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 강연을 책으로 보는 것에 대하여
2010년, 당시 막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있던 TED를 알게 된 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됐다. 그중 하나가 2011년부터 14년까지 3년간 약 2500여명의 사람들에게 TED 강연을 소개하는 메일을 (가능하면) 매일 사람들에게 보내는 일이었다. 처음엔 '이 강연 재미있어요. 한 번 보세요.' 정도 수준이었던 메일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었고, 나의 소개글도 길어졌다.
3년간 약 400여개의 강연들을 소개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강연들이 있다. Amy Cuddy의 'Your body language shapes who you are'도 그런 강연 中 하나이다.
허핑턴 포스트의 'Best of TED 2011'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알게 된 이 강연은, 새해를 준비하던 연말이란 시점과 맞물려 굉장히 큰 영향을 나에게 미쳤고, 사람들에게도 꼭 한 번 보라고 소개했었다.
(강연 링크 : Amy Cuddy - Your body language shapes who you are
Amy Cuddy 강연 소개글 : http://dreamsupporter.tistory.com/272)
그렇게 강한 인상을 받은 강연 / 강연자였기에, 시간이 좀 지났지만 그녀의 책이 나왔을 때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다시 강연도 찾아보고, 그 당시 썼던 소개글도 읽어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혹시 책 내용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 계시다면, 꼭! 위에 링크한 강연을 먼저 보셨으면 좋겠다. 강연에서 큰 감명을 받으셨다면? 거기에 나온 내용을 실천해보시길 바란다. 책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연을 잘 보셨다면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TED 연사가 낸 책에는 두 종류가 있다. TED 강연을 하기 전에 쓴 책. 책의 내용을 강연에서 압축해서 보여주는 경우다. 또는 TED 강연이 유명해져서 낸 책. Amy Cuddy는 가장 대표적인 후자의 경우다. 자신의 TED 강연 덕분에 책을 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이미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많다. 자신이 그동안 경험한, 또는 연구한 많은 내용을 짧은 강연에 담아야 하기에 미처 다 말하지 못한, 부족한 부분들이 많다. 책을 통해 그런 부분들을 채울 수 있기에, 강연을 본 뒤 책이 더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강연의 감동을 저작에서도 이어가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책은 불행히도, 대표적인 그런 경우였다.
주석 포함 총 500p나 되는 이 책의 내용은, 아래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프레즌스란 '자신의 진정한 생각, 느낌, 가치 그리고 잠재력을 최고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조정된 심리상태'이다.
2. 자세나 몸짓 등 일상생활에서의 신체언어를 조금씩 바꿔 스스로를 자극함으로써 프레즌스를 유지하고, 키울 수 있다.
회사에서 오랜 시간 컴퓨터를 보면서 일하고, 그 결과 자세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평소에도 가끔 그랬지만, 이 책을 읽은 이후로 더 자주 어깨를 뒤로 젖혀서 스트레칭을 하고, 책 표지에 나와있는 포즈 (만세)도 해보려고 노력한다. 작고 사소하지만, 일상에 조그마한 변화를 줄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 이 책의 메시지는 나에게 분명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메시지가 의미 있다는 것과, 책의 좋고 나쁨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위 두 문장을 설명하기 위한 수많은 사례, 실험 결과, 일화, 개인적인 이야기 등등이 500p 동안 이어진다...
첫 번째 장이 끝나기 전 적어놓은 메모에 이렇게 적혀있다...
뭔가 지겹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한 가지 더. 내용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책을 읽는 내내 조금 불편했던 부분이 있다. 저자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또는 다른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전달하면서, 그 사람들이 썼을 법한 단어를 모두 '프레즌스'로 바꿔서 표현해놓았다는 점이다. 그 대화를 직접 들은 것이 아니기에 당사자들이 실제로 사용한 단어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다른 단어를 사용했다면 (예를 들어 열정, 몰입 등) 훨씬 자연스러워 보일법한 내용들이, 사용하지 않았을 것 같은 '프레즌스'란 단어로 이어짐으로써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로 작성한 뒤, '그 단어가 곧 '프레즌스'를 뜻한다' 정도로 정리하면 어땠을까. 물론, '프레즌스'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기에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혹시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인터넷 서점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목차를 적어본다. 가끔 그런 책들이 있다. 목차만으로 내용이 이해되는 책들. 그런 경험이 없으시다면, 그래서 정말 그럴 수 있을지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강연은 잠깐 시간 내어 꼭 한 번 보셨으면 좋겠다.
저자가 서문부터 마지막 감사의 말까지 언급한 수많은 사람들처럼, 여러분도 인생의 큰 변화를 자그마한 자세의 변화로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프레즌스 - 목차
1장 프레즌스가 대체 뭔가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경이로운 힘 | 자아가 깨어나는 찰나적 순간 | 개인적인 힘을 기른다는 것 |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2장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라
자기 가치 확인하기 | 참다운 자아 표현하기 | 더 완벽하게 몰입한 나를 만난다
3장 입 다물고 경청하라
어떻게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 실크 양복은 벗어던져라 | 입은 닫고 귀는 열어라 | 프레즌스가 프레즌스를 낳는다
4장 나는 여기 있을 자격이 없다
스스로가 사기꾼처럼 느껴질 때 | 나만 그런 게 아니다 | 사기꾼 가면의 함정 | 제 얘기 좀 들어보실래요? | 내 손으로 가면 벗기
5장 무력함이 자아를 가두고 강력함이 자아를 해방한다
개인적인 힘 vs. 사회적인 힘 | 무력함의 역설 | 강력함의 선물 | 힘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 | 힘은 부패할까
6장 수그리기 그리고 꼿꼿하게 서기
힘과 신체언어 | 으스대며 말하고 걸어라 | 무력함은 몸을 무너뜨린다 | 신체언어의 성별 차이 | 자세와 몸짓으로 지배하라
7장 행복해서 노래하는 게 아니라 노래해서 행복해지는 인생
윌리엄 제임스의 발견 | 얼굴에 대하여 | 마음을 통제하는 몸의 과학 | 당신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 우리 몸이 들려주는 이야기
8장 몸이 마음을 지배한다
힘을 과시하는 자세 실험 | 느끼기 | 생각하기 | 행동하기 | 신체 | 고통 | 성적과 프레즌스 | 스마트폰과 거북목 | 자세 상상하기 | 가상의 자세 | 차렷 자세로 서기 | 불가사리 출동!
9장 자세를 바꿔라! 마음도 변한다
커다란 자세로 준비하라 | 좋은 자세로 무장하라 | 하루 종일 자세에 신경 써라
10장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든다
스스로를 넛지 하라 | 아기의 걸음걸이 | 신체언어의 자기충족적 힘 | 다짐이 실패로 끝나는 이유 | 다양한 자기 넛지 방법들
11장 이뤄질 때까지 이뤄진 것처럼 행동하라
직장과 학교부터 동물 세계까지 | 최고의 나를 찾아서
p.s 언제부터인가 책 소개에 'TED 인기 강연', 'TED 수백만 조회수 기록' 등등을 적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TED가 뭔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초창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기에, TED를 소개하고자 많은 활동을 했었던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TED의 인지도가 상승했다는 점은 많이 기쁘고, 그런 문구가 적힌 책은 조금 더 쳐다보게 된다. 한창 TED 강연을 소개할 때는 TED 연사들의 책 中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들이 어떻게 되는지 모두 조사한 적도 있다.
하지만 요즘엔 'TED 강연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나' 싶을 정도로 이 문구가 많이 사용되고 있고, 부풀려서 소개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저번에 소개한 켄 로빈슨 경의 <Schools kill creativity>와 이번에 소개하는 Amy Cuddy의 <Your body language shapes who you are>는 TED 강연 中 사람들이 본 횟수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강연들이다. TED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숫자로만 각각 3900만, 3400만 번 시청되었다. 즉 실제로, 정말 유명한 강연들이다. 하지만 2200여 개의 TED 강연 中 백만 번 이상 시청된 강연이 절반을 넘고, 수백만 번 시청된 강연이 최소 수백 개가 넘는다. 그리고 2번의 annual TED conference 외에 세계 각지의 TEDx에서 발표되는 강연의 수는 모두 확인하기조차 어렵다.
단순히 TED에서 강연을 했고, 그 강연을 많은 사람들이 봤다는 사실이 내용이 좋다는 것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관심이 가는 책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으면, 사기 전 강연을 먼저 한 번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물론, 강연 내용이 좋다고 책이 꼭 좋은 것도 아니다. 이번 책처럼.
가장 큰 감동을 준 TED 연사 中 한 명인 브레네 브라운이 신작이 '마음 가면'이라는 이름으로 일주일 전 나왔다. 이번에도 띠지에는 'TED 최고의 감동'이라는 광고 문구가 적혀있다. 앞서 나온 두 권의 책 모두 강연에 비하면 그렇게 좋지 않았는데, 이번 책은 어떨지... 왠지 걱정이 앞선다...