찮다.

나의 메인 잡은 회사에 있기 때문에 단기 성과에 치중하기보다 꾸준히 해서 대박이 날 수 있다.


나는 위험을 회피하고 싶은 겁쟁이다.

그래서 나는 이 양극단의 바벨을 들기로 했다.

낮에는 가장 보수적인 회사원으로 일하며 내 삶을 지킨다.

그리고 새벽과 밤에는 가장 야심 찬 ’ 생산자‘가 되어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도전한다.


이것이 회사로부터 기대하지 않고, 내 인생을 사는 제3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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