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호캉스 갈 때, 우린 도서관으로 간다.
결혼 전후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내와 나는 한 달에 두세 번씩 어김없이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그 횟수를 따져보니 얼추 100번은 족히 넘을 듯하다.
처음에는 나 혼자만의 루틴이었다.
그러다 연애를 시작하며 아내도 자연스럽게 함께 가게 됐고, 이제는 그 정취를 함께 느낀다.
처음에는 “주말에 웬 도서관?” 이라며 시큰둥했던 아내도, 이제는 나보다 더 도서관에 가는 걸 즐기는 듯하다.
결혼 후 세 번이나 이사를 했고, 그때마다 우리의 아지트가 되어줄 도서관도 세 번 바뀌었다.
도서관 때문에 집을 이사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옮기는 곳마다 도서관을 찾게 된다.
처음 도서관을 찾게 된 건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직장을 다니고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고, 좁은 방에 내 책을 쌓아 두기에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짐을 늘리고 싶지 않아서 나름 묘안을 생각한 게 ‘소유’ 하지 않고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말마다 찾은 시립 도서관은 나에게 큰 해방구가 되었다.
높은 층고의 로비, 웅장한 서가, 그리고 향긋한 커피 향이 도는 북카페까지.
수도권에 비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곳은 우리에게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조용히 외곽에 산책도 할 수 있고, 커피와 책 그리고 사람 구경까지 할 수 있는 몇 없는 완벽한 데이트 장소였다.
화려한 맛집이나 핫한 명소는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꾸준히 가게 된 게 지금의 우리 부부의 단단한 근간을 만들어 주지 않았나 싶다.
도서관 특유의 공기와 냄새를 사랑한다.
첫 번째는 책을 빌리는 공간인 종합 자료실의 ‘몰입의 공기’가 좋다.
남녀노소. 어린 학생부터 백발의 할아버지까지, 저마다의 세계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각자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순수한 지식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그 공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이 든다.
두 번째는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면서 만드는 ‘생기의 소음’ 이 정겹다.
자주 가던 도서관 정원이 넓고, 아이들 전용 자료실이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유독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이 많았다.
뒤 뜰에는 아이들이 뛰어놀도록 놀이터가 잘 만들어져 있었고, 책을 읽다가 지루해진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 다니는 풍경을 보며 ‘생기 있는 소음‘ 을 느낀다.
아이들에게 책을 강제로 읽게 하는 게 아니라, “도서관은 즐거운 곳”이라는 걸 몸으로 느끼는 익히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 부부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책이 주는 ’ 세월의 냄새‘가 좋다.
이것만으로도 도서관을 갈 충분한 이유가 된다.
수많은 사람의 손길을 거쳐 간 세월을 먹은 책은 묘한 감동을 준다.
책장에 꽂혀 있는 수 만권의 책들이 오랜 세월 동안 색이 바래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흔히들 책에 손때가 탄다고 하는데, 그런 손때가 그 책의 역사를 말해준다.
손때가 많이 탄 책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서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 권 한 권이 모두 서사를 가지고 있고, 그 책을 읽음으로써 나 또한 이 책의 이야기에 동참한다는 기분이 든다.
우리는 오늘도 도서관을 산책 겸 다녀왔다.
최근 이사를 한 터라 새로운 도서관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집 뒤편 언덕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경치도 좋고. 그 와중에 덩그러니 도서관이 있다.
예전에 다니던 만큼의 큰 규모는 아니지만, 오히려 아담한 공간이 정겹기도 하다.
우리는 그곳에서 신간 코너를 한번 기웃거리고, 경제, 자기계발, 인문, 철학 등 그날 눈길이 가는 대로 책을 고른다.
그리고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한 손 가득 책 꾸러미를 들고 나온다.
물론 다 읽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상관없다. 부족하지만 서로 읽고 좋았던 부분은 이야기해 준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이야기가 끊길 날이 없다.
멋진 영감을 받은 책도 좋지만,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책을 이러쿵 저러쿵 살을 붙여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우리 부부의 시간은 꽉 찬다.
도서관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시골 마을 느티나무 같이, 오래된 책을 지켜주고 쉼터를 제공해 준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주는 느낌과는 확실히 다르다.
도서관 공간이 주는 포근함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팍팍한 회사생활과 복잡한 인간관계에 지칠 때, 우리는 주말을 기다린다.
남들은 호캉스를 가고 명품관을 찾을 때, 우리는 이번 주도 도서관 데이트를 할 예정이다.
그곳에 우리의 가장 편안한 휴식과 가장 지적인 데이트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에.
어떤 책이 또 우리를 반겨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