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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pr 27. 2020

'집 사람'의 탄생

안 사람이 된 바깥양반

2019년 3월의 어느 날, 오전 9시.

인도 뭄바이의 여의도, BKC에 위치한 카페.


한 손에는 커피. 한 손에는 서류 가방.

필시 사원증 내지는 출입증일 그것을 목에 건 말쑥한 차림의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귓가에는 쉴 새 없이 테이크어웨이 커피 주문 소리가 울리고, 나는 그 소리의 주인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라떼를 주문하는 그녀를 보며 ‘오늘 아침 첫 끼일 테지…’ 하며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가, 더블 샷 블랙커피를 주문하는 그를 보며 ‘진한 카페인 파워가 필요한 아침인가 보다.’ 싶어 덩달아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지나가는 개미도 바빠야 할 것만 같은 그곳의 아침.

팔자 좋게 창가에 앉아 모닝커피나 마시고 있는 이 구역의 베짱이가 바로 나인가 보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모두가 일하는 시간에 여유롭게 카페 창가를 지키고 앉아 ‘커피나’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그네들이 그렇게나 부러웠는데 상상이 현실이 되고 보니 그 기분 참 묘하다.

가장 먼저 다가 온 감정은 헛헛함이었고, 바삐 출근하던 그들의 모습이 나였어야 할 것만 같다가 이내 그 숨 가쁜 무리에 속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한 강렬한 쾌감이 몰아쳤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죽여도 되나?’ 하는 마음 깊은 곳의 불안감 정도는 모른 척할 수 있을 정도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밀집한 BKC에서 어느덧 텅 비어버린 카페를 전세 낸 듯 지키고 앉아 이방인 같은 낯선 나를 홀로 충분히 만끽하곤 했다.



다만, 주어진 시간은 딱 2시간 30분이다. 그 시간이 경과하면 내게도 ‘애데렐라 타임’이라 불리는 또 다른 출근시간이 도래하므로, 어찌 보면 본능적으로 이를 대비하여 이른 아침부터 카페인을 비축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도는 하원 시각도 어찌나 빠른지 12시면 얄짤 없이 집으로 보내 버린다. 북새통을 이루는 학교 교실 앞 유모들 사이에 몇 안 되는 외국인 엄마들 중 한 명으로 아이 반 선생님과 겨우 눈 맞춤에 성공하고 나서야 아이 이름이 불리고, 아이가 인계되어 나오면 있는 힘껏 방긋거리며 아이를 맞이한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내 하루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그러고 보면, ‘아줌마 라이프’란 그곳이 한국인지 해외인지 따위는 애초에 중요치 않았던 것 같다.



치열해야 일상이고, 아득 바득 버티고 경쟁에서 이겨야 잘 사는 줄로 여겼던 내 인생에 드디어 브레이크가 걸렸더랬다. 애써 이른 아침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오늘 밤 흥에 겨운 술자리에서 제시간에 출근해야 하는 ‘내일의 나’를 의식할 필요도 없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이라며 마음에 품어 두었던 유니콘 같은 일상이 직장 생활 근 10여 년 만에, 5,000km도 넘게 떨어진 인도 땅으로 와서야 실현되었다. 남편이 인도 주재원 발령 가능성을 알리며 내 의사를 물어오던 날, 나는 기꺼이 새로운 인생 3 정도로의 입장을 기대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것 같다. 어찌해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내 일상에서 얼마나 간절히 변화를 그려 왔던가. 변화의 주체가 이왕이면 나 자신이었기를 바랐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 손에 쥐고 있던 바깥양반으로서의 모든 것을 내려놓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었고, 이 변화를 이용해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길로 언제까지이고 ‘안 사람’ 역할을 수반한 ‘바깥양반’ 일 줄 알았던 나는, ‘바깥양반’ 역할이 100프로 소실된 그야말로 순도 100% ‘집 사람’이 되었다. 그것도 인도에서 말이다. 남편이 같은 사람인 것과 내가 낳은 아들이 여전히 내 아들인 점을 제외한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뀐 환경에서 마치 남의 삶을 대신 한번 살아볼 기회가 생긴 듯한 착각에 잔뜩 들뜬 나머지, 정신 못 차리고 구름 위를 붕붕 날아다니고 있던 무렵, 시어머님의 전화 한 통에 내적 파티는 종지부를 찍었다. “그래, 아무쪼록 내조 잘 부탁해. 도와주러 간 거니까.”라고 하셨다. 정신이 번쩍 들었고, 응당 지당하신 말씀일진대 그 날은 어쩐지 하루 종일 무척이나 서글펐다. 내 손으로 놓아 버리고 온 모든 것들이 아쉬웠고, 내 몸이 10개쯤 되면 소원이 없겠다며 약을 달고 살던 워킹맘인 내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애초에 ‘집 사람’의 삶이란, 내 시간의 대부분을 남편이거나 아이를 기준으로 할애할 수밖에 없는 삶이라는 것을 인지했고 그 속에서 그간 다소 소원했던 소소한 행복에 흠뻑 젖어보리라 단단히 마음먹고 결정한 것인데도, 막상 과거의 나를 놓아주기 그리 만만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보면, 새로운 시작의 이면에는 언제나 이렇게 이별의 뱀이 또아리를 틀고있다.



이번에 맞닥뜨린 시작은 더군다나 생전 처음 마주하는 종류의 것이라 몹시도 낯설고 불안했. 그간의 진취적이고 성장 지향적이었던 것과는 사뭇 달랐으니 말이다. 살다 보니 그리 반짝반짝하지만은 않지만 노을 진 창가 같은 이런 뭉근하고도 묵직한 종류의 새로운 도입부도 만나게 되었다.

언젠가 남편도 바깥사람 역할이 100% 소실된 '집 사람'으로의 시작을 잠시라도 경험해보게 해 주고 싶다는 제법 깜찍한 상상을 하며, "오늘은 또 뭐 맛있는 것을 해 먹어보나~." 콧노래를 부르며 밥을 하러 주방으로 향하곤 했다. 몹시도 낯설었던 그 시작도, 그렇게 또다시 일상이 되어갔다.



덧, 나는 최근 또 다른 시작을 붙잡고 다시 워킹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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